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너머 해녀 흔적에 눈을 맞추다

아기상군 해운대 블라디보스토크에 가다 2

by 고미

거기에 해녀가 나왔어?

벌써 1년이 지났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선정된 동명 소설(이선진 작)을 원작으로 한 Apple Original 시리즈 ‘파친코-Pachinko’가 던진 파문에 흔들렸던 것이.. 고국을 떠나 억척스럽게 생존과 번영을 추구하는 한인 이민 가족 4대의 삶과 꿈을 그려낸 대하드라마는 공개되자마자 시청자와 평론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해 워싱턴포스트, 뉴스위크 등 미국 언론은 물론이고 영국의 글로브앤드메일은 “올해의 위대한 드라마가 아니라 지난 몇 년 중 최고”라고 평가했다. 올 초 미국 크리틱스 초이스 최우수 외국어 드라마상을 수상했다.

전 세계(일본을 제외한)의 관심을 모은 배경은 진정성에 있다. 유명 배우가 나오는 것도, 그렇다고 눈 돌아갈 만큼 화려한 기술이 접목된 것도, OST의 매력이 저절로 흥얼거림을 불러일으킨 것도 아니었다.

'파친코'에는 3·1 운동, 일본의 조선 쌀 수탈, 치쿠호(筑豊) 광산 등 조선인 강제노역, 일본군 위안부 등 일제 강점기 일본에 의한 탄압의 역사 뿐 아니라 일본인들로부터 멸시와 차별을 받았던 조선인들의 모습과 관동대지진 대학살의 진실,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역사가 담겨있다.

이유는 많다. 나름 오래 준비한 기획 취재를 마무리해야 했고, 10년을 미뤘던 논문을 썼다. 그 안에 ‘아기 상군 해운대’ 강예길 할머니가 늘 자리했다. 할머니의 삶 속에는 ‘파친코 속 선자’, 4대의 이야기를 훨씬 뛰어넘는 서사가 녹아있다. 일부러 ‘파친코’를 소환했다.

애플TV 드라마 시리즈 <파친코>중 어린 선자가 해녀들에게 물질을 배우는 장면. ⓒ 애플TV
애플 TV 드라마시리즈 <파친코>에서 선자의 아버지 훈이가 물질을 하는 선자를 기다리는 모습. ⓒ 애플TV


같이 숨을 쉬고 또 내쉬고


‘파친코’에서 노년의 재일교포 선자를 연기한 윤여정 배우는 한 인터뷰에서 “아홉 살 선자가 해녀(처럼 물질)할 때 아버지가 (뭍에서) 같이 숨 쉬어주는 장면을 보고 울었다. 한국인의 사랑을 느꼈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명장면으로 꼽는 부분이기도 하다.

첫 회에서 오랜 기다림 끝에 하나뿐인 딸을 얻게 된 아버지는 선자가 동네 해녀들에게 물질을 배우는 동안을 지킨다. 선자가 물속에 들어가는 순간 함께 숨을 참으며 기다리다 긴 잠수 끝 직접 딴 전복을 흔들며 물 위로 올라온 딸과 함께 숨을 내쉰다.

윤여정 배우의 뭉클함에는 지난 2016년 5월 개봉한 창감독의 ‘계춘할망’의 경험도 보태진다. 타이틀롤을 맡은 윤여정 배우는 평생 물질을 하며 살아온 제주 ‘어머니’를 연기했다. 핏덩이로 맡겨졌던 손녀를 장에서 잃어버린 상실감과 10년 만에 다시 만난 손녀에 대한 한없는 믿음을 바다와 같은 사랑으로 그려냈다. 그랬던 윤여정 배우에서 ‘해녀’는 특별할 수밖에 없다. 단지 그 것만이 아니다.

당시 부산 영도에 해녀가 있었던 이유는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와 맞닿아 있다.

바다와 인접해 있는 지역에서 해산물을 채취해 먹고 사는 일은 어쩌면 흔했다. 부산에도 제주해녀가 출가(出稼)하기 이전에 해녀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거란 의견에 동의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부분은 공동체의 영역이다. 선자에게 물질을 가르쳐 주던 ‘삼춘’들의 존재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영화 계춘할망 중 한 장면.


그래서 그들은 영도로 갔다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물질을 다녀온 제주도 구좌읍 행원리 출신인 강예길 할머니(1989년 별세)의 이야기는 1994년 제주도(특별자치도 지정 이전)가 제주 출신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집대성한 「제주의 민속」시리즈 Ⅱ권 생업기술·공예기술과 Ⅲ권 의·식·주 문화와 1999년 나온 「한국의 해녀」에서 찾을 수 있다.

‘현지조사에 뛰어들어 보면 일본 물질을 다녀온 해녀들은 어렵잖게 발견된다. 광복 때까지 해마다 1천 수백명씩 일본을 드나들 만큼 일본 물질은 극성스러웠고, 그 수요도 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칭따오(靑島)·따리엔(大連) 등 중국이나 블라디보스토크 같은 러시아로 물질 나가는 일은 드물었으매, 그 곳을 다녀온 해녀들도 만나보기 어렵다’는 조사 자료들 속에서 이름 석자를 남겼다.

부산 영도구 해녀문화전시관 주변에서 물질을 마치고 돌아오는 해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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