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18 영성일기
1. 난 무엇을 써야 할지 알 수 없을 때, 다이어리를 편다. 하루 단위로 삶을 경영하는 나. 잠드는 것(취침)은 곧 죽음이며, 잠에서 깨는 것 (기상)은 곧 탄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제의 경영 결과를 스스로에게 시간 순으로 보고해 본다. 이 보고의 보고 대상자는 사장도, 임원도, 팀장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다.
2. 5시에 눈을 떴다가 다시 잠자리로 들어갔다. 비가 오는 날의 단점이다. 매일 나가던 새벽 산책을 나갈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이 곧 게으름으로 이어진다.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가 6시에 비몽사몽 눈을 떠서 새벽 기도회 Zoom에 접속한다. 여전히 나의 뇌는 침대에 접속해 있었지만 어떻게든 벗어나려, 허물을 벗듯 침대 속 이불에서 탈출한다.
3. 새벽기도의 말씀을 필사한다. 위대하신 그분의 말씀에 나의 미약한 생각들을 덧붙여본다. 오늘도 매일성경 순서에 따라 '예레미야서'를 묵상한다. 기도제목을 두고 매달리려 하지만 눈을 감으면 어느새 졸음이 내 앞을 가로막고 있다.
4. 대기업의 장점은 각 지역에 통근버스가 있다는 것이다. 통근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버스에 몸을 싣는다. 비가 오는 날의 두번째 단점. 고속도로가 막힌다. 심지어 버스 전용차선 조차. 1시간 거리가 순식간에 1시간 반으로 늘어났다. 간신히 회사 건물에 도착!
5. 바로 사무실로 가지 않고 나만의 집무실/기도실로 간다. 지하 공용회의실 끝 방이다. 노트북까지 열 시간은 없어 간단히 20분 정도 휴대폰으로 밀리의 서재를 뒤적였다.
6.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작성에 참여한 청교도인 ‘토마스 왓슨’의 "천국을 침노하라"는 책을 잠시 읽었다. 곧 이어 아내가 요청했던 아내 기도를 위해 "아내를 위한 기도문"을 펴고 기도한다. 오늘은 ‘아내의 순종’이 제목이다. 읽고난 내용은 아내에게 카톡메시지로 남겨 함께 나눈다. 일종의 인증.
7. 오전 업무가 시작이다. 하루의 To Do 리스트. 작은 포스트잇에 모두 적어본다. 머릿속도 함께 정리된다. 시간관리법에서 배운대로, 우선 순위에 따라, A/B/C 로 그룹핑 하였다.
8. 단체 채팅방에서 팀장님의 급한 업무지시가 발생한다. 내일 있을 주간회의(weekly)를 위해 교육실적을 업로드 하는 것. 그간 진행했던 교육의 참여자 수와 만족도 점수를 부랴부랴 입력한다. 하필 진행된 교육이 많았던 기간이라 다른 날 대비 입력의 시간이 꽤 들어갔다.
9. 쌓여있는 메일/쪽지/팀즈를 회신한다. 미국 MIT에서 인공지능을 가르치는 교수님으로부터 강의 시간 변경이 가능하다고 회신이 와 있다. 다행이었다. 강의 이후, 사내 임원분과 저녁식사 자리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만, 강의는 한국어 대신 영어로만 진행하기로 했다. 난 영어가 쥐약인데... 살짝 긴장감이 올라왔다.
10. 오늘 점심은 회사에서 자발적으로 진행하는 스터디 모임이 있는 날이다. 벌써 5번째 모임으로 마지막 날이다. 11시반 시작이니 미리 참석자들의 점심식사를 주문하고 픽업하러 이동했다.
11. 업무에서 실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주제로 잡고 ChatGPT와 Python을 통해 다양한 시도를 했던 사례를 발표하셨다. 지난 1달 간의 소회를 멤버들과 나눈다. 모두 최고의 스터디 모임이었다고 서로를 칭찬한다.
12. 주어진 점심시간은 1시간이지만, 스터디 모임으로 인해 1시간의 휴게시간을 근무시간 app으로 등록하였다. 다소 긴 점심시간을 보낸 후 오후 일과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오후에 메인은 보고서 작성과 내일 교육과정 운영 준비다.
13. 7월에 접어들면서 상반기 동안 진행된 인공지능 교육를 리뷰하고 하반기 계획을 정리해 보고해 달라는 요청이 임원으로부터 하달되었다. 내가 맡은 페이지는 3장. 이중 1장은 팀원 2명과 함께 작성해야 한다.
14. 오래된 습관에 따라 바로 PPT를 켜지 않고 포스트잇에 보고서 내용의 개요를 잡는다. 일부러 볼펜이 아닌 연필을 사용한다. 쓰는 맛도 있지만 draft를 쓰는 시간이라 지워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포스트도 가급적 한장의 하나의 내용만 적어본다. 맘에 들지 않으면 바로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도자기 장인이 맘에 들지 않는 도자기는 가차없이 깨버리는 것을 흉내내고 싶었던 걸까?치기어린 후카시(전문용어)이기도 하다.
15. 상반기 리뷰 결과보고서이다 보니, 나의 주장을 뒷받침 할 수 있는 근거(backdata)가 필요하다. 인공지능 교육에 대한 구성원들의 반응 파일을 재빨리 찾았다. 정성적, 정량적 데이터를 정리하고 시사점을 뽑는다. 시사점에 기반해 하반기 계획을 세워보려 하지만, 하반기 계획은 어느정도 윤곽이 드러나 있다. 이미 리더층에서 제시해 준 아이템이 몇가지 있기 때문이다.
16. 얼추 혼자써야 할 장표의 보고서가 만들어졌다. 남은 건 3명이서 함께 쓰는 장표. 조심스레 미팅콜을 팀즈 단체방에 남겨본다. 같이 데이터를 모아보자고, 내용을 어떻게 구성할지 이야기 해 보자는 내용이다. 팀원 한분이 오늘 급한 일이 많아 내일 오전에 모이자고 한다. 내일은 보고서 마감일이다. 오전에 모여서 합의를 이루고 오후에 바로 데이터를 채울 수 있을까? 내심 시간의 압박이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일 오후 회의실을 잡고 회의 일정을 보냈다.
17. 그 사이 도착한 메일/쪽지 등을 읽고 빠르게 회신한다. 내일 2시간 진행되는 과정 강의장세팅하러 왔다. 더러운 책상이 몇개 있어 물티슈로 직접 닥고 참석자 40명을 위한 꼬마물병을 세팅한다. 아참! 출석부 만들어서 인쇄하는 걸 깜빡했다. 부랴부랴 현장에서 엑셀로 작업하고 인쇄까지 마무리 한다.
18. 비가 많이 와서 기존에 잡혀 있던 지인과의 저녁약속이 캔슬되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지만, 아니면 모르고 말한 것 일 수도 있겠지만, 때마침 팀장님의 번개 회식 콜이 채팅창을 밝혔다. 팀원 한명까지 해서 총 3명이 닭도리탕을 먹으러 가자는 가벼운 제안이다. 평소 팀장님과의 식사는 힐링 타임이다. 주저없이 승낙했다. 9시까지 야근을 하며 처리하려던 일들은 자연스레 내일로 이동했다. 밥을 먹고 다시 돌아와서 야근을 할까, 아니면 바로 집에 갈까 순간 5초 정도 고민을 하다가 퇴근으로 결정했다
19. 번개회식 때는 여름휴가, 여가시간에 뭘하는지, 축구는 누가 이겼는지, 요즘 어떤 영화를 봤는지, 팀 분위기는 어떤지, 우리팀은 어떤걸 중점으로 해야 할지 다양한 이야기가 남자 세명 사이에서 오갔다. 삶과 일이 버무려지는 시간이다.
20. 이렇게 하루가 마무리 되고 퇴근 버스에 오른다. 다행히 비가 그쳐 1시간 만에 용인 집에 도착했다. 이제 다시 나의 하루는 죽음(취침)을 통해 마무리 된다. 남은 인생 또한 이처럼 하루하루마다 태어나고 죽음을 통해 쌓여갈 것이다. 대기업 15년차의 일터사명자의 삶은 이토록 치열하다. 우리 SK그룹에서는 일과 싸워 이기는 정신을 '패기'라 칭한다. 패기있는 삶을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