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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치 Jun 19. 2022

코끼리 사육사와 코끼리 사냥꾼의 동거

할 말 있으면 하세요.

방안의 코끼리

어떤 문제나 고민이 너무 크고 무거울 때, 그리고 그것을 언급하는 것조차 꺼리고 있는 상황을 비유하는 표현이다. 코끼리처럼 아주 큰 문제가 방안에 버젓이 있는데도 덮어 놓고 모른 채 하고 있는 상황을 말한다.

코끼리도 크기가 있을 것이다. 처음부터 성인 코끼리는 아니고 방안에 있기에 작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래도 상대적으로 작은 아기 코끼리 시절이 있을 것이다. 아직은 문제나 고민이 완전히 커지기 전의 상태라고 비유할 수 있다.


나는 코끼리를 키운다.

나는 아기 코끼리를 자주 키운다. 때로는 밖에서 갑자기 코끼리가 들어오기도 한다.

‘아직 나는 이 문제를 말할 준비가 안되었어’

‘해결책도 모르겠는데 말해서 뭐해’

‘아마 말해도 서로 고민만 될 거야’

‘아직은 아무도 모르는 거 같으니 그냥 두자’

대충 이런 생각들을 하며 코끼리를 방치한다. 어떤 경우엔 먹이를 살짝살짝 주면서 키워가기도 한다. 방이 점점 좁아짐을 느낀다.


그녀는 코끼리를 사냥한다.

그녀는 전설의 총잡이 사냥꾼이다. 코끼리가 눈에 띄면 거의 바로 사살이다. 일단 코끼리는 방안에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보이면 즉시 사살하는 것이 원칙이다.

나는 때로는 좀 지켜보다가 사살을 하든지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코끼리가 문을 열고 나갈 수도 있지 않냐고 핑계도 만들어 보지만, 아직 코끼리들은 그런 기술이 없는 것 같다.

‘코끼리 나오면 말하라고 그랬죠?’

‘이 코끼리는 먹이를 줘서 키웠네요?’

‘코끼리와 같이 사는 건 답답하지 않아요?’


누가 이기는가?

나는 코끼리가 있다고 해도 사냥꾼에게 신고 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답답함을 느끼는 기준점도 좀 높은 편이다. 그러나 매번 느끼지만 코끼리는 점점 커진다. 아마도 나의 걱정이 그 녀석의 먹잇감인 것 같다. 먹는 양도 점점 늘어가고 불쾌한 냄새와 배설물이 넘쳐나게 되면 그때야 사냥꾼에게 신고를 하게 된다.

‘빵빵’ 그녀는 단숨에 코끼리를 처리한다. 너무 빠르고 간단해서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바로바로 해요 제발’

그녀의 코끼리는 자랄 틈이 없다. 곧바로 사살당하기 때문이다. 어느새 나도 코끼리는 바로바로 처리하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다는 것을 동의하게 되었다. 방안에 있던 여러 마리의 코끼리들이 빠르게 제거되었다. 어제도 아기 코끼리 한 마리가 들어왔길래 바로 신고했다.

‘사람은 다 변할 수 있어요. 그냥 그런 사람 잊어버려요’

이 한방의 총알이 코끼리를 바로 처리해준다. 누가 이기는가? 아무래도 사냥꾼이 유리한 것 같다.


오랜만에 코끼리 명단을 한번 점검해본다.

‘아! #1012가 아직도 크고 있구나, 성장 속도는 느린 거 같은데, 그래도 꽤 컸는걸’


사냥꾼에게 신고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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