국립중앙박물관 관람기 : 2022년 2월 22일 당시의 글
이 글은 4년 전인 22년 2월에 쓴 글로,
당시 한창이던 코로나의 여파로 평일 낮의 국립중앙박물관은 사람이 거의 없다시피 했으니
최근 K컬처의 인기와 함께 오픈런이 일상화되어 입장과 관람이 힘들 정도라는 국립중앙박물관 (요즘은 국중박이라고 줄여 부르더라)의 인기가 새삼스러울 정도이다.ㅎㅎ
모처럼 연차를 내고 도현이를 등원시킨 후 서울로 홀로 나들이를 나왔다.
평일 낮의 혼자있는 여유는 정말 느껴본 적이 오래되어서, 엄청난 인기의 돈가스집에 한 시간이나 줄을 서서 먹어보기도 하고, 종종 찾던 영상자료원에 가서 인디영화를 보기도 하던 중에 국립중앙박물관에 들렀다.
1시부터 큐레이터의 주요 유물 설명이 있다고 하여 시간에 맞춰 갔더니 웬걸, 수요자가 나 한 명이다.
일대일로 자세히 설명듣고 궁금한 거 물어보고 하니 이만한 행복이 없다.
국립중앙박물관의 큐레이터답게 설명이 워낙 훌륭했지만, 위대한 유물 한 점을 5분 만에 말로 다 담아내기는 어려울 터.
내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무니 큐레이터가 조금은 잘못 걸렸다는 듯이 쳐다본다.
하필 한놈 왔다는게 저런 놈이라니. 그래도 난 지금 궁금한 게 너무 많다.
옛날부터 사람사는 이야기와 그 흔적에 관심이 많던 나에게 그의 입이 역사책이고 백과사전이다.
큐레이터가 떠나고 조금 더 혼자 관을 둘러보았다.
초딩들의 방학을 맞아 아이들을 인솔해 설명과 놀이 수업을 진행하는 그룹이 여럿 있었다.
상평통보 전시 앞에서 한 아이가 선생님의 설명 후에 질문을 한다.
“선생님, 그럼 상평통보 하나는 지금 돈으로 얼마예요?”
와우.. 정말 좋은 질문이다. 화폐가치와 인플레이션이라는 개념을 책으로 배우기 이전에, 스스로 재화의 가치에 대해 궁금해하는 호기심 많은 남자아이는 조금 전 꼭 어디서 본 것 같다.
하지만 인솔 선생님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자신이 외운 부분 외에는 설명이 어려웠는지, “그건 선생님도 모르지 옛날 물가를 지금 어떻게 알겠니?” 하며 지나가버렸다.
그렇지, 모르는 걸 꾸며내느니 모른다고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음 아니다. 역사란 기록이 남아있는 한 분명히 시대를 담고 있기에 종이와 활자가 널리 쓰였던 시대의 화폐인 상평통보 가치 정도는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 역사상 최초의 공인된 유통 화폐인데.
아니나 다를까 상평통보 앞의 설명문을 좀 더 자세히 읽다 보니 답이 나온다. 그것도 아주 자세히!
상평통보 1개는 ‘1문’이라 불렸고 1문은 현재가치 200~700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아이에게 다가가 슬쩍 얘기해 주었다. “상평통보 한 개에 오백원이래, 아이스크림 하나 정도 사 먹을 수 있나봐”
처음에 낯선 아저씨의 참견에 흠칫 놀라던 아이는 이내 너무나 기다리던 답을 구했다는 듯 한껏 상기된 표정으로 웃으며 꾸벅 인사를 두 번 한다.
그 아이는 상평통보가 몇 년도에 발행된 것인지는 기억하지 못할지 몰라도, 그게 그 시절의 아이스크림 한 개 정도 값이라는 것은 절대 까먹지 않을 것이다.
마침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반가사유상 2점이 동시에 전시되어 있는 '사유의 방'이었다.
신비롭고 초현실적인 분위기의 방에 자연스러운 듯 어긋난 듯 절묘하게 자리잡은 두 점의 반가사유상.
은은한 미소를 띤 채 턱에 손을 괴고 무언가 생각하는 듯한 반가사유상은
세상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가진 듯한, 혹은 모든 것을 해탈하여 알고 있는 듯하다.
30대 중반의 월급쟁이 아저씨나 방학을 즐기는 초딩이나 궁금한 것은 똑같이 많다.
누군가가 말해주지 않으면 모르는 것도 똑같고, 궁금해하지 않으면 누가 그다지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도 똑같다.
그 와중에 정답을 얻어내기란 더더욱 힘든 일이겠지.
머지않아 말문이 트이고 큰 세상으로 걸어 나갈 도현이가 생각난다.
도현이는 그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을 같이 풀어나갈, 호기심쟁이 아빠를 만났다.
마치 두 점의 반가사유상이 함께 미소 짓고 있는 것 처럼,
우리는 서로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