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다 함께 '봄', 그리고 다시 '봄'을 기약하며

177회 스밥 : 스타트업 봄 먹고 힘내

by 고미


스밥 6기 마지막 밥상


새해를 떡국으로 진하고 구수하게 시작하면서 ‘다음’이 살짝 고민됐습니다. 정말 살짝이었습니다. 운영진 사이에서 나온 말 하나가 ‘아하 이거다’가 됐습니다. 스타트업 씬에서는 1월은 숨을 고르고 2월부터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준비하고 움직인다는 귀띔에 할 일이 생각났습니다. 지난해부터 조심스럽게 ‘힘들 것’이란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생각보다 빨라 얼어붙은 현실은 저절로 봄을 부르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한 번 해보자 싶었습니다, “봄 먹고 힘내”라는 응원을.

코로나19시대 속에 나름 최선을 다했던 운영진들을 격려하는, 특별한 봄맞이를.


2023 2월 스밥
언제 : 2023. 2. 26(목) / 어디서 : 신혜의원
함께한 이들 : 스타트업 , 운영진 4명
1부 – 그러니, 봄 먹고 힘내
2부 – 봄처럼 피어보자, 우리


2023년 두 번째 스밥 모임 후기가 좀 늦었습니다.

이런저런 일이 있었습니다. 소소하게는 눈물 콧물 훌쩍이며 정리했던 글을 눈앞에서 잃어버리는, 가슴 덜컥한 실종(?) 사건을 치렀고 ‘6월까지는 얼굴을 보자’하던 분위기가 어느 순간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로 정리됐던 일이 이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의 어깨를 두드려줬고 든든한 동행자가 됐다는 사실만큼은 기록해야 했습니다. 왜냐고요? 우리가 먹은 것은 ‘꽃 필 봄’이었고, 의로와 공감, 응원으로 움트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신혜의원...이야기


이번 스밥이 특별했던 데는 봄이 있었습니다. 공간부터 그랬습니다. 운영진 중 한명인 알레의 공간이 열렸습니다. 알레는 ㈜시드그라운드라는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 거점을 할아버지의 추억과 시간을 품은 신혜의원에 만들었습니다. 신혜의원은 40여년 전부터 상도동 주민들과 함께 호흡해 왔습니다. 아픈 몸과 마음을 돌보는 인술(仁術)을 베푸셨던 1대 할아버지와 2대 어머니까지 ‘소아과’라는 진료 과목을 유지했습니다. 알레 역시 인술의 맥을 잇고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인술에는 ‘사람을 살리는 어진 기술’이란 뜻이 있습니다. 흔히 의술을 빗대 표현하는 말이지만 요즘 해석은 좀 달라도 괜찮습니다. ‘마음이 너그럽고 착하며 슬기롭고 덕이 높다’는 어질다는 말도 세상을 타고 시간을 머금으며 다양하게 써도 좋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린이, 그러니까 다음에 대한 애정을 아끼지 않았던 마음은 치유와 힐링이 필요한 요즘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하는 공간으로 이어집니다. ‘신혜의원’이야기는 이번 스밥 모임과 밀접합니다. 왼손과 오른손으로 마주쳐 소리를 내고 맞잡아 온기를 전합니다.


문화예술로 전하는 온기


신혜의원의 시드그라운드 버전은 문화예술을 더해 포근합니다. 소셜미션을 가지고 정기적으로 아티스트들과 함께 전시회, 음악회, 명상회 같은 것을 진행합니다. ‘품’이라는 귀띔에 “맞다”고 저절로 무릎을 치게 합니다.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병원은 존재만으로도 무서운 곳이었습니다. 병치레가 잦았던 탓에 울지 않고 주사도 잘 맞고, 알약도 잘 삼키는 그런 아이였지만 ‘그 때로 돌아갈래’를 물으면 0.1초도 주저하지 않고 ‘아니’라고 말할 정도이니까요. 그런데 이 공간은 구석구석을 돌며 그랬었지, 그랬었어 같은 그리움의 감탄사를 쏟아내게 했습니다. 손때가 느껴지는 청진기를 만져보고 설렐 정도였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었어요. HWAGASHIN의 첫 개인전인 ‘안개는, 조금씩(The fog, Little by little)’이 클로징 후에도 자리를 지키며 스밥 봄맞이의 응원군이 되었습니다. 1998년생 화가신에게 그림은 무력감에 빠진 현실에서 몸과 마음을 일으키게 한 빛이었다고 합니다. 이제 20대 청년이 기침처럼 내뱉는 모호함을 그저 개인적인 문제라고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같은 청년이면서도 뒷배를 자처한 언니의 믿음과 큐레이션에 힘입어 자신이 경험한 시간과 사람, 감정을 풀어내면서 분명 달라짐이 느껴졌습니다.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느껴진 것들을 옮겨냈다는 캔버스 앞에서 각자 미묘하게 다른 것을 보면서도 비슷한 감정들로 공감하는 과정이, 공간 안에서 펼쳐집니다. 마치 약속도 없이 온갖 색깔로 피어난 꽃들이 들판을 정원으로 만드는 느낌이랄까요.


우리가 모여서 먹은 '봄'은


그래서 스밥의 2월 밥상이 어땠냐고, 현기증이 난다는 아우성이 들리네요.

일단 제주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저 그레이스까지 운영진 전원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알레의 공간에서 차리는 밥상에 손과 마음을 보태기 위해서였죠. 여려 보이지만 언 땅을 뚫고 나온 봄나물과 갓 지은 밥을 너무도 잘 아는 맛 고추장 양념에 슥슥 비벼 먹는 의식에는 정성이 곁들여지는 것이 당연했지요.

이날 밥상에서는 여성들의 자유로운 여행과 경험을 돕는 송소연님과 눈깜짝 할 사이 단계를 밟아가는 IT 환경의 교육 네비게이션으로 활약하고 있는 최희주님, 그리고 로컬 크리에이터이자 문화기획자, 액팅코치 등 다양한 영역에서 ‘나’를 찾고 있는 조서율님이 함께 했습니다.

딱 ‘봄’이 필요했던 까닭에 밥을 먹고, 디저트를 나누고, 작가와 전시 작품 얘기를 하고 남은 시간 모두를 자신을 위해 아낌없이 썼습니다. 이 길이 맞는 것인지, 내게 맞는 것이 무엇인지, 잘 살고 있는지 같은. 어쩌면 당연하고 또 어쩌면 일상적인 질문들이 봄을 부릅니다. 탐색의 과정을 지나 유용하고 멋진 일을 하고 있다는 말 한마디가 갓 짠 참기름보다 고소하고, “그래서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요”하는 질문이 햇딸기의 그것을 뛰어넘는 새큼함으로 옆구리를 찌릅니다.


저마다의 자리에서 언젠가 꽃 필 날에


‘이제 봄’이어서 그런지 가슴 속에 씨앗 하나를 품고 있는 느낌입니다. 틔울 일만 남았는데 그 안에서 무엇이 나올지는 아직 모르는, 그래도 잘 틔우고 싶은 마음이 이어집니다.

봄을 덜어내고 나면 각자 하는 일도 다르고, 살아가는 방향도 다르고, 올해 목표는 더 다르고 온통 다른 것 투성이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다름이 묘한 공감으로 이어집니다. ‘아 그렇구나’의 영역입니다.

‘IT 교육 지원’이 사업 아이템으로 민첩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은, 솔직히 흥미로웠습니다. 한발 앞서 변화를 읽고 커리큘럼을 만드는 과정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대상에 따라, 수준에 따라, 환경에 따라 등등 변수도 많습니다.

‘여성’특화 영역은 또 어떨까요. ‘혼자서도 자유롭게’에 남녀 구분은 없지만 말을 꺼내는 것만으로도 젠더 프레임이 씌워집니다. 불편한 것은 보지 않으면 될 일입니다. 그런 거지요. 정해놓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일, 그렇게 움직일 동력을 찾는 일이면 충분합니다.

문화 콘텐츠의 영역은 마치 화성(Mars) 같습니다. 화성은 최저 영하 140~176도, 최고 20도로 일교차가 큰 혹독한 날씨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기 중 산소도 극히 적고 95%가량이 이산화탄소, 대기의 수증기를 전부 물로 바꿔도 대지 표면을 10∼20㎛(1㎛는 100만분의 1m) 두께로 덮을 정도로 매우 적어서 현재 화성에서 생명체의 존재를 찾기 어렵습니다. 그 안에서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의 구분을 짓는 것이 쉬울 리 없습니다.



우리는 그날을 새 봄이라 믿는다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뭔가 보이는 것이 있었습니다. 다들 꽃이구나 싶었습니다. 김명수 시인의 ‘우리나라 꽃들엔’의 일부처럼.


“우리나라 꽃들에겐

설운 이름 너무 많다

이를테면 코딱지꽃

앉은뱅이 좁쌀밥꽃

건드리면 끊어질 듯

바람 불면 쓰러질 듯


아. 그러나

그것들 일제히 피어나면

우리는 그날을

새 봄이라 믿는다”


온실에 있기 보다는 밖으로 나오길 꿈꾸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행동하고, 종종 예상 못 한 일들에 부대끼고 ‘안돼’나 ‘아니’에 부딪히면서도 활짝 펼 일을 생각하는. 그 것이 훨훨 창공을 누빌 날개는 아닐지언정 입가에 미소가 묻어나는 꽃이 될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봄 먹고 힘을 냈으니 더 곱게 피어나겠지요.

네, 그런 봄입니다. 만물이 소생해 설레고 화사한 것들로 눈이 즐거운 봄도 있지만 우리가 꽃 피울 봄은, 미처 몰랐던 일들을 챙겨 다음을 기대해 ‘봄’이었습니다.

스밥 6기의 마지막 밥상이었지만, 그 마지막이 다 같이 ‘봄’이어서 행복했습니다. 그래야 다시 ‘봄’도 가능할테니까요. 모두 감사했습니다. 함께여서 고맙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공감, 그것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