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면허가 없다. 출장이 잦은 일을 업으로 하면서도 꿋꿋하게 무면허였다. 버스, 지하철, 기차, 택시 조합이면 못 갈 곳이 없었다.
상사와 함께한 출장길에서도 조수석을 지켰다. 상사가 '서울 갈 때 운전 바꿔서 하자' 할 땐 조금 멋쩍고 미안한 마음이었다. 장거리 운전에 그도 피곤할 텐데, 내가 운전을 대신해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러게 버스 타지 왜..)
운전면허가 없다는 내 말에 상사는 기겁했다. 상상도 못 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오랜만에 만난 전 직장 동료는 '근데 아직도 운전면허가 없는지' 묻기도 했다. 운전을 못하는 것, 백 번 양보해서 장롱면허도 아니고 면허 자체가 없다는 건 특수한 일인 것이다. 너도나도 열아홉 겨울방학에 따는 게 운전면허인데, 나는 왜 면허가 없는가.
1) 서울은 대중교통이 잘 되어있다. 운전인들의 말에 따르면, 교통체증과 주차 문제 등을 고려하면 서울은 대중교통으로 다니는 게 효율적이라고 한다. 단, 비수도권에 살거나 아이가 있으면 차는 거의 필수라고는 한다.
2) 차를 사고 유지하는 비용이 부담스럽다. (사실 유지비가 얼마나 드는지 잘 모른다.)
3) 나는 엄청난 방향치다. 왼쪽, 오른쪽이 어느 쪽인지 잠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진짜다. '우회전/좌회전입니다'라는 내비게이션 안내음성을 들으면 그게 어느 쪽이지, 생각하는 사이 사고가 날 수 있다.
4) 길치다. 많은 이력이 있지만 초등학교 1학년 때 하굣길에 길을 잃어버려 슈퍼 사장님이 집 근처까지 데려다준 전력이 있다. 입학하고 몇 달 지난 시점이었다. 중학생 땐 캄보디아에서 길을 잃어버려 라디오에 송출된 적이 있다. 숙소 주인집 아들이 나를 찾았는데, 아빠 말로는 숙소에서 3분 거리에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운전을 하지 않는 이유가 될 순 있지만, 운전면허를 따려는 시도 조차 하지 않는 이유가 되진 못한다. 운전을 안 하더라도 면허 정도는 따둘 수 있는 건데, 나는 왜 31년 내리 무면허일까.
사실 2024년쯤 진지하게 운전면허를 따야겠다고 생각했다. 상사와 함께한 출장길에 운전을 못해 조금 멋쩍었던 바로 그 해다. 필기시험공부를 하려고 어플도 다운 받았다. 출퇴근길에 기출문제를 돌려보았다. 그런데 정말이지, 필기시험을 볼 시간이 나지 않았다. 평일에 연차를 낼 짬이 없었다. 주말은 시험 예약도 힘들뿐더러 출근을 하거나 결혼식을 가야 해서 시간이 안 났다.
퇴사를 하고 시간이 생겼다. 여유로운 시간에 시험을 보고 학원도 다닐 수 있다. 원한다면 운전 연수도 실컷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 무면허다. 운전면허라는 자격증을 따고, 운전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배우기 위해 노력할 기력이 아직 없다.
목표를 향해 노력한 경험이 있다. 그 경험은 나의 자부심이다. 동시에 괴로운 기억이다. 몸과 마음에 상흔이 저장되어 있다. 나는 이를테면 연비 안 좋은 자동차다. 목표가 생기면 단기간에 내가 낼 수 있는 최대 속력을 낸다. 성취를 목전에 두고 마지막 힘을 쥐어짠다. 성공의 순간 탈진한다. 다시 달리기까지 충전의 시간이 오래 필요하다.
대학 입시, 취업, 직장 생활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순간에 최대 속력을 내봤다.
가고 싶은 대학이 있는데, 점수를 못 맞추면 어떤 방법으로도 갈 수 없었다. 그 대학에 너무 가고 싶어서 절박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공부했다. 대학에 지원할 수 있는 점수를 만들고 간절하고 치열하게 면접과 자기소개서를 준비했다. 입천장에 끔찍한 통증을 동반한 커다란 염증이 생기고 몇 달간 후각 기능이 마비되었다.
그토록 원하던 대학에 합격하고 너무 즐겁게 지낸 나머지 남들 다 보는 토익 시험 한 번 안 본 채로 졸업했다. 졸업을 앞두고 난생처음 이력서라는 걸 쓰는데, 자격증과 어학점수가 하나도 없었다. 불안감이 드글드글 몰려와, 2주 동안 자격증 한 개를 따고 공인어학점수 하나를 만들었다. 취업만이 소원이던 때, 그토록 원하던 취업을 어찌어찌했다.
일터는 고되고 치열했다. 사업을 수주하지 못하면 어쩌나, 실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어쩌나, 실수를 하면 어쩌나, 변수가 생기면 어쩌나, 협의가 잘 안 되면 어쩌나, 잠 못 이루는 날이 너무 많았다. 야근과 주말 출근을 밥 먹듯 하고 꿈에서도 일을 했다. 뭔가 이룬 시점에 이르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든 상태가 되었다. 나는 조직 안에서 숨 고르는 방법을 몰랐기에, 조직을 떠나는 선택을 하며 나를 지켜왔다. 그리고 숨을 채 다 고르기 전 다른 일터를 찾았다.
세상에, 사람들이 어떻게 대입과 취업, 밥벌이를 하면서 운전까지 하는 건지 정말 대단하다. 여기에 임신, 출산, 육아까지 병행하는 건 초능력자가 아니면 뭐냔 말이다.
아무튼 입시라는 관문을 지나며 널브러져 있을 시간이 필요해 운전면허를 따지 못했고, 대학생활에 초집중하느라 운전면허는 생각도 못했다. 이후엔 직장생활이 너무 고되어 운전면허를 따지 못했다. 직장생활을 중단했을 때 몸과 마음이 너덜 해져 운전까지 배울 엄두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
숨을 고르기 위해 여행을 다닌다. 차를 렌트해서 다니는 거냐, 누군가 물었을 때 나는 차는 물론 운전면허도 없다고 했다. 뜨악한 반응이 돌아온다. 거길 차 없이 다닌다고?
물론 고되긴 하다. 택시가 거의 다니지 않는 섬 마을에선 밥 한 끼 먹으러 왕복 1시간을 걷는다. 두 시간에 한 대 있는 버스시간에 맞춰 하루 동선을 짠다. 어렵사리 콜택시 번호를 알아내도 거절당하기도 하고, 그나마 자전거라도 빌릴 수 있으면 감지덕지다. 다행히 자전거는 탈 줄 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집 근처 공원에서 넘어지고 깨지며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운 덕이다. 엄마가 인내심 있게 몇 번이고 자전거를 밀어주고, 적절할 때 손을 놓아준 덕분이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서 군것질도 하고, 내 취향의 노래를 틀고 노래를 부르며 운전대를 잡는 날이 언젠간 오겠지. 가고 싶은 곳이 생기면 주저 없이 차키를 주머니에 쑤셔 넣고 슬리퍼 끌고 나가는 날도 언젠간 오겠지. 조수석에 누군가를 태우고 수다를 떨며 훌쩍훌쩍 떠나고 돌아오는 날도 오겠지.
그래도 운전을 못하기 때문에 만난 사람과 풍경도 꽤 많다. 시골 버스정류장에서 읍내로 나가는 할머니와 대화할 수 있었고, 걷다 지쳐 기진맥진할 때 도로변 노점에서 꿀맛 같은 맥주 한 병을 마실 수도 있었다. 길가에 강아지, 고양이들과 눈을 맞추고 온기를 나눌 수 있었다. 역시 모든 건 장단점이 있고 때가 있다. 운전을 하게 되면 나의 세계는 또 넓어질 것이다.
운전이라는 기술을 배우고 익숙해지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자격'이 생기기까지 얼마간의 노력이 필요하고, 그걸 '할 줄 아는 사람', '잘하는 사람'이 되기까진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운전면허가 없는 이유를 생각하다 보니 말이 많았다. 아무튼, 언젠간 운전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