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e and Pink Floyd)
(이 글은 2025년 10월 8일에 쓴 글로 빗속의 야간 러닝 후 떠오른 감상의 기록이다)
얼떨결에 신청해버린 인생 첫 마라톤 풀코스 대회를 한 달여 앞두고 밤에 뛰러 나갈 마음을 먹었다.
오후에 비가 살짝 왔다가 밤이 돼서 그친 줄 알고 나왔는데 아직 비가 좀 내리고 있었다.
뭐 이미 나왔으면, 일단 뛰는 거다.
달리기 시작 전, 귀에 버즈를 꽂고 별 고민 없이 핑크플로이드를 플레이리스트에 올렸다.
딱 오늘 밤처럼 보슬비가 내리다 말다 하던 선선한 가을밤.
온도도 습도도 너무 비슷한데, 정말 무의식에 고른게 핑크플로이드의 음악이라니.
작년 이맘때 떠났던 이탈리아 여행.
로마 고대 전차 경기장 (Circo Massimo)에서의 데이빗 길모어 라이브 공연이 떠오르면서,
문득 그 순간과 지금의 내 감각이 선명하게 싱크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흐릿한 빗방울이 닿으며 선선한 온도를 느낀 근육의 긴장감.
물안개에 갇혀 더욱 몽환적이던 전차 경기장의 뿌연 무대 조명.
높은 습도로 더 공명하게 번지던 날카로운 기타 리프와 노랫소리.
맥주와 함께 흥얼거리고 흔들거리던 사람들과 몽롱한 담배냄새.
그날의 몽롱하고 황홀한 공연은 밤 12시가 넘어 끝났고,
전차 경기장에서 숙소까지 한 밤의 비 내리는 로마 시내를 한 7KM 정도 뛰며
공연의 아드레날린을 운동 에너지로 증발시켰다.
명절 연휴라고 사람도 차도 없고 비마저 오다 말다 하는 오늘 서울의 늦은 밤거리에서,
딱 1년 전 로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런닝 기록도 모두 핸드폰에 남는지라 실제로 그날 로마와 오늘 서울의 온도와 습도를 확인해봤는데
정말 귀신같이 그 느낌이 맞았다.
그날 로마의 온도는 22도, 습도는 82% 였고
오늘 서울의 온도는 19도, 습도는 100% 였다.
언젠가 몸으로 느꼈던 온도 습도 냄새와 같은 것들이
어떤 음악이나 이미지로 엉켜 숨어있다가
이렇듯 불쑥 나타나 되살아나는 경험이 간혹 있는데
어쩌면 이게 내가 여행을 하고 음악을 듣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바로 그날의 라이브 영상은 아래에.
https://youtu.be/bythBg2BzFo?si=WTd5q-lEFbVXAMC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