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맛, 회한의 맛

과메기가 된 꽁치를 위한 건배

by 포포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은 ‘꿩고기가 닭고기보다 낫다’는 암시를 준다. 꿩고기가 닭고기보다 맛있다는 게 아니라 꿩이 닭보다 비싸다는 얘기다. 흔하지 않으니 귀하고, 구하기 어려우니 비싼 것일 뿐 맛과는 무관하다. 그런데도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은 꿩고기가 닭고기보다 맛이 좋은 느낌을 준다. 꿩에게도 닭에게도 미안한 얘기이긴 하지만 두 고기를 먹어본 경험으로는, 고기보다 양념 맛이고 조리능력의 차이일 뿐이다.

겨울철 별미 과메기를 먹을 때마다과 닭이 떠오른다. 청어 대신 꽁치. 청어가 귀해서 꽁치로 대치된 지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꽁치 말림은 청어 말림보다 못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 두 맛을 직접 비교해 본 이가 얼마나 될까. 결국 생선도 흔하면 대접 받지 못한다. 그러니 우리는 꽁치의 억울함을 이해해야 한다.


과메기는 겨울철 소주 안주로 손에 꼽히지만 그 맛을 제대로 아는 이 드물다. 과메기는 첫맛에 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과메기는 김, 배추, 미역, 다시마, 파, 마늘, 고추 같은 채소들과 양념을 필요로 한다. 회도 아니요 구이도 아닌 생선 말림을 쌈채류에 싸서 먹다 보니 주연이 누구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가령, 내가 처음 과메기를 먹었을 때는 이런 생각을 했다.


‘대충 말린 생선의 비린내를 신선한 채소와 양념 향으로 가렸군. 세밀히 간 맞추는 데 영 재간 없는 경상도 사람들이 회만 먹기 심심해 포를 떴고, 성질 급한 이들이 제대로 건조되기도 전에 적당히 버무려 먹다 나온 우연의 산물 아닐까….’


십수 년 전, 구룡포 바다 앞에서였다. 날씨는 꿀꿀했고 겨울 바다 파도는 제법 거칠었다. 한바탕 눈이라도 쏟아질 기세를 마주하고 한잔 술을 마시면 어떤 안주라도 맛있을 터였다. 청어든 꽁치든 무슨 대수랴. 많이 잡히는 물고기, 적당히 말려 신선한 채소에 감싸 먹으면 무엇이든 훌륭한 안주가 될 게 뻔했다. 게다가 과메기란 이름은 얼마나 촌스럽고 훈훈하고 먹음직스러운가....


그렇게 과메기는 맛이 부풀려졌다고 확신했다. 좋은 먹거리는 분명하지만 요리라 하기에는 머쓱한?


그로부터 몇 번의 겨울을 나는 동안 과메기 안주를 종종 접했다. 술 자리에서 과메기를 먹으며 과메기를 씹었다. 채소의 신선도에 얹혀진 맛, 부풀려진 명성이라고. 그런 어느 날, 아무 이유 없이 뭔가를 발견했다. 일종의 풍미의 여운 같은 것. 고상하고 향기로운 풍미가 아니라 바람이 깃든 맛이었다. 한 번 두 번 횟수가 늘어날수록 점점 반건조 생선의 질감을 새기게 되었고 미세한 향미 속의 어떤 바람기를 느낀 것이다. 어머나 세상에. 와인이나 홍차가 주는 중독성 풍미를 쫄깃한 생선에서 느끼다니.


과메기는 고상하게 먹을 수가 없다. 쌈채소와 함께 먹으려면 입을 크게 벌려 우겨넣어야 하니까. 와구와구 씹을 동안 마늘이며 고추의 강한 맛이 입안을 자극한다. 정말 고상하지 않다. 그런 우격다짐 와중의 뒤끝이 은근하고 묘했다. 바닷바람이 입안을 맴돌고 머리를 휭 감싸는 듯? 자연의 맛은 아니다. 자연을 흡입한 맛이라면 조금 더 가까울까. 퍼뜩 ‘바람의 맛’이 있다면 이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한 술 한잔에 과메기 쌈 한 입. 다시 독한 술 한잔. 이름하여 ‘풍운(風韻)의 맛’이다. 취한 와중에도 어색하게나마 그런 표현을 했더니 과메기 고장 출신이 이렇게 화답했다.

"과메기는 바람을 어떻게 맞이하느냐가 생명입니다."


바람을 맞이하다니, 무엇을 말하는지 알 길 없이 어슴푸레 느낌만 스쳐 갔다. 형체를 볼 수 없이 피부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같은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난 뒤에야 ‘과메기의 본맛은 청어’라는 말도 나름 이해가 됐다. 바람맞이 생선에 어울리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러자 또 꽁치에게 미안해졌다.


명태는 양명문이라는 시인이 우주를 논하는 찬사를 해주었고 심금을 울리는 가곡으로도 남겨졌는데 그에 못잖은 꽁치는 여전히 버림 받는 느낌이 들어서다. 그래서 과메기를 먹을 때마다 주눅들지 말라고 주문을 왼다. 세상의 어느 바람도 주눅 들지는 않으니, 청어 대신 매운 바람을 맞는 꽁치를 위하여 건배를 한다. 그러다 보면 왠지 모를 배짱도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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