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의 안경 케이스
일을 하다 보면 눈이 쉽게 침침해진다. 디지털 기기 화면을 자주 보고 디테일한 작업을 많이 하기 때문에 매일 안경을 착용한다. 물론 나도 20대 초반에는 미용의 이유로 소프트렌즈를 주로 꼈었다. 그 당시에는 안경을 쓰면 자신감이 하락하는 것 같아 괜스레 위축되는 느낌이 들곤 했다. 그런 내가 요즘은 일상이 매일 전투다 보니 안경을 주로 착용한다. 언니 하리도 마찬가지다. 이제 안경은 우리 자매들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 되었다.
또, 원래 눈이 좋았던 엄마마저 세월이 흐름에 따라 다양한 안경을 쓰게 되셨다. 다초점 안경, 돋보기안경, 보안경 등 다양한 안경을 쓰시다 보니 안경을 어디에다 둔 건지 잊으실 때가 많았다. 그리하여 하리는 안경을 자주 쓰는 이들을 위한 휴대용 안경집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리는 [풍요의 안경집]이라는 콘셉트로 스케치를 그리기 시작했다. 실제 나(풍요)도 안경을 쓰는 만큼 고양이 캐릭터 풍요에게도 안경을 씌웠다. 캐릭터 풍요가 평상시 쓰지 않던 안경을 쓰니 두배로 귀여워 보이는 것 같다. (안경잽이로 살아가다 보니 닮은 소품에도 자연스레 관심이 생기는 것 같다.) 언니가 어서 이 작품을 만들어주길 기다리기 시작했다.
품목이 안경집인 만큼 실제 크기를 재서 사이즈를 정했고 부피감을 계산하여 사이즈보다 살짝 크게 재단했다. 전체적으로 고양이 실루엣을 표현하기 위해 둥그런 알약 모양에 두 귀를 쫑긋하게 세웠다.
안경집의 원래 디자인은 얼룩 하나에 풍요에게 화가 모자를 씌울 예정이었다. 보드라운 울펠트로 얼룩과 모자를 재단하여 배치하였는데 막상 모자를 씌우려고 보니 앞 뒤로 바느질하는 것이 어려웠다.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제작이 너무 어렵지 않아야 하기에 과감하게 포기하기로 했다.
여러 가지 고민 끝에 빵모자 대신 양쪽 얼룩을 재단하여 바느질해 주었다. 이 소품의 하이라이트인 안경은 시드비즈를 활용하여 안경 모양으로 수놓았다. 엘레강스한 느낌의 풍요 작가님이 완성됐다.
얼굴이 완성된 후 몸통에는 다양한 색의 얼룩들을 배치했다. 우리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삼색 고양이의 무늬를 닮았다. 얼굴 얼룩에 사용한 펠트를 사용해서 몸통 얼룩이 조화롭게 배치되었다. 또, 얼굴과 몸통을 시각적으로 분리하기 위해 목걸이처럼 빨간 레이스를 둘러 주고 방울을 중앙에 달아주었다. 조그맣게 달랑거리는 소리가 꽤나 작품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뒷면 또한 얼룩을 배치해서 디자인하였고 빨간 리본을 두르고 있어 풍요가 뒤돌아 있는 모습이 완성되었다.
언니는 제작하던 중 풍요에게 팔을 달아주었다. 이왕이면 가방이나 목에 걸고 다닐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동그랗고 도톰란 양팔을 단추로 단단히 달아준 다음 발가락을 수 놓아준 뒤 스트랩을 달 수 있는 D링을 달아주어 마무리했다. 몸통에 얼룩 말고도 발바닥 무늬를 수놓아 빈 공간의 허전함을 채워 마무리했다.
이번 작품은 기대했던 만큼 만족스럽게 제작이 되었다. 막 쓰기에 아까울 정도 여서 결국 전시용으로 두었지만, 안경을 쓰시는 수강생분들에게 반응이 좋았다. 나는 사진처럼 내 안경을 케이스에 넣어보았다. 도톰한 풍요의 몸통이 안경을 잘 감싸 주었다. 아무래도 내 것을 제작해서 외출용으로 사용해야 할 것 같다. 펠트 작품은 인식과는 달리 의외로 단단하니까, 내 곁을 오래 지켜줄 거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