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고통을 줄이는 기술
‘베라’는 북적북적하는 맛이 있던 매장이었다. 적어도 내 기억에서는 점원과 손님의 대화가 비교적 많은 매장이다.
이제는 서로 할 말이 많이 줄어버렸다. 대화가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정도로 간소화되었다. 개인적으로 부정적이지는 않다. 소통이 쉽지 않은 매장들이 있다. 주문의 복잡성이 개인에 따라 정도가 다르다면, 주문을 확인하는 일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게다가 주문자가 마음을 정하고 온 게 아니라면 고르는 시간까지 포함되어 시간은 더 소요된다. 그 와중에 또 다른 주문자가 등장하면, 이제 의사소통의 어려움이 증폭되기 시작한다.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먼저 오신 분 주문 도와 드릴게요’
‘아! 저 다른 걸로 바꿀게요’
‘저기요 주문받아 주실래요?’
‘아니요. 저 그거 안 시켰는데요’
이런 어려움은 음식을 주문할 때만의 일이 아니다. 대면해서 사람과 사람이 요구사항을 전달하고 그것을 처리하는 모든 업종에서 항상 발생하는 어려움이다.
말하는 사람은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고,
듣는 사람은 듣고 싶은 것을 듣는다.
잘 들어야 하지만 잘 못 듣고, 잘 말해야 하지만 잘 말하지 못한다. 조던 피터슨은 그의 책에서 ‘의사소통이 고도의 기술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렵다 보니 될 수 있으면 안 하고 싶어 진다. 비대면 의사소통의 문이 열린 뒤로 멈추지 않고 확장되고 있어 보인다. ‘이런 분야까지?’라고 할 만한 영역에도 비대면 의사소통이 늘어나고 있다. 의사소통의 고통을 줄여주고 혼선을 막아주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나는 소통이 어려웠다. 나를 표현하는 것에 자신이 없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은 주어진 정보 하에서 최대한 추리하는 스타일이었다. 추리력은 많이 개발되었지만 정보가 부족할 때 상대방에게 물어보는 용기? 가 없었던 극단적인 ‘i’ 성향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직접 소통 없이 혼자 해결하게 해 주면 마음이 편하다. 안 물어봐도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는 인터넷의 축복을 마음껏 누려 왔다. 처음 가는 매장에서 주저하는 나에게 키오스크는 유익한 도구이긴 하다.
그런데 키오스크에 주문하는 나와 주문을 확인하고 해당 메뉴를 만들어 주는 사람 사이에 무언가가 사라진 느낌이 든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처음 자판기를 만난 사람들의 이질감이 비슷한 느낌이었을까? 이제는 자판기를 넘어서 무인점포가 익숙해지고 있다.
언젠가는 실제로 사람을 대면해서 말을 하는 시간이 없는 하루를 맞이 할지도 모를 일이다. 확실히 소통의 고통은 줄어들겠다.
하지만, 소통을 줄이니 고통이 감소하고, 고통을 줄이니 소통이 잘될지는 모르겠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과연 어떤 방향일지,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은 어떤 모습에 도달할지. 궁금하고 한편은 염려도 된다. 쓸데없는 오지랖이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