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구이를 먹는 시간

젓가락으로 지혜를 빼먹던 시절이 있었다

by 포포

생선구이를 맛있게 먹으려면 가시를 잘 발라내야 한다. 가시를 잘 발라내려면 젓가락질을 잘해야 한다. 젓가락질을 잘 하려면 어릴 때 습관을 잘 들여야 한다. 어릴 때 습관을 잘 들이려면 윗사람을 잘 둬야 한다.


내가 가장 맛있게 먹었던 생선구이는 도루묵 구이다. 기억도 희미한 초등학생 시절, 겨울이었다. 강원도 첩첩산중 고모네 집에 놀러간 저물 무렵이었다. 고모가 아궁이에 군불을 때며 “어여 손 씻고 들어가라”고 말했다.

부엌에는 두 개의 아궁이가 있었다. 한쪽에는 물 펄펄 끓는 가마솥이 있었고 그 옆 아궁이 앞에 고모가 쪼그리고 앉아 생선을 굽고 있었다. 한구석에는 나뭇단이 쌓여 있었고 그 앞 대야에서는 모락모락 김이 오르고 있었다. 사촌동생과 같이 대야에 손을 담그는데 생선 익는 냄새가 솔솔 흘러왔다. 순간 시장기가 확 밀려들어 손은 씻는 둥 마는 둥했다.


밥상 위 반찬은 김치와 도루묵구이뿐이었다. 오동통한 도루묵 몸통에 고모가 잡고 있었던 석쇠무늬가 그물처럼 그을려 있었다. 고모는 한 손으로 도루묵 머리를 지그시 누르고 젓가락으로 살점을 발라냈다. 살이 발라지면서 도루묵 몸통뼈가 하얗게 드러났다. 고모는 가시를 걷어 올리고 살점을 통으로 빼내 내 밥공기로 옮겨 줬다. 큼지막했다. 입맛 짧던 내가 밥 한 사발을 금세 해치웠다.


도루묵을 먹으며 사촌동생이 말했다.

“형, 생선은 뒤집는 게 아니래. 생선 뒤집으면 배가 뒤집힌대.”

아직 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녀석이 젓가락질을 자유롭게 하며 나를 가르쳤다.

닭고기와 생선구이를 먹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성품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뼈와 가시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급하게 먹을 수 없고, 남겨진 뼈와 생선을 얼마나 가지런하게 정리하느냐를 보며 사람을 판단한다는 것이다.


생선구이는 깨끗이 먹을수록 맛도 좋아진다. 아뿔싸, 한국인들이 지저분하게 먹기로 세계 최고란 얘기도 있다. 그 말을 전해 준 사람은 중년의 여성 시인이었다. 그와 갈치구이를 함께 먹었는데 식사 후 그이 앞에 놓인 접시에는 길고 가는 빗들이 조르르 줄서 있었다. 생선 가시가 참빗으로 둔갑한 모습을 보며 감탄이 절로 나왔다. ‘군더더기 없는 식사 예술’을 보는 기분이었다.

“한 편의 시 같네요.” 하며 덕담을 건넸더니,

“쇠젓가락으로 생선 가시를 정돈하는 능력이 어느 민족보다 뛰어났었는데…”라고 과거형으로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아이를 차분하게 키우고 싶으면 생선구이를 자주 먹이세요.”

바깥의 잔가시를 가지런히 빼내는 동안 급한 식욕을 잠재울 수 있고, 살점을 발라내는 과정을 통해 차분함이 성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맛을 음미하게 되니 일거양득이라는 얘기다.

“지저분하게 먹는 자, 맛도 음미할 줄 몰라요. 급하면 지저분해지고 지저분한 밥상에 맛이 끼어들 겨를이 없잖아요.”


생선은 영양의 보고이고 건강에 유익하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품격의 산실임을 아는 이는 드물다. 생선구이를 먹는 젓가락질이 품격과 지혜를 빼먹는 행위임을 까마득히 잊어 버린 우리들. 한숨이 나올 법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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