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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팝콘 말고 나초 말고 Oct 10. 2021

영화 스터디 일기 : 헤드윅(2001)

*스포일러 주의

211009 '헤드윅'(2001) 발제문


1.

일단 너무 좋았다. 영화 보기 전에 뮤지컬 형식이랑 비교해보고 싶어서 헤드윅 프레스콜이랑 토니어워즈를 찾아봤는데 생각보다 무대는 담백하더라. 킹키부츠나 제이미처럼 공간이 많이 바뀌는 것도 아닌 것 같고 세트도 심플했다. 그냥 무명 밴드 콘서트 같았는데 헤드윅의 멜랑콜리한 분위기랑 잘 어울렸던 것 같다. 


2.

여간 뮤지컬 얘기를 꺼낸 건, 서사 자체는 뮤지컬에서 따온 거라고 해도 뮤지컬을 영화화한 연출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특히 카메라 무빙이 엄청나게 정신 없고 익스트림 클로즈업이 많은데, 그게 헤드윅의 불안정한 정서와 과거-현실을 오가는 서사 구조와 잘 어울렸다. 과거 회상 연출도 좋았다. 영화라는 매체가 뮤지컬보다 회상을 연출할 땐 훨씬 유리하다고 생각하는데 (시각적으로 ‘과거’라고 못박을 수 있는 장치가 더 많아서) 이 영화는 단순히 과거라는 걸 암시만 하는 게 아니라 환상 시퀀스를 통해 그 경험이 가지는 의미를 전달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헤드윅 가발을 쓰고 ‘앵그리 인치’ 밴드를 결성한 때나, 토미와 서로 사랑한다는 걸 깨달은 장면 등등. 엄마나 슈가 대디와의 일을 회상하는 장면에서도 레트로하면서도 비현실적인 느낌을 준 게 좋았다. <가위손>이 생각나기도 하는 화면이었다. 


3.

연출 면에서 또 좋았던 건 헤드윅의 타투를 활용한 거였다. 이츠학과 있을 때는 둘로 쪼개진 얼굴 타투였지만 토미와의 사랑을 받아들인 다음에는 하나된 얼굴이 되었다. 뮤지컬에서는 배경 화면에서 보여줬겠지 싶다. 이걸 놓치지 않고 영화적으로 활용한 게 좋았다. ('타투 클로즈업 -> 이츠학과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혼자 밤거리를 알몸으로 걸어가는 모습' 이런 구성으로)


4. 

서사 얘기를 좀 하자면… 솔직히 처음 봤을 땐 좀 심오해서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두 번째 보니까 조금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헤드윅이 토미를 쫓아 투어를 다니면서 본인의 과거와 트라우마를 되짚어보다가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는 이야기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까. 헤드윅이 자신을 장벽에 비유하면서 ‘Tear me down’을 부르는 게 인상적이었다. 헤드윅은 여자와 남자 사이에 있는 과도기적 존재고, 그래서 여/남을 구분짓는 장벽 그 자체고, 태초에 갈라져버린 사랑이고, 베를린 장벽이다. 그리고 자신이 싸구려 성전환 수술을 받고 신분을 속이고 미국까지 건너온 그 모든 이유인…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스스로를 장벽으로 만들어버린다. 장벽 없이는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될 것 같으니까. 토미가 헤드윅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고, 헤드윅도 토미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더이상 부정할 수 없음을 깨달으면서 헤드윅이라는 장벽은 무너진다.


5. 

헤드윅이 무너지고 탄생한 사람은 공연을 하기 전의 헤드윅(한셀)과 17살 토미의 합일이다. 헤드윅이 토미의 이마에 그려준 은색 십자가가 그 합일을 상징하는데, 둘은 모두 노시스의 모습을 하게 되면서 ‘하나’가 된다. ‘노시스’가 ‘지식’을 뜻한다는 것도 상징적이다. 이브가 선악과를 먹고, 태초의 해와 땅과 달의 아이들이 갈라지고 나서야 사랑을 알게 된 것처럼 헤드윅도 장벽이 되어서야 토미에 대한 사랑을 깨닫고, 다시 장벽을 무너뜨리면서 하나로 돌아가고자 한다.


6.

이쯤 되니까 이츠학이 진짜 불쌍해지는데 사실 첫 등장부터 안쓰럽다고 생각했다… 헤드윅은 전남친에만 관심이 있고 헤드윅이 하는 공연조차 자기연민, 자기파괴적 성격을 띠고 있다. 이츠학 입장에서 헤드윅은 정말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일 거다. 물론 헤드윅 시점에서 영화가 진행되니까 당연히 헤드윅의 행동들이 이해가 가지만 가스라이팅 당하는 이츠학이 너무 불쌍했다... 이츠학도 여성과 남성의 경계에 있는 사람인데 이츠학은 그걸 장벽으로 보기보다는 자신의 정체성으로 체화한 사람으로 보인다. 그래서 렌트에서 맡은 역할도 트랜스 캐릭터고. 여담인데 위키백과의 이츠학 캐릭터 설명이 독특하다.

“헤드윅의 남편. 인종청소가 한창이던 세르비아에서 미국으로 빠져나온 유태인 드랙퀸 스타. 헤드윅이 미국행을 돕는 대신 내건 계약조건 때문에 여장을 포기하고 남자로서 살아간다. 극중 여장을 포기한 트랜스섹슈얼 성향의 남자이지만 고음역대가 가능한 여자 배우가 연기한다.”

여간 그래서 원래는 트랜스 여성 캐릭터가 맞는데 영화가 나왔을 때 그 설명이 불충분해서 이츠학의 성별을 두고 갑론을박이 많았다고 한다.



스터디 후 생각 정리


1.

결말부의 헤드윅은 토미를 통해 사랑을 찾고 완전해진 게 아니다. 애초에 신과 운명, 정해진 사랑 같은 게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던지면서 스스로를 완전한 하나로 인정하게 된 것이다. 토미가 리프라이즈 해서 부르는 ‘Wicked Little Town’의 가사와 맨 마지막 헤드윅이 알몸으로 혼자 거리를 걸어가는 장면이 그걸 암시한다. 가발과 화장, 드랙 행위가 자신을 감추는 장벽이었는데 그걸 허물고 스스로의 본연의 모습을 사랑하게 된 거다. 그런 의미에서 <헤드윅>(2001)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헤드윅의 삶은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다고 느끼고, 다른 존재가 되고 싶은 모두의 삶이기도 하다.


2.

<헤드윅>(2001)에는 ‘신’과 ‘구원’의 테마가 녹아있기도 하다. 아담과 이브,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 등이 군데군데 등장한다. 헤드윅이 토미에게 ‘사랑은 없는 걸 창조하는 것이기 때문에 영원하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신이 인간을 창조한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 대화다. 헤드윅은 토미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의 신이 되어 ‘노시스’를 창조하고, 토미의 이마에 십자가를 그려주는 구원자가 된다. 이 구원의 노래가 ‘Wicked Little Town’이기도 한데, 헤드윅은 누군가가 자신에게 이 노래를 불러주길 간절히 원했지만 그런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 마지막에 토미가 이 노래를 헤드윅에게 불러줌으로써 헤드윅은 자기 부정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스스로를 구원한다. <헤드윅>(2001)은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게 된 사람의 이야기다.


3.

그래서 주제를 생각하면 헤드윅은 트랜스 여성 캐릭터가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한 드랙퀸 캐릭터 정도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츠학은 드랙을 하고 싶은, 하지만 헤드윅에 의해 억압당하는 트랜스 여성 캐릭터이다. 이츠학과의 관계를 통해 헤드윅이라는 사람이 가진 양면성과 모순이 드러나는 것 같아 한결 입체적으로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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