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때마다 떠오르는 친구
우리는 그 친구를 '아바'라 불렀다. 본명이 있을 텐데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아바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지만 아바는 내가 누구인지, 그런 친구가 있었는지 생각도 못할 것이다.
별명 아바, 멀리뛰기 선수, 큰 대회 때만 학교에 나오는 친구였다. 그때는 그런 일이 있었다.
아바는 언어장애인, 즉 벙어리였다. 아바는 아마 말 못하는 장애를 비하해 부른 이름이었을 텐데 우리에게는 비하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다.
(언어장애인이 바른말이고 벙어리는 비하하는 표현으로 규정돼 있나 본데, 과연 그게 옳은 건지 의아하다. 벙어리는 순우리말이고 무엇보다 쉽게 이해되지만 언어장애란 말은 억지로 지어낸 단어 같고 장애의 폭이 넓어 약간은 모호하게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언어장애인이든 벙어리이든 단어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 아닐까. 비하하는 마음으로 쓰느냐 육체의 한 부분이 장애를 겪고 있는 것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쓰느냐 하는, 사용하는 이들의 의식에 따라 용어의 정의도 달라진다고--- 주장하고 싶다)
아바란 이름이 내게는 멋있게 느껴졌다. 부르기도 편했고, 신비감이 있었고, 게다가 팝그룹 아바(ABBA)의 노래가 인기를 끌던 시대였다. 하여간 뭔가 있어 보였다.
"아바가 왔대. 아바 보러 가자."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설레었다. 하교 길에 우리는 운동장 끝의 모래밭으로 갔다. 아바를 보기 위해서다. 이미 많은 아이들이 빙 둘러서 있으면 틀림없다. 아바가 온 것이다.
아바가 정식 학생이었는지(학적은 있지만 학교는 나오지 않는 학생이었던 것 같다) 아직도 모르겠지만, 우리 학년이었던 건 확실하다. 짐작컨대 아바는 벙어리였기 때문에 학교에 거의 나오지 않았고 학교도 그것을 이해해 적당히 넘어가 주었던 것 같다. 아바에게 확실한 재능이 있었던 것도 영향을 주었으리라.
그러니까, 학교 대항 큰 체육대회가 있을 때마다 아바가 왔고, 몇 해 동안 그런 아바를 구경했고, 6학년 졸업 때까지 이어졌으니 아바는 우리 학년이고 우리 친구었던 게 확실하다.
아바는 특히 멀리뛰기와 높이뛰기를 잘했다. 아바는 말없이(말을 할 수 없었으니) 뛰고 날아올랐다. 우리는 그가 도움닫기를 할 때 완전한 침묵의 세계에 빠졌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사람의 몸이 공중에서도 몇 차례나 변화할 수 있구나' 하는 사실을 깨달았다. 1미터 정도의 공중으로 뛰어올라 허리를 한번 휘젓고 발을 두세번이나 굴리고 온몸이 활처럼 휘어 모래밭에 내려앉는 광경, 운동이 아름답다는 것을 목도한 첫경험이었다.
교실에 한번도 들어오지 않은 친구, 한번도 대화를 나눠보지 못한 친구, 우리는 아바가 우리 학교를 대표하는 운동선수이고 같은 학년의 친구라고 생각했지만 아바의 생각이 어땠는지는 알 수 없다. 마른 체형에 훌쩍 키가 솟아있고 거무잡잡한 피부에 큰 눈이 쑥 들어가 있던 아바.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감을 잡을 수 없지만 높이 뛰고 멀리 날아가(정말 날아갔다) 모래밭에서 짓던 무표정 속에서도 만족한 눈빛이 슬쩍 보였지만 착각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그저 아바의 묘기를 구경하고 감탄했을 뿐이다.
4년에 한번 열리는 올림픽에서 높이뛰기나 멀리뛰기를 보는 날은 많지 않다. 우리에게는 스타도 없고 늘 비인기 종목이라 중계가 적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끔 육상 중계가 있는데, 그때마다 나는 아바를 떠올린다. 아바는 그 뒤 어떻게 살아왔을까. 아련하고 애틋한 추억에 잠긴다.
이번 올림픽 높이뛰기 경기는 특별히 소름을 일으켰다. 원래 저랬나? 못보던 장면이 많이 나왔다. 그들은 운동선수라기보다는 연기자나 행위예술가들 같았다. 자기들 나름의 집중력 방식이 저마다 다르고 혼자만의 게임을 하면서도 주변 사람들의 기운을 끌어모으는 저마다의 방식이 있었다. 몇 되지 않는 관객들이지만 호흡을 함께 하는 의식을 치렀고 관객들은 국적에 상관없이 호응해주었다. 가장 올림픽다운 경기였다.
4위를 한 우상혁은 처음 등장할 때부터(4위씩이나 할줄 꿈에도 몰랐다) 나를 놀래켰다. 해맑은 미소, 밝은 표정, 신나게 즐기며 도전하는 행위 하나하나가 예술이었다. 어렸을 때 본 아바의 몸과 비슷했는데, 단 한 가지 차이는 밝은 표정, 신나게 즐기는 외형적 행위였다. 아, 같은 한국인이지만 다른 한국인이 등장한 것이다. BTS형 한국인이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달까.
마지막 도전이 실패한 뒤, 괜찮아를 외치고 표정을 딱 바꾸어 거수경례를 하는 그를 보며 입을 쩍 벌리고 웃었다. 웃으며 찔끔 눈물을 흘렸다. 아바도 지금 저 장면을 보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