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회인 야구 6년 : 그 강렬한 추억과 기록

야구를 직접 한다 : 사회인 야구의 추억

◎ 야구를 직접 한다 : 사회인 야구의 추억


퇴근 후 서재방에 틀어놓은 TV에서 야구 예능 프로그램 '야구여왕' 이 나와서 잠깐 보다가
문뜩 예전에 사회인 야구리그를 뛰면서 꽤나 진심으로 야구를 했었던 시기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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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의 폭발적인 인기와 함께 다양한 야구 예능 프로그램이 덩달아 인기다. 야구여왕, 최강야구, 불꽃야구 등


◎ 후보에서 대수비/대타로 : 첫 팀에서의 1~4년차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인턴으로 들어왔던 2012년,
운동을 좋아하는 걸 알고 주변 선배들이 추천해서 한두 번 나갔던 게
사업부 내에 있던 축구팀과 야구팀이었다.

2013년 입사 후 본격 가입하여 활동을 시작했는데
주중엔 축구 연습과 축구리그, 주말엔 사회인 야구리그를 뛰게 되었다.
지금 보면 저렇게 팀에 몸담고 꾸준히 운동을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저 시절만의 특권이었던 것 같다.ㅎㅎ

처음 들어갔던 주말리그 야인 이라는 팀에서는
벤치 멤버로 시작해서 대수비나 대타로 한게임에 한두 타석 정도 들어갔던 것 같다.
등번호는 LG트윈스 레전드 야생마 이상훈의 47번을 골랐다.ㅎㅎ

대학교 복학생시절, 감독이자 주장으로 팀을 꾸려서 학내 과대항 대회에 나가서
1전 1패로 당당히 대회를 마감한 경험 외에
당연히 야구를 제대로 배워보거나 꾸준히 경기해 본 경험도 없었기 때문에
한 타석 한 타석이 되게 신기하고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첫 2~3년은 조금씩 타석수를 늘려가면서 겨우 한 시즌에 안타 한두 개 정도 친 것 같다.

발이 빠르고 타구에 대한 판단력이 좋은 데다가 빠른 장거리 송구가 가능했는데
무게중심이 하체로 내려오지는 않아 내야 펑고 때마다 알을 많이 까서
자연스럽게 외야수를 처음부터 꾸준히 보게 되었다.

3~4년 차 즈음에는 하위타선의 준주전 외야수로 뛰게 되었는데,
수비는 꽤나 안정적이었고, 안타는 많이 치지 못했지만 출루율이 나쁘지 않았고
나가면 항상 적극적인 도루로 투수를 흔들고 득점을 많이 생산했다.
전형적인 똑딱이형 9번 타자 같은 느낌인거지.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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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주황색 배색의 첫 번째 팀 유니폼, 등번호 47번


◎ 주전 중견수 1번 타자 : 구력 5~6년 차의 두 번째 팀


그러다 첫 번째 팀의 아저씨들의 결혼 및 육아로 자연스럽게 주말리그 존속이 어려워졌고
때마침 용병으로 연습경기에 한번 참가했던 주중리그 경기에서 맹활약을 펼쳐서
신생팀에서 나를 모시고 싶다고 연락 오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결혼을 앞두고 있어서 많이 망설였으나
결과적으로 꾸준히 팀연습도 나가고 주중리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Free Area 라는 팀이었고, 등번호는 LG트윈스의 레전드 적토마 이병규의 9번을 골랐다.ㅎㅎ
주전 중견수이자 고정 1번 타자로 많은 타석에 들어섰으며
마찬가지로 많은 안타를 쳐내지는 못했지만 출루도 잘했고 나가면 무조건 뛰었다.

신생팀이다 보니까 선수 수급여건상 아주 잘하는 선수는 많이 없었고,
특히 투수가 너무 없어서 볼질만 하다가 어이없게 지는 경기가 많았고
타석에 들어서는 시간보다는 외야에서 수비하는 시간이 훨씬 길었지만
외야에 서서 느끼는 저녁 공기나 라이트 조명의 밝기, 인조 잔디의 쿠션감 같은 감각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첫 팀에서의 4년 동안 천천히 성장할 수 있었다면
두 번째 팀에서의 2년 동안은 완전히 증명해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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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색의 두 번째 팀 유니폼, 등번호 9번


◎ 사회인 야구리그 6년간의 소회 : 추억과 기록


사회인야구를 6년간 하면서
팀스포츠를 준비하는 재미라던지 (물론 축구를 오래 해봤기 때문에 이 부분은 늘 재밌다)
준비한 것들을 경기에서 증명한다던지 하는 즐거움 등을 많이 느꼈다.

기세를 가져오기 위해 하는 경기 중간중간의 파이팅들이나
매너와 비매너의 선을 절묘하게 오가는 더그아웃에서의 트래시 토크도 재미있었고
공수교대 시 무조건 뛰어서 들어오고 나간다던지
범타로 물러나면 조용히 들어와서 찌그러진다던지
암묵적인 애티튜드 같은 것들이 나랑은 아주 잘 맞는 운동이었다.

사회인 야구의 특성상 1심제인지라 심판콜도 경기를 많이 좌지우지했는데
특히 빠른 퇴근을 원하는 심판의 이상한 볼 콜이라던지
누가 봐도 세잎인데 아웃콜이라던지 할 때 헬멧 벗어던지고 강하게 항의를 해서
사유서를 빙자한 반성문을 리그 운영회에 제출했던 기억도 난다.ㅎㅎ

야구는 스포츠 특성상 타석의 기회가 꽤 비슷하게 오는 편인데
그 한 번의 기회에서 어떻게 해내느냐에 따라
그 게임의 분위기, 그날 나의 기분, 다음 경기까지 내 기분 등에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갑자기 궁금해져서 게임원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내 기록을 보았고,
내 기억과 기록이 정확히 일치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ㅎㅎ
역시 기록은 거짓말을 하지 않네.

매년 꾸준히 늘어난 타석 수와 비례하는 출루율.

높은 출루율에 비해 낮은 타율과 안타 수 (심지어 대부분이 1루타, 장타는 통산 2루타 딱 하나).

그리고 엄청난 양의 도루와 득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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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못다 이룬 목표, 그리고 남겨진 것들


내 사회인야구의 최종 목표는 의외로 누적 스탯이 아니라 단건 기록이었는데,
바로 '1 홈런, 1 홈스틸' 이었다.
홈런은 결국 기록하지 못했지만 가장 유사했던 것은 좌타로 우측담장 상단을 맞춘 것이고,
홈스틸은 따로 시도하지 못했던 것 같다.

커리어 하이였던 마지막 시즌 이후에는 배팅볼 연습 후 회전근개 파열로 수년간 고생했고
결혼 생활 및 코로나 여파로 더 이상 리그 진행이 어려워지고
자연스럽게 팀과 리그가 사라지면서 야구와는 멀어졌다.

당시 기준 50만원 상당의 배트를 비롯 헬멧과 글러브 등 그 당시 마련했던 장비들이 아직도 집에 있는데
앞으로 내가 다시 사회인 야구리그에 참가할 일이 없을 것 같다.ㅎㅎ

그래도 회사에 들어와서 동호인으로써 사회인 야구를 6년이나 경험해 보고
꾸준하게 운동하면서 여러 가지 즐거운 일들이 많아서
나에게는 그 시간 자체로 언제나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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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장난감이 된 야구용품들 - 왼쪽: 첫째 / 오른쪽: 둘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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