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지만 다르지 않습니다 - 류승연
먼 옛날, 왼손잡이가 천대받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왼손으로 밥을 먹거나 글씨를 쓰면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크게 혼나고 오른손으로 강제로 교정을 당해야(?) 했습니다. 단지 태어나기를 왼쪽을 쓰기 편하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고, 심하면 장애인 취급을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어떠한가요? 지금은 왼손잡이를 의식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실제로 제 친한 지인이 왼손잡이라는 것을 친분이 생긴 지 5년 만에 깨달았을 정도로 그 사람이 왼손잡이인지 오른손잡이인지 신경을 안 쓰는 세상이 된 것 같습니다.
장애인에 관한 책을 읽고 서평의 서두에 왼손잡이에 대한 글을 쓴 이유가 궁금하신가요? 저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장애도 왼손잡이와 같이 자연스러워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왼손잡이는 글씨를 쓰거나 밥을 먹을 때 오른손잡이인 '척'을 할 수 있지만, 장애인이 비장애인인 척을 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같다고 볼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왼손잡이를 향한 차별이 사라진 것처럼, 장애 또한 우리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장애인들이 자꾸 모습을 드러내야 비장애인들도 그들에게 익숙해집니다. '장애'가 낯설지 않은 것이 됩니다. 풍경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p. 103)
저도 책을 읽기 전까지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지는 않았습니다. 아니, 아무 관심이 없었다고 표현해야 더 정확하겠네요. 그리고 애써 외면하고 있기도 했고요. 그러니 자연히 장애인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았기에 그들에 무지했고, 무지함은 곧 두려움이 되었습니다. 발달 장애인을 길에서, 지하철에서,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혹시나 저에게 해를 끼칠까 두려워 피하기도 했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낼 때도 있었습니다. 저의 무지함과 무관심함을 반성합니다.
우리가 불안할 때 볼펜을 까딱거렸다고 해서 위험한 상태가 아니듯이, 발달장애인이 상동행동을 하고 있다고 해서 위험한 상태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p. 47)
제가 이 책에서 읽은 대목 중 가장 실생활에 도움이 될 구절이 바로 위 구절입니다. 발달장애인의 얼핏 무서워 보이는 반복 행동은 불안함을 나타내는 행동이라고 합니다. 그들의 감각은 우리와 다르고 표현 방식도 우리와 다릅니다. 우리는 불안하면 다리를 떨기도 하고 손톱을 물어 뜯기도 하잖아요? 마치 우리는 글씨를 오른손으로 쓰지만 그들은 왼손으로 쓰는 것과 같다고 할까요. 익숙하지 않을 뿐 불안함을 몸으로 표현한다는 점은 같습니다.
책을 읽으며 발달장애인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끝까지 읽는 내내 불편함이 가시지를 않았습니다. 이는 장애인뿐 아니라 제가 현실에서 무의식 속에 숨겨두고 애써 외면하는 것들이 의식 속에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목숨의 위협을 받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전쟁 속의 사람들, 돈이 없어서 생면부지 사람에게 고개 숙이고 구걸을 하는 사람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고통스러운 환경에서 살면서 고기로 사육되는 동물들, 인간이 편하자고 만들고 배출해서 더럽히고 있는 지구 환경. 당장 내 삶을 포기하고 미약하게나마 도움을 주려면 얼마든지 줄 수는 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아 다시 마음 한편에 밀어 넣고야 마는 현실들.
알고 보니 장애인 문제는 우리 사회 모든 소수권자에 대한 문제였다는 것입니다. 다수와 다른 소수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 거기서부터 모든 게 출발했습니다. (p. 163)
부끄럽지만 제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이렇게 관심을 가지고 글을 쓰고 주변의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를 고치는 정도밖에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또 머리로 안다고 당장에 행동이 바뀌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책에 나오는 섬뜩한 대목처럼 우리 모두는 예비 장애인입니다. 사고를 통해서든 고령화를 통해서든 결국 타인에게 의지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때가 올 것입니다. 이를 염두에 두고 다름을 인정하고 불편함을 감수하며 주변을 돌아보는 용기를 가져야 조금씩이나마 세상이 바뀔 것이라 믿습니다. 작은 날갯짓이라도 있어야 산들바람이 되고 큰 바람이 되어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을까요? 당연하게 여겼던 것부터 다시금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연습을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