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이 있다는 말은 요즘 조심스럽습니다.
꼰대라는 말을 들을까봐 지레 한 발 물러서게 됩니다. 정답은 없어 라는 말이 주는 위로도 사실 큽니다. 하지만, 우리 삶의 모든 문제는 정말로 정답이 없는 것일까요.
여러 답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은 그럴듯합니다. 겸손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모든 답이 다 괜찮다고 말하는 순간, 판단은 멈춥니다. 옳음을 말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 틀림도 함께 사라집니다.
C.S. 루이스는 『인간의 폐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When all that says ‘it is good’ has been debunked, what remains is mere impulse.”
“무엇이 ‘선하다’고 말하는 모든 것이 해체되고 나면, 남는 것은 단지 충동뿐이다.”
답을 말하지 않기로 합의하는 순간, 우리는 무엇으로 판단합니까. 결국 남는 것은 각자의 기분과 이해관계일지도 모릅니다.
정답이 사라지면 오답도 사라집니다.
마치 모든 문제가 모든 수를 해로 갖는다고 가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무엇을 대입해도 맞다면 계산은 의미를 잃습니다. 검증도 필요 없고 수정도 요구되지 않습니다. 그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닙니다.
수학에서 해가 무한하다는 것은 대개 조건이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제약이 빠졌거나, 경계가 설정되지 않았거나, 식이 충분히 정의되지 않았다는 신호입니다. 조건을 세우는 일은 배타가 아닙니다.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최소한의 장치입니다.
정답 없는 세상은 한동안 편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편안함은 오래가지 않을 것입니다. 계절이 바뀌듯, 우리는 다시 묻게 될 것입니다. 이 문제는 정말 해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조건을 세우는 일을 피하고 있었던 것인지.
모든 방정식이 ‘해 없음’만을 답으로 갖지는 않습니다. 해 없음의 피로감의 끝에서, 어쩌면 우리는 다시, 답을 말할 용기를 배우게 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