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밥6기, 에디터가 되다 12-누구를 위한 변명, 틀과 틈에 대한 고민
‘워케이션’이란 단어에 풍선이라도 달렸나 보다. 요즘 여기저기서 총천연색의 것들이 둥둥 정신없이 떠다닌다.
워케이션은 ‘일(Work)’과 ‘휴가(Vacation)’의 합성어로 최근 도입하는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지자체들도 앞다퉈 유치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지난 6·1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나선 주요 후보들이 '워케이션' 관련 공약을 내걸었고, 이중 상당수는 현재 당선인이 됐다.
지자체 입장에선 워케이션을 통해 젊은 직장인들이 일정 기간 지역에 머물면서 경제활동을 이어갈 수 있다는 점을 매력적으로 보고 있다. 젊은 세대를 거주시키기 위해 출산장려금이나 전입지원금 등을 제공하는 인구유입 정책 의 부담을 덜면서도 젊은 인구를 끌어올 수 있다는 점을 주의 깊게 보고 있다.
티몬이나 야놀자, 토스 같은 스타트업에서 시작한 워케이션 근무가 최근엔 한화생명이나 CJ ENM 등 대기업으로 확산되면서 제주는 물론 남해시, 양양군 등 해안가에 오피스 공간을 두고 회사마다 짧게는 일주일부터 길게는 한 달까지 원격 근무를 지원하는 형태가 등장했다. 이 정도면 대세다. 과연 그런가.
지난해 말 휴가지 원격 근무, 일명 ‘워케이션’의 생산유발효과가 약 4조5000억원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한국관광공사의 ‘워케이션 활용 국내관광 활성화’연구 보고서다. 보고서는 국내 워케이션 예상 수익시장을 통대로 경제적 파급 효과를 분석했다.
약 4조5000억원의 생산유발효과 외에도 부가가치유발효과 약 2조1000억원, 소득유발효과 약 9000억원, 고용유발효과 약 2만7000명의 간접유발 효과가 있을 것으로 계산했다.
워케이션에 관한 인식개선과 활성화를 전제로 원격근무를 전 직종으로 확대했을 때 3500억원 이상의 직접 지출 효과가 있을 것으로도 예상했다.
제대로 운영만 된다면 지역 경제를 활성화 시킬 수 있어 낮은 재정자립도로 소멸 위기에 놓인 지자체들에게 호재라는 제언도 나왔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서울-강릉 2시간, 서울-부산 2시간15분, 서울-제주도 55분, 부산-제주도 62분 등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에 들어 사무실 근무와 워케이션의 빠른 전환 및 유연한 대처가 가능하다는 점을 들었다.
이를 토대로 한국관광공사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국내 11개 기업 직원들에게 휴가지 원격근무를 지원하는 ‘워케이션 시범사업’을 추진한다.
새로운 근무 형태를 통해 국내관광 수요를 새롭게 창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이달(6월)말까지 운영하는 것으로 기획됐다. 이 사업에 참여하는 기업은 티몬·휴넷 등 총 11곳으로, 이들은 전국 8개 지역(강릉, 남해, 부산, 속초, 양양, 전주, 제주, 평창)에서 워케이션을 하는 내용이다.
인과관계, 무엇보다 시간 순서상 배열하니 보이는 것이 있다.
현재 눈 앞에 펼쳐진 워케이션은, 현실이 된 꿈이 아니라 시범사업이라는 ‘빙산’이라는 사실이다.
참여기업들 입장에서는 워케이션 제도 도입, 운영을 통해 근로자 복지 증진 및 업무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이 긍정적일 수 있다. 평일 해당 지역 호텔 등 숙박시설에서 머물며 지역공유 오피스에서 원격근무를 하고, 일과 후엔 자유롭게 지역에서의 각종 체험 활동을 즐긴다.
이를 위해 공사는 시범사업 참여자에게 숙박과 체험 비용 일부를, 기업은 근로자의 평일 근무를 인정해주고 숙박비 일부 등 경비를 지원한다. 코로나 시대에 적합한 근무 형태와 새로운 관광수요를 발굴·개발하는 사례로 의미가 있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다음’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워케이션 오피스가 빠르게 형성되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전망에는 어폐가 있다. 코로나19 사회적거리두기 상황에서 대부분 관광지는 절망했다. 어쩌다 찾아오는 관광객만으로는 시설 유지비도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런 참에 객실을 한꺼번에 수십개, 심지어 숙박시설 하나를 통째로 빌려주고 돈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은 눈물이 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사정이 조금 다르다. 예를 들어 제주만 하더라도 밀려드는 관광객들로 항공권은 하늘의 별 따기 상황이 됐고, 렌터카도 동이 났다. 이전 계획했던 예산의 최소 3~4배는 투입해야 원하는 ‘워케이션’을 세팅할 수 있다.
예산에 맞춰 인적이 드물고 한적한 곳을 애써 고르는 것이 구성원들의 만족도와 연결된다고 보기도 어렵다. 더 냉정하게 워케이션의 정의가 아직 모호하고 목표가 명징하지 않은 상황에서 부작용이 먼저 고개를 들 수 있다는 점을 툭 건드려본다.
일단 질문 하나. 왜 워케이션인가.
보고서는 디지털노마드와 MZ세대, 자녀가 있는 기혼 그룹으로 나눠 워케이션에 대한 이해도와 희망을 물었다.
디지털 노마드는 고정되지 않은 업무환경을 경험해 본 그룹으로 공유오피스와 즐기는 관광 형태를 선호했다. MZ세대는 조금 다른 해석을 했다. 워케이션을 강력한 복지로 인식하면서도 이미 경험한 재택근무와 같은, 원격근무의 연장선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했다.
기혼 세대는 자녀 양육에 대한 니즈를 내비쳤다. 가족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형태를 희망하기는 했지만 집이 아닌 곳에서 일과 육아를 부담해야 한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공통적으로 업무를 하면서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유연한 근무시간을, 팀 단위 워케이션은 워크숍의 연장선이나 마찬가지라는 점을 경계했다. 강제성 있는 네트워킹 역시 호불호가 갈렸다. 다만 기혼 세대는 워크숍 형태를 선호했다.
기업들 입장에서도 워케이션은 복지 개념이기는 하지만 업무 효율성 측면에 대해서는 아직 확신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워케이션이 대세라는 이유는 뭘까.
이면에 깔려 있는 의도는 처음에도 잠깐 언급한, 지역소멸을 우려하는 지방자치단체들의 인구감소 대책이다.
예를 들어 충청남도의 구상을 보자. 지방선거에서 지역 당선인은 '워케이션 충남'을 선언하며, '워케이션 실리콘밸리' 구상을 내놨다. 서산과 태안, 보령 등 충남을 대표하는 서해안 관광지역에서 휴양을 즐기면서 평일 원격근무가 가능한 젊은 직장인들을 지역구로 끌어들인다는 그림을 그렸다.
마침 행정안전부가 올해 청년 마을 만들기 지원사업에서 지역 내 도고 온천을 워케이션 근무지로 조성하겠다는 충남 아산시의 계획을 낙점했다. 제대로 맞아떨어진다면 좋은 내용이지만 정말 그럴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근로자의 일정 기간 지역 체류가 미치는 영향은 어디까지나 한정적이다. 내륙의 경우는 더 그렇다. 워케이션이라는 기준을 봤을 때 체류 기간은 길게 봐야 ‘한달’이다. 그 ‘한달’을 위해 주민등록 주소지를 옮기지 않는다면 특정 기간 지역에 머무르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 이상의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대로는 지역경제효과도 일부 업종에 한정되면서 기대했던 선순환은 달나라로 가버릴 공산이 크다.
향후 B2B(기업간 거래)채널을 활용한 기업체 대상 워케이션 상품 판매 지원과 함께, 참여자 의견 수렴 등을 거쳐 향후 워케이션 표준 가이드라인도 정립해 나가겠다는 구상도 현 상태로는 현실화까지 넘어야 할 산이 여럿이다. 지역 또는 마을 주도 농촌관광이 걸음마 수준에서 벗어났다 싶은 순간 유사한 상품들에 휩쓸리거나 지역 여행 상품의 흔한 옵션으로 후퇴했던 경우를 잊으면 안된다.
솔직히 그보다 더 진중하게 살펴야 할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뭔가 한다’는 것은 누군가의 입을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내 의지에 따른다는 의미가 아닌가.
새 정부의 지역 균형발전 정책 청사진에는 지역 주도 균형발전과 혁신성장 기반 강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 지역 고유의 특성 극대화 등 3대 약속을 중심으로 한 15대 국정 과제와 76개의 실천 과제가 포함됐다. '어디에 살든 균등한 기회를 누리는, 공정·자율·희망의 지방시대'를 비전으로 설정했다.
분명 그 안에 쓸만한 것, 쓸모가 있는 것이 있다는 얘기다. 지역에 청년을 불러모으는 것이 아니라 붙드는 카드로 ‘워케이션’을 쓴다는 것은 그 중심에 청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전제가 돼야 한다.
지방소멸지수를 연구하는 고용정보원이 제안한, 지역 주도성을 바탕으로 한 산업과 복지·교육이 서로 연계된 일자리를 ‘가능성’ ‘시장’이라고 읽을 필요가 있다.
도전장을 내밀겠다는 지자체들 중에는 너무도 당연하게 ‘국비 지원을 받아 인프라를 만들면 어떻게’하는 답을 꺼낸 곳도 있다. 한 두곳이 아니다.
‘워케이션’을 지역을 살릴 카드로, 또 빠른 속도로 레드오션이 된 판에서 경쟁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과 ‘어떻게’를 분명히 해야 한다.
몇 년 전 일로 기억한다. 링크트인 창업자인 레이드 호프먼이 자신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매스터스 오브 스케일'에 초대한 CEO들을 상대로 "크게 생각을 할 때(think big) 어떤 장소를 선호하느냐"라고 물은 적이 있다. 이른바 ‘미국 실리콘밸리 IT(정보기술) 업계 스타 최고경영자(CEO)들은 어디서 창의적 사업구상을 할까’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부터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창업자까지 12명이 답했다.
진행자인 레이드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카페와 같이 새로운 장소가 새로운 생각을 하기에 적합하다"고 운을 뗐다.
세계 최대 숙박 공유업체 에어비앤비 CEO 브라이언 체스키는 샌프란시스코의 월트디즈니 패밀리 뮤지엄을 꼽았다. 박물관이 사색하기엔 최적의 장소라고 덧붙였다.
저커버그는 '우리집 앞마당'이라는 평범한 답을 내놓았다. 잔디 마당을 빙글빙글 돌면서 골똘한 생각에 잠긴다는 것이다.
민티드 CEO 겸 창업자 매리엄 내퍼시는 '관광명소'라고 답했다. 샌프란시스코의 상징인 골든게이트브릿지(금문교)에 올라 러닝화를 신고 뛰면서 사업구상을 한다는 귀띔을 했다.
블로거 앤드 미디엄 창업자 에번 윌리엄스도 ‘움직일 수 있는 한도에서 가장 멀리 걸어가는 것이 큰 생각에 도움이 된다’고 비슷한 답변을 했다. 벤처 캐피털리스트 피터 틸은 ‘자연 속 아름다운 곳이라면 어디든 생각에 좋은 장소’라고 했다.
넷플릭스 CEO 리드 헤스팅스는 캘리포니아주 샌타크루즈의 자택 거실이라고 답변했다.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 셰릴 샌드버그도 '뛰는 곳'을 택했다. 대신 자연이 아니라 다소 인공적인 트레드밀(러닝머신) 위에서 생각하는 습관이 있다고 했다.
엉뚱한 생각의 장소를 꼽은 경영자도 있었다.
클래스패스 CEO 페이얼 캐데이키아는 '댄스 스튜디오'를 택했다. 징가의 창업자 마크 핀커스는 넘실대는 파도 위 서프보드에 몸을 실었을 때 가장 창의적인 생각이 떠오른다고 답했다.
실리콘밸리의 큰형 격인 빌 게이츠의 대답은 “어디에 있든, 걷거나 운전할 때가 뭔가를 생각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었다.
워케이션이란 어쩌면, 아니 정확하게 창의적인 생각을 하고 한 발 더 나아갈 기회를 만드는 것으로 정리하는 것이 맞다. 어정쩡하게 일도 아니고, 휴가도 아닌의 논란을 부를 일은 더더욱 아니다. 보이지 않던 것을 보고, 보고 싶었던 것을 생각해 내고, 봐야 할 것을 찾아낼 '틈'을 만드는 과정이라면 더 유용하다.
보고서가 온통 장밋빛은 아니었다. 국내·외의 응용할 수 있는 사례를 잔뜩 모아놓은 바람에 짜증이 나기는 했지만 그만큼 ‘틈이 보인다. 실리콘벨리의 CEO들이 은연 중에 삶에 녹였던 무엇이 불끈불끈 할 것을 만들어낸다. 누가 만든 틀이 아닌 스스로 만드고 찾아내는 '틈'이 워케이션의 새정의가 될 때 진짜 힘이 되지는 않을까.
연구진이 남긴 코멘트에서도 읽을 수 있는 것들이다. 워케이션에 대한 낮은 인식(어쩌면 공감 부족), 비용 부담(중요한 포인트), 유연근무제 비정착(현실) 등을 걸림돌로 들었지만 그보다는 "워케이션이 활성화된다면 국내 관광 활성화, 국민 삶의 질 증진, 지역소멸 대안, 나아가 인적자원 확보 기반 및 기업 경쟁력이 강화될 것"이란 해석이 아슬아슬 불안하면서도 '진짜 그래?'하는 전투력에 불을 댕긴다.
그렇다고 끌려가지는 말자. 깊게 몇 번 심호흡을 하고 나니 문뜩 이런 것이 생각났다. 우리의 DNA에 있는 것, '불완전함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불끈불끈. 그렇게 새로 길이 날 것이란 기대가 불끈불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