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회 스밥-클하에서 펼친 팔도‘자랑’대회
‘태양으로부터
무차별 쏟아지는
열정의 포화, 프러포즈
이 뜨거움 없으면
어찌 여름이 여름일 수 있겠니’(나태주 ‘8월’)
시인이 물었습니다. 그래서 답했습니다. 왜 그 뜨거운 프러포즈를 태양만 해야 하나.
그래서 깨달은 것은 모든 프러포즈가 ‘Yes’라는 답을 듣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8월 밥상을 고민하면서 몇 번인가 아귀를 맞췄다가 틀어지고 맞는 조각이라 생각했는데 이가 빠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대로 달력을 한 장 넘겨야 하나 했지만 다행이 ‘같이 밥 한 번 먹자’는 바람, 이왕 제주까지 끌고 와 일으킨 바람을 유지해보자는 마음이 단단해 졌습니다. ‘스밥’파워라고나 까요.
7월 바짝하고 제주도로 밥상을 옮기면서, ‘심장에서 먼 곳부터’하는 물놀이 수칙처럼 ‘가능한 수도권에서 떨어진’ 곳에서 스타트업을 만나면 어떨까 하는 물꼬를 일단 텄습니다.
코로나19 재확산 우려가 커지던 사정까지 보태 ‘온라인 밥상’을 차리기로 했습니다. 서로의 목소리를 들으며 숟가락을 들자, 지방이 어디 제주뿐(?)이라 하는 생각들은 ‘팔도’스타트업을 밥상 앞에 모이게 한다는 제법 야심찬 계획으로 쓱쓱 비벼졌습니다.
· 함께 한 날 : 2022년 8월 31일(수) 20:00
· 모인 곳 : 클럽하우스
(https://www.clubhouse.com/event/M5YAL7o4?utm_medium=ch_event&utm_campaign=vq_vvntF4grpGNXvjZLqeA-347022)
· 밥 손님 : 김남준 (오늘의이야기) : 지역거점공간의 디지털 매체
김준완 (김준완) : 지역내 핫스팟을 방탈출 게임형식으로 소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
· 모더레이터 및 에디터 : 김혁주 로컬 매니지먼트 기업 <비로컬 주식회사> 대표.
그레이스(스밥6기)
오디오 기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인 ‘클럽하우스(이하 클하)’가 무대가 됐습니다. 코로나19 2년여를 지나는 동안 익숙해진 ‘zoom’ 대신 소통에 집중하자는 생각에 선택한 카드는, 네 ‘특별’했습니다.
배달앱을 이용해 거의 비슷한 시간에 저녁 메뉴를 받았습니다. 참고로 에디터인 저는 사랑꾼 치킨을, 강원도에서 손을 든 김남준 대표는 회를 골랐고, 광주 김준완 대표에게는 족발이 배달됐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대로 술안주였네요.
모더레이터로 생각을 보태준 김혁주 대표님은, 하필 부산에서 일정을 정리하고 이동해야 하는 아슬아슬한 타이밍이 겹치면서 밥 챙길 기회를 다음으로 넘기셨습니다.
각자 먹고 싶은 것을 눈 앞에 펼쳐놨지만 클하가 문제였습니다. 몇 번 참여해봤지만 제대로 해본 적이 없던 빈약한 경험이 이럴 때는 실력 발휘를 하는 걸 왜일까요.
누군가에게는 ‘핫’하다는 클하입니다. 어떤 공간을 만드느냐에 따라 누구나 또는 골라서 모일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기능을 부여할 수 있는 여러 특징으로 문자 기반의 다른 소통 서비스와 다르다는 설렘이 있기는 했지만 ‘눈빛’과 ‘표정’ 없이 목소리로 판을 끌어가는 건 처음이라 떨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손이 얼마나 떨렸는지, 진땀은 또 얼마나 흘렸는지 보여줄 수 없어 다행이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하고 읊조리던 어느 노래 가사처럼 “들리세요”를 수차례 반복하고 번갈아 Room을 들어왔다 나갔다 하기를 몇 차례. 거의 30분을 클하 Room 문고리를 붙잡고 애걸복걸했습니다. 이대로 끝나는 것은 아닐까. 아니요, 그렇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첫 질문은 ‘로컬’이었습니다.
가장 쉬울 것 같았는데 정작 가장 ‘어려운’ 질문이었습니다. 로컬에서 무엇을 보고 나아가고 있는가. 강원에서도, 광주에서도 ‘관광’을 꼽았습니다. 결은 서로 달랐지만 지방에서, 지방에 의지해서 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에는 공감했습니다.
수도권 집중과 지방 소멸 경고는 오래전 시작됐습니다. 코로나19로 잠깐 주춤했던 기운은 이내 ‘빨대 효과’란 말까지 등장시키며 상황이 악화됐음을 알렸습니다. 악순환입니다. 취업과 진학 등의 이유로 청년이 떠난 지방 도시는 고령화되고, 활력이 저하되면서 곳곳에서 공동화 현상이 일어났고 소멸이란 단어에 직면했습니다. 실제로 성장세가 좋은 스타트업이나 연구·개발 기업, ICT 기업들은 현재 대부분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에 몰려 있고, 이들 기업이 지방 인재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지방을 살리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지역 거점, 로컬 크리에이터 같은 영역이 세를 키울 수 있는 이런저런 시도가 이어졌지만 지방에서는 청년들이나 혁신 인재들을 찾기 어렵고, 적절한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하소연이 쏟아집니다.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오는 초연결사회, 초격차국토 환경은 아직 말만 앞선 상황입니다. 지방에 안착하고 싶어도 ‘먹고 사는’문제가 해결되지 않다 보니 서울과 수도권을 향한 바라기를 멈출 수가 없는 실정입니다.
강원과 광주, 서로 한참 떨어져 있는 곳에 자리를 잡은 젊은 스타트업 대표들이지만 관광으로 의견 일치를 볼 수밖에 없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지역 내수 만으로는 ‘하고 싶은 일’은커녕 현재 ‘하는 일’도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은 외부에서 지출이 들어오게 유도하는 쪽을 향하게 했습니다.
두 대표의 생각은 로컬을 기반으로 한 스타트업들에서 종종 들었던 이야기와도 일맥상통합니다. 로컬에 자리 잡은 경우는 크게 두 개로 나뉩니다. 하나는 로컬이어야 하는 일, 그리고 다른 하나는 로컬이어도 가능한 일입니다. 로컬이어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상대적으로 기회가 많은 지방을 선택하지만 현실의 모든 기준은 아직 수도권입니다. 지방에서 청년들이 일하고(work), 살고(live), 즐길 수(play) 있어야 한다는 방향은 제시했지만 인프라에 차이가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만 합니다. 시장에 대한 고민도 병행해야 합니다.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건강한 경제 구조를 지탱한다는 사실은 지방에서는 적용하기 힘든 일이기도 합니다. 절대적인 인구수 부족, 특히 소비 연령층이 적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그 자체가 시장을 열악하게 하는 악순환이 가장 큰 함정입니다. 원하는 것들이 다 갖춰져 있을 수도 없다는 현실도 있습니다.
부산에서 강원도로, 가능성을 찾아 움직였다는 김남준 대표는 “속초에서 시내버스를 이용해 지역민과 관광객을 위한 콘텐츠를 만들어 송출하는 일을 시도했었다”며 “잘 안됐다. 시내버스를 타는 사람이 생각보다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광양에 가족이 운영하는 사업체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한 적이 있다. 일은 오전 10시부터인데 9시부터 와 있더라. 왜 이렇게 일찍 왔냐고 물었더니 버스 배차 간격이 맞지 않아 어쩔 수 없다고 했다”는 김준완 대표의 경험 역시 아픕니다.
지자체를 연결하거나 이슈나 키워드에 집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인 생활 서비스의 불편함이 누적되는 상황에서는 고개 돌려 수도권 가까이로 갈 수밖에 없다는 얘기입니다.
가볍게 지역에서 스타트업 하는 얘기나 해보자고 했던 일이었는데 시작부터 분위기가 무거웠습니다. 8월 스밥 모더레이터로 기꺼이 손을 들어주셨던 김혁주 비로컬 대표가 ‘로컬’의 정의부터 새로 잡습니다. 김혁주 대표는 “로컬크리에이터, 로컬 벤처라고 할 때 로컬이라고 하는 것이 시골이나 지방을 지칭하는 말은 아니다”며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통해서 정주 지속가능성을 살피는 인벤트”라고 강조했다.
지역에서 개인의 가치를 실현하며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한 청년이나 기업을 로컬 크리에이터라고 합니다. 이들은 지역의 고유 자원을 발굴해 그들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혁신적인 창업 형태를 가집니다. 지역 고유 자원을 발굴해 재해석하여 혁신적인 창업행위를 하는 것을 통해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데 직간접적으로 긍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로컬 크리에이터가 지역에 모여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커뮤니티는 자생적인 지역산업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으로 작동하고 인재들이 모이며 좋은 기업이 생겨납니다. 좋은 기업이 생기면 일자리가 늘어나고 이는 다시 사람을 끌어들이는 선순환 구조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로컬크리에이터들이 모여 기업 형태로 이어질 수 있는데 이는 로컬벤처로 가치 확장의 기회를 갖습니다. 명확하게 개념화하기는 어렵지만, 로컬벤처는 사회 공헌과 사회문제 해결 등을 위해 창업한 벤처기업 형태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로컬'은 고향이나 출신지, 연고지에 국한하지 않고, 문화·정서적으로 맥락을 같이 함으로써 제2의 고향같은 연대를 이룬 것을 말한다는 점입니다.
김혁주 대표는 “로컬인가, 아이티 기반인가 하는 것보다 지속가능성을 만들어 낼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지역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와는 다른 담론이다. 재방문이나 재구매 같은 인텐션(intention)을 설명할 수 있는가, 변화무쌍한 상황을 어떻게 대면할 것인가가 명확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조금씩 입이 풀리면서 로컬에 대한 이야기는 점점 무르익었습니다. 커뮤니티, 생태계에 대한 생각을 물어봤습니다.
김남준 대표는 “새로운 지역에 도전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서 뭔가 필요하다고 설득하는 작업이 여의치 않아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분들 도움을 받았었다”는 경험을 풀어놨습니다. 실제 지역 업체 등과 협업해 관광객들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디지털 홍보물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분명 도움이 될 것은 알면서도 제 때 정보를 주지 않거나 얼마나 효과가 있겠냐며 외면하는 일이 많았다”고 합(合), 협업에 대한 고민도 보탰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속초에서 강릉으로 확장하는 계획을 귀띔합니다.
광주는 어떨까. 김준완 대표는 여러 갈래 커뮤니티에 대한 경험과 생각을 말했습니다. 통합 커뮤니티는 없는 상태에서 전통산업 중심의 커뮤니티는 로컬이 진입하기에는 장벽이 다소 높은 편이라고, 창업 커뮤니티들도 규모나 성격별로 따로 또 같이 모여 정보를 공유하는 사정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지역 예산이나 정부 사업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는 것에 대한 저항이 생길 수밖에 없는 현실도 감추지 않습니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두 대표의 생각과 고민은 달라 보이지만 닮았습니다.
김남준 대표는 지역에 필요한 것에서 할 일을 찾았고, 김준완 대표는 지역에 뭔가 필요한 것을 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출발합니다. ‘차차 만들어 가자. 달라지겠지’와 ‘이런 것이 있으면 좀 더 나아질 텐데. 세심하게 보면 어떨까’의 속도감도 묘하게 다르지만 목적은 같습니다.
홍보에 대한 부분도 그랬습니다. ‘노잼도시’란 말이 쓰라렸다는 경험과 ‘얼마나?“하고 사람들이 알게 하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엇갈리며 접점을 찾아갑니다.
기차를 타야 하는 일정 때문에 먼저 클하를 나간 김혁주 대표님의 남기고 떠난 말이 떠올랐습니다.
공들여 로컬 크리에이터 영역에 있있는 사람들을 인터뷰하면서 느낀 점이라고 했습니다. ”비즈니스 관점에서는 창업하는 개인에 집중아게 딥니다. 자시이 원하는 라이프 스타일 지속가능한 것 찾다 보니까 국가 시스템 안에서는 힘들어서 ’창직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며 ”로컬 콘텐츠를 잘 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면서도 성장이나 창업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없는 경우도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원하는 세계는 내 손으로 만들겠다고 하는 것이다. 파트너나 크루가 생기면 더 잘 하고 싶다 하는 것들을 실현에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한참을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시간이 꽤 흘렀습니다. 모두가 배달받은 음식을 눈 앞에 두고 있다는 것을 잊었을 정도였습니다. 이제는 뭔가 요기라도 해야겠다 싶은 순간, 김남준 대표가 ”누구든, 어디서든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다. 어떻게 해왔고 지금 이렇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김준완 대표도 ”클하가 처음이라 제대로 얘기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기회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 다음에는 줌(zoom)이나 만나 얘기하는 자리였으면 싶다“는 의견을 남겼습니다.
네. 그 말은 제가 하고 싶었습니다. 들을 수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어느 순간 올해로 데뷔 15주년이 됐다는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BGM으로 깔립니다. ”…막혀버렸던 미래가 안 보였던 미래가 네 눈앞에 펼쳐져 점점 더 완벽한 네 모습에 마치 난 빨려들 것 같아 겁이 나서 시작조차 안 해 봤다면 그댄 투덜대지 마라 좀 주저하면 기회는 모두 너를 비켜가 가슴 펴고 나와 봐라 좀…“.
8월 173회 스밥은 맛 대신 온기만 남았습니다. 다음에는 맛을 얘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보리라, 굳게 다짐해 봤습니다. 일단 마침표 총총.
처음 진땀을 흘리며, 누군가 꼭 잡아준 손이 큰 힘이었습니다. 스밥 빅마마 이니가 아니었다면 아마 못하겠다고 두손 두발을 다 들 뻔 했습니다. 잡아줘서 고마워요. 당신이 별입니다.
별을 볼 줄 아는, 6기 에디터 그레이스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