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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치 Nov 13. 2024

필명은 난생 처음이에요.

음치, 몸치, 글치

어? 내가 왜 필명을 글치로 했었지? 가만있어보자.

작가 프로필을 들여다본다.

처음 브런치에 가입했던 2015년경, 작가 소개란에 적을 말이 필요했다. 글과 관련된 어떤 업적도, 경험도 없고, 필명의 의미조차 정확히 몰랐다. 실명으로 하기엔 부담스러워서 뭔가 이름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에 이런저런 말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가 좀 잘하는 게 티 나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지만, 좀처럼 잘하는 것은 튀어나오지 않았다. 잘하는 것을 생각하려고 하는데, 자꾸만 못하는 것이 생각났고, 온갖 ‘흑역사‘가 떠올랐다.


중학교 2학년 음악시간이다. 음악선생님은 아주 신경질적이고 예민하신 스타일이었다. 원래 그런 건지 올해 들어 몸이 힘들어서 그러신 건지 구분은 안되지만, 음악시간에 음악소리 보다 선생님의 고함과 타박하는 소리들이 더 많이 기억에 남는다. 그 와중에 2학년들 모두가 참여하는 합창 대회가 계획되어 있었고, 음악시간은 합창곡을 연습하는 시간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합창곡은 중간고사 실기곡이 되었다. 우리 반의 곡은 유명한 ‘Mother of mine’이었다. 영어로 불렀다. 2부 합창으로 연습했는데, 남중이었던 터라 신기한 방법으로 소프라노와 알토를 나눴다. 반이 50명 정도였는데, 1번부터 25번까지는 소프라노, 26번부터 50번까지는 알토였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키순서로 정해진 번호였기 때문에, 변성기 이전과 이후를 나누는 것과 유사하다는 논리가 근거였다. 연습하면서 보니 선생님의 기준은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기도 했다.


중간고사 실기 시험 날이 왔다. 1번부터 시험을 보기 시작했다. 곡 전체를 불러서 평가하진 않고, 몇 소절을 듣고 평가를 하셨다. 같은 곡을 계속 들으면서 평가해야 하고, 피아노 반주까지 하시면서 시험을 진행하다 보니 아마도 짜증이 좀 나셨을 것 같다. 아이들이 자기 타이밍에 안 나오면 계속 타박을 하셨다. 안 그래도 긴장된 실기시험이고, 자기 순서에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야 하는 긴장감까지 더해졌다.


나는 26번이었다. 1번부터 25번이 부른 소프라노의 음계를 25회 듣고, 빠릿빠릿하게 내 차례에 나가서 노래를 시작했다. 나름대로 열심히 불렀다. 몇 소절 불렀고, 이 정도면 끝나야 하는데 끝이라는 신호를 안 나왔다. 이상하다는 생각에 그제야 교실 안의 분위기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반의 아이들 대부분이 자지러지게 웃거나, 웃음을 참으려고 애를 쓰거나, 혹은 시선을 회피하는 등의 반응이었다. 이어서 나는 선생님이 계신 피아노로 시선을 돌렸다. 선생님은 그야말로 ‘폭소‘터트리고 계셨다. 피아노는 워낙 몸에 익으셔서인지 자동으로 연주되고 있어 보였다. 연주하는 어깨 위로는 정신없이 웃고 계셨다. 한 학기 내내 보지 못한 선생님의 웃는 얼굴이 반갑기도 했지만, 내가 노래를 웃기게 불렀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뭐가 웃긴 건지도 모르는 나는 노래를 더 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다행히 선생님은 ‘그만‘이라고 해주셨다.


‘아주 그냥 작곡을 했네 ‘


선생님의 평가였다. 나중에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내가 알토와 소프라노를 적절히 섞어 편곡된 곡을 불렀다고 한다. 그 곡은 듣기에 정말 웃겼다고 한다.


‘너는 다음 주에 다시 시험 봐!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다음 주에 잘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연습하고 해서 통과는 했다. 그러나 나는 그 후로 가끔씩 이 장면이 꿈에서 나오곤 했다. 교실의 아이들이 모두 웃고 있고, 피아노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 나는 혼자 노래를 하고 있는 장면이다. 그날 이후로 자타가 공인하는 ‘공식 음치’가 되었다. 신기하게도 합창대회는 우리 반이 2등을 했다. 놀라운 일이었고, 음악선생님도 놀라시긴 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음치인지 전혀 모르고 살다가 진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 더 놀라웠다.


음악시간마다, 교회에서 찬양을 할 때도 나는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내가 목소리를 내면 전체의 조화를 깨는 민폐라고 생각했다. 가급적 노래할 기회를 피해 다녔다. 노래를 안 해 버릇하니까, 더 못해지는 것 같았다. 어떻게 소리를 내는지도 잘 모르겠고, 음이 높낮이에 점차 둔감해졌다. 음치이력은 같은 동네에서 고등학교까지 나오는 바람에 고등학교까지 쭉 이어졌다. 음악이 너무 싫었다. 누군가 노래를 시키려고 하면 나는 공인인증서를 내밀듯 대답했다.


‘나 음치야, 노래 못해.‘


대학생이 되었다. 내가 하겠다고 하지 않는 한 굳이 노래할 일이 거의 없었다. 음악과 멀리 살았었는데 갑자기 음악이 다시 찾아왔다. ‘ROCK’이었다. 거부할 수 없는 그 에너지를 느꼈다. 대부분 따라 부르기 어려운 노래지만 너무 멋있었다.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디 가나 기타는 경쟁자가 많았다. 그래서 스틱을 잡게 되었고, 잘하지는 못하지만, 음악을 즐거워할 수 있게 되었다. 확실한 것은 이제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음치의 낙인효과로 인해 음악을 멀리 했었던 과거를 보상받듯, 음악은 삶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사실 그렇게 음치도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사실 몸치다. 운동을 너무너무 못해서, 음악에 대한 에피소드 못지않은 상처 깊은 이야기들이 있다. 지나가다 축구공이 흘러나오고, 축구하던 사람들이 뻥 차주길 바라는 상황이 가끔 펼쳐지면, 마치 나는 축구공을 못 본 사람처럼 가던 길을 갔다. 어차피 차도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 거기 때문이다. 축구와 동전의 양면 같은 존재인 군대에서조차, 이등병때 했던 단 한 번의 게임으로 말년까지 축구열외 티켓을 받게 되었다. 이 정도면 어느 정도 수준인지 경험자들은 잘 알 것이다.


세월이 지나 보니, 한 순간의 몸치라는 평가로 거리가 멀어져서 그렇지. 다시 시작해서 한 단계 한 단계 나아가다 보면, 운동선수가 되진 못해도, 즐길 수 있는 수준까지는 되는 것 같다. 특히 운동이나, 음악이나 이미 조예가 깊은 사람들이 해주는 레슨의 힘은 무시 못한다. 웬만한 일반인들을 어느 정도 수준까지 끌어올려 줄 수 있는 전문가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쉽게 누군가에게 ‘음치’네요. ‘몸치‘네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무엇을 도와 줄지 정확히 진단하고 그 부분에 필요한 조언과 반복연습을 제공한다. 축구 레슨은 못 받아봤지만, 어떤 욕구에서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는 복싱레슨도 그러했고, 앞서 말한 드럼 레슨도 일반인을 ‘즐기는 이’로 만들어 줌을 확인했다. 전문가란 그런 존재들이다.


마찬가지로, 국민학교 1학년 국어 수업에서 글자 쓰는 숙제로 인해 혼난 뒤, 무서워서 학교도 빠졌던 나는 ‘글‘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장래희망을 이과적인 것으로 잡으면서 더욱더 멀어졌다. 글을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에 이르기까지 했고, 심지어 작가라는 직업이 비생산적이라는 생각까지 했었다. 하지만, 도서관에서 살아야 했고, 전공서적이 즐비한 공학 분야를 넘어 인문, 철학, 사회 분야로 연결된 통로를 따라 자연스럽게 책을 읽어가기 시작할 수 있었다. 엄청나게 다독을 한 것은 아니지만, 책이 주는 매력에 빠져 들었다. 심지어는 공학이 학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과 엔지니어라는 직업이 너무 순수하지 못한 속물적인 것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언젠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가끔 메모장에 글을 남기곤 했다. 클라우드 시스템 개념이 아직 없던 때라, 많은 디지털 글들이 기기 변경의 장벽을 넘지 못했고, ‘싸이월드’ 감성의 글들도 많아서, 애써 저장해 두려고 하지도 않았다.


직장을 들어가면서부터는 그 모든 욕구가 ‘일기‘를 쓰는 것으로 대체되었고, 세월이 가면서 블로그라는 것도 건드려 보게 되었다. 블로그의 광고 클릭수를 의식하게 되면서, 쓰고 싶지 않은 글들을 써가는 나를 보며 회의감이 들 때, ’ 브런치’가 등장했다. ‘오픈 빨 소수경쟁 시기’에 스리슬쩍 들어와 지금까지 끄적이고 있다. 이젠 적어도 ‘즐기는 이’가 되어가고 있다.


음치, 몸치, 글치. 이런 말들은 출중한 재능이 없음은 확실하다는 의미다. 덕분에 순수하게 즐길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어차피 잘 못하는데 그냥 나 좋은 만큼 하며 살아도 되니까. 부담이 없다. 내가 문예창작과라도 나왔으면, 이렇게 글을 마음 내키는 대로 쓰고 살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누군가는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큰 의미가 없다.


난 ‘선출‘ 아니거든요. ’X치‘출신입니다.


누군가 필명에 대해 물으면, 대답할 것을 준비해 봤다. 이제 물어보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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