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지 않는 시간

일의 기쁨과 슬픔이 선명한 퇴사 2개월 차의 소회

by 정의로운 민트초코

2026년 1월의 어느 날, 공원을 걷던 중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서른한 살이라고? 그럴 리가 없어. 만 나이로, 생일이 지나지 않았으니 스물아홉 살이야. 나는 아직 이십 대야. 걸을 땐 온갖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일'이 아닌 다른 생각을 하며 걸을 수 있게 된 건 백수가 된 후의 일이다.


2025년엔 두 번의 퇴사를 했다. 퇴사 후 많이 걸었고, 밥을 잘 챙겨 먹었다. 책을 많이 읽고 글은 쓰지 않았다. 글을 쓰기엔 전 직장(들)의 기억이 지나치게 아렸다.


퇴사를 기점으로 네 번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일본 홋카이도, 중국, 그리고 라오스와 태국은 혼자 다녀왔다. 일본 오키나와와 요론섬은 엄마와 다녀왔다. 엄마와 단 둘이 해외여행을 가는 건 처음이었는데, 생각보다 좋은 여행 파트너였다.


2025년 11월엔 임시보호하던 아기고양이가 세상을 떠났다. 머리가 동그랗고, 파란 눈을 가진 사랑스러운 고양이가 어떻게 클지 너무너무 궁금했는데, 몸무게 280g인 채로 세상을 떠났다. 마음 어디에 묻어야 할지 몰라서 한국, 서울 아닌 곳을 떠돌고만 싶었다.


2025년엔 운전면허도 따고 피아노도 배우려고 했는데, 둘 다 하지 않았다. 라오스 돈뎃에서 만난 이탈리아 할아버지에게 한 해를 마무리하며 이메일도 보내고 싶었는데 보내지 않았다. 2026년엔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하면 좋고 못하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싶다. 그래도 실력과 무관하게 꾸준히 드럼을 배우는 근성에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직장에 다닐 때 보다 연습을 덜 하게 되는 아이러니가 있긴 하다.


2년 넘게 길러온 머리카락을 짧게 잘랐다. 가뜩이나 머리숱도 많은데 허리까지 길어버린 머리카락이 거추장스러웠다. 이발을 하니 머리를 감기도 수월하고 캡모자도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옷장과 신발장엔 출근할 때 걸칠 만한 것들이 대부분이라, 가끔 외출을 할 땐 몇 안 되는 후드티를 돌려 입는다.


일을 하지 않은 지 두 달 즈음 지나간다. 일의 기쁨이 그리워질 때 채용공고를 둘러본다. 일의 기쁨은 약간 아득한데 일의 슬픔과 괴로움은 비교적 선명히 떠오른다. 오늘 적금이 만기 되었다. 일의 기쁨, 저축이 주는 도파민이 종종 그립기도 하지만 휴식이 주는 기쁨이 아직은 벅차다. 얼마 남지 않은 이십 대를 향해 가는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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