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우리에게 빚이 없어"

스밥6기 에디터가 되다 11-스타트업 '젠더'를 말하다

by 고미

선거 바람에 조금 묻히기는 했지만 5월 한 달 뜨거웠던 말이 하나 있다. ‘구조적 성차별’.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언급했던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말은, ‘정말?’이라는 이름의, 아직 덩치는 작지만 허연 콧김을 뿜어대는 회색 코뿔소로 변해있다.

‘여성가족부 폐지’로 시작해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의 하나로 여성을 인간으로서 존중하는, 그런 것’이란 언급이나 미국 워싱턴포스트(WP)와 인터뷰에 등장한 “나는 나를 페미니스트로 여긴다”(In that sense, I consider myself a feminist)는 발언의 진실 공방, 남성 중심의 내각 인선 등 잊을 새 없는 이슈를 만들었다.

학습효과란 것이 있어서, 조금은 달라질까 했던 기대는 바람처럼 스쳐 지나갔다. 지난달 21일 한미정상회담 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공동기자회견에서도 ‘성평등’관련 질문을 받는다. 이번에도 WP 소속 기자가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은 한국 사회, 내각 인선에서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을 언급하며 “여성의 대표성 향상과 성평등 증진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생각인가”라고 질문했다. 윤 대통령은 약 7초간 말을 하지 못하다가 “지금 공직사회에서 예를 들면 내각의 장관이라고 그러면, 직전 위치까지 여성이 많이 올라오지 못했다”며 “아마 우리가 각 지역에서 여성의 공정한 기회가 더 적극적으로 보장되기 시작한 지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이러한 기회를 더 적극적으로 보장할 생각”이라고 답했다.

앞으로 기회를 줄 것이다, 아직 우리나라는 준비가 덜 됐다, 그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약하다는 말이 골목길을 정신없이 빠져나가는 1톤 트럭의 낡은 배관처럼 덜덜 거린다.

유리천장 얘기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직·간접적인 경험도 수없이 했다. 아직 준비가 덜 됐다는 말은 아프다. 그래서 구조적 성차별은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미국 TV드라마 X파일 중

갑자기 지난 몇 개월을 정신없이 정리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지난 4월 모 언론에 실렸던 한 기사가 눈에 밟혀 몇 번인가 곱씹었다. ‘성평등 관점 투자, 스타트업에 날개 달아줄까’(시사IN)라는 제목의 기사다.

스타트업 생태계에 등장하고 있는 ‘스컬리’와 젠더 관점의 투자(GLI:Gender Lens Investing)를 다뤘다.

여기서 ‘스컬리’는 1990년대 존재 자체가 장르였던 미국 TV 드라마 ‘엑스파일’의 여자 주인공 데이나 스컬리를 말한다. 극 중 스컬리는 물리학과 법의학을 공부한 박사이자 FBI 요원이다. 당찬 여성 요원이 전문 용어와 지식을 활용해 외계라 부르는 존재에 흔들리지 않고 맞서는 모습을 보고 이공계에 진학한 여학생들이 늘어났다는 데서 ‘스컬리 효과(Scully Effect)’라는 말이 등장했다.

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스컬리’는 사회 곳곳에 있다. 스타트업 영역에서는 지난해 투자금 유치 톱 5 중 2위에 이름을 올린 식품 전문 이커머스 ‘마켓컬리’의 김슬아 대표를 꼽는다. 새벽배송 시장과 시스템에 대한 평가는 일단 접어둔다. 기사에 나온 그의 경험은 ‘스컬리’보다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구조적 성차별의 일면을 보여준다.

“사업도 좋고 사람(창업가)이 마음에 들어도 투자를 안 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당신 사업도 잘 모르겠고 심지어 여자라서, 결혼도 해서, 애를 낳을지도 모르는, 그런 리스크도 있는데 내가 왜 투자를 하겠냐”

사실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기사에도 나오지만 기관 지원사업 심사에서까지 종종 등장하는 상황이다. 여성 창업자 열에 여덟아홉은 한 번쯤 겪어본 일일 거다. 창업자에게만 그럴까.

이전 경험이지만 신문사로 전화해서 “너 말고 거기 남자 바꿔”하고 버럭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 별나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편집국이 울리도록 “남자 기자 전화 받으세요”하고 외쳐도 봤다. ‘똑바로 하지 않으면 다음 여자 후배는 없다’는 말을 격려로 들었다. 배경이나 상황이 조금 바뀌었지만 지금도 이런 일은 부지기수다.

젠더 관점의 투자(GLI:Gender Lens Investing)라는 말이 스타트업 생태계에 등장한 지 몇 년이 됐다. 기사를 보면 젠더 관점의 투자란, 투자자가 젠더 편향적 투자 관행을 인지하고 성평등적 관점에서 투자를 집행하는 것을 뜻한다. 2018년 스타트업 투자사 소풍벤처스가 낸 리포트 ‘젠더 안경을 쓰고 본 기울어진 투자 운동장’은 “남성 중심적으로 구축되어 있는 창업 생태계에 대한 냉철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젠더 편향적인 투자 생태계를 변화시키기 위해 (…) 투자자는 좁게는 지분투자나 대출투자, 재무적 훈련뿐만 아니라 넓게는 투자자와 창업가 사이의 힘의 역학관계, 사회적인 편견이 젠더 편향적으로 투자 프로세스에 작용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라고 분석한다.

이 말의 배경은 이렇다. 직전 해인 2017년 하반기, 소풍벤처스 투자팀은 정기투자를 결정한 4개 팀 중 여성 창업 스타트업이 한 곳도 없고, 경영진에도 여성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더 스트리트(The Street)〉의 2017년 11월 보도에 의하면 미국 내 벤처 투자금 중 3%만이 여성 CEO가 있는 기업으로 흘러갔고, 여성 심사역은 전체의 6%로 나타났다”라며, 자신들의 투자 결정에도 젠더 편향이 있을 수 있다고 자각하게 된다. 이는 투자 프로세스의 전면 검토로 이어졌고, 모든 과정에 젠더 관점을 적용한 결과, 이듬해 소풍벤처스의 상반기 정기투자 최종 심의에 진출한 기업 중 여성 창업 스타트업이 42.9%를 차지했다.

그래서 달라졌을까.

스타트업레시피의 ‘투자 리포트 2021’에 따르면, 2021년 전체 투자 1272건 중 여성 창업 스타트업의 사례는 9.5%(121곳)에 불과했다. 지난해 총투자금액 12조286억4000만원 중 여성 창업 스타트업이 유치한 투자금액은 9147억원(7.6%)이다. 이중 마켓컬리가 4754억원을 유치했다.

기사는 다시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여성 창업자 비율이 점차 증가하고 몇몇 소수 기업이 대규모 투자에 성공하고 있는 흐름이 포착되지만, 이것만으로 전체 생태계가 성평등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국내 벤처캐피털(VC) 업계의 여성 심사역은 7%밖에 안 된다. 대통령이 ‘우려’한 것처럼 아직 준비가 덜 됐고, 그런 역할을 하기 전까지 도달하지 못한 때문일까.

영화 인턴 중

영화 ‘인턴’을 처음 봤을 때는 30대 여성 CEO와 정년퇴직 후 새로운 도전을 하는 70세 노인 인턴의 캐미를 살폈다. 두 번째는 ‘손수건’이 던지는 특별한 메시지에 끌렸다. 세 번째에 이르러 ‘왜?’하는 질문을 던졌다. 1년 6개월 만에 스타트업 기업을 직원 220명의 규모로 성장시킨 성공한 젊은 여성 CEO와 아내를 대신해 전업주부를 선택한 남편. 남자가 밖에 나가서 돈 벌어오고 여자가 살림을 해야만 하는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이 이제는 사라졌음을 보여주는가 했지만 현실은 잔인했다. 바쁜 아내의 빈자리에 어느샌가 다정한 이웃이 들어서고, 불륜이란 상황을 자신의 잘못이라 판단하고 흔들리고 방황하는 여성이 남는다. 영화라 그런 것이 아니라 세상은, 우리가 살아왔던 시대는 은연중에 그런 것들을 마치 맞는 것인양 여겨왔다.

이처럼 험준한 경영 환경에도 불구하고, 당연하다고 여겼던 사회문제에 새로운 불빛을 비춰 전에 없던 비즈니스를 만들어온 여성 창업가들은 많다. 무엇보다 여성이어서 볼 수 있고, 찾을 수 있고, 도전할 수 있는 영역들에서 자리를 잡고 있다. 아직 충분하지는 않지만 여성 창업자들은 특정 성별이라는 이유로 평가절하되거나 충분히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지 않길 원한다. 사회적 약자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세상을 향해 외치는 소리도 마찬가지다. 여성이라 특별하게 보라는 것이 아니라 마이너리티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적 시력을 갖자는 주문이다.

세상은 좀 더 변해야 한다. 변해갈 것이다. 그간의 경험이나 현재 마주한 상황들을 봤을 때 누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결론이다. 해줄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영화 조이 중


영화 ‘조이’의 실제 주인공 조이 망가노는 여성이 견디기엔 가혹한 비즈니스 세계에서 혼자만의 힘으로 미국 최고의 여성 CEO가 된다. 가난한 싱글맘이었던 그녀는 가족의 불신, 기업과 투자자들의 비난에도 굴하지 않고, 반복되는 위기와 기회를 마주한다.

“잘 알아. 이게 네가 꿈꿨던 삶은 아니라는 것. 아주 어린 나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직 꿈꿀 수 있는 나이잖니. 우리 중 누군가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받을만큼 운이 좋단다. 그러니 희망을 가지렴”하는 할머니의 위로는 그저 따뜻한 응원이다.

그보다 “착각하지마. 세상은 당신에게 빚이 없어"라는 현실 조언이 더 날카롭게 흉부를 찌른다. “경제발전은 외부 여건 변화에 의한 단순한 순응과 수용이 아니라 경제 체제 내부에서 발생한다”(조지프 슘페터 '경제발전의 이론')고 했다. 경제에 한정된 얘기는 아니다. 우리가 바뀌면 분명 달라진다.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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