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는 흔들려도 정체성은 흔들리지 않는다

by Poorich

오늘 회의에서 내가 한 말이 묻혔다. 분명 준비도 했고, 나름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했는데 대화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누군가의 의견은 바로 채택되고, 내 말은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지나갔다.

회의가 끝난 뒤에도 그 장면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집에 돌아오는 길, 스스로에게 계속 묻게 됐다.

“나는 왜 이렇게 인정받고 싶은 걸까?”

가만히 들여다보니 나는 단순히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 때문에 힘든 게 아니었다. 그 순간, 내가 ‘덜 중요한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회사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하며 살아간다.

성과로,
결과로,
숫자로.

누가 더 잘했는지,
누가 더 인정받는지,
누가 더 영향력을 가지는지.

이 구조 안에 오래 있다 보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이렇게 믿게 된다.

나는 성과로 증명되는 사람이라고.

그래서 하루에도 몇 번씩
보이지 않는 평가를 받는다.

회의에서의 한마디,
보고서의 완성도,
상사의 반응.

잘 되면 안도하고, 잘 안 되면 스스로를 깎아내린다. 나도 모르게 성과가 나의 정체성을 흔드는 기준이 되어버린다.

그런데 신앙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

“ 너는 이미 괜찮은 사람이라고.”

이 말은 익숙하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잘 믿어지지 않는다. 성과로 평가받는 하루를 살다가 존재로 인정받는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나는 그동안 성과를 통해 나를 확인하려 했다. 그래서 결과에 따라 내 기분도, 나에 대한 평가도 같이 흔들렸다.

회의에서 인정받으면 나는 괜찮은 사람이 되었고, 묻히는 날에는 어딘가 부족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요즘 조금씩 다른 기준을 배우고 있다.

성과는 결과이고,
정체성은 출발점이라는 것.

성과는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지만,
정체성은 내가 이미 받은 것이라는 것.

그래서 결과는 흔들릴 수 있지만
출발점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

그날 이후로
나는 질문을 하나 바꾸기 시작했다.
“ 나는 오늘 무엇을 증명했는가?” 대신
“나는 오늘 어떤 사람으로 살았는가?”

이 질문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회의에서 내 말이 묻힌 날에도 나는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었다.

“그래도 나는 성실했는가?”
“나는 다른 사람을 존중했는가?”
“나는 맡겨진 역할에 진심이었는가?”

이 질문 앞에서는 결과가 전부가 아니게 된다. 그래서 요즘 나는 아주 작은 실험을 해보고 있다. 인정받지 못한 순간에 조용히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그래도 나는 괜찮다.”

그리고 하루가 끝날 때 결과가 아니라 내 태도 하나를 돌아본다.

성과는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나를 정의하게 두지 않으려 한다. 성과는 흔들리지만 정체성은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자기계발이라는 것은 더 잘되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을 기준을 세우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이번 주,
나는 어떤 기준으로 나 자신을 바라볼 것인가.


성과는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지만, 정체성은 내가 이미 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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