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사한 장례식장을 보았다
목포에서 택시를 타고 기차역으로 가고 있었다. 거리는 한산했고 택시도 몇 대 보이지 않았다. 택시를 보기 힘들어 결국 콜을 했는데, 기사는 “경기가 안 좋아 빈 택시를 몰고 돌아다니는 일이 거의 없다”는 설명을 해주었다. 또 “택시 콜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서 굳이 움직이지 않게 된다”고 친절한 설명도 덧붙였다. 콜을 부르지 않았다면 거리를 마냥 헤매다 기차를 놓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기차역이 가까워졌을 때 기사가 말했다.
“저 앞의 장례식장 보이죠?”
“네, 근사하네요.”
답을 해놓고 약간 머쓱해졌다. 장례식장이 근사하다니. 다행히 기사도 동조해 줬다.
“그렇죠? 옛날 성처럼 화려하죠? 주차장에 잔디까지 깔고 말예요. 저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결혼식장였는데 장례식장으로 바뀌었어요.”
결혼식장이 장례식장으로 바뀌다니, 뭔가 의미가 심장했다. 기사가 설명을 이었다.
“사람들이 결혼을 안 하니까 결혼식장이 망한 거요. 그래 장례식장이 된 거지. 저렇게 바뀐 곳이 몇 개 더 있어요.”
아, 대번에 이해가 됐다. 그리고 또 대번에 의문이 떠올랐다. 이제는 죽는 사람들도 줄어드는 시대이니 장례식장은 온전할까? 기사는 그것에 대해서도 답이 준비돼 있었다.
“장례식장도 머잖아 망할 거유. 죽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상 치를 때도 병원이나 요양원에서 운영하는 장례식장을 이용하니까.”
택시기사와 나는 이렇게 합의했다. 장례식 장사도 결혼식 장사처럼 사양 산업이 될 것이다.
나이 50이 된 친구들이 모여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우리는 매번 반만 사는 것 같다. 나이 서른 살 때 우리는 인생의 절반을 살았다고, 이제 내리막이라고 말했었지. 십 년 후 마흔이 되었을 때 또 절반이 지났다고 했지. 수명이 60에서 80으로 늘어났으니까. 나이 쉰이 되니까 이번엔 백세 시대라네. 또 절반이야. 곧 예순 살이 되면 분명 수명이 120년으로 늘어날 테고, 그럼 또 반이 남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는 절반 인생이 분명해.”
그래도 그때는 태반이 결혼을 하고 살았는데 요즘은 결혼도 안 하고 무한 인생들을 사는 것 같다. 결혼의 가치로 주제가 이동하자 한 친구가 또 이런 주장을 펼쳤다.
“결혼을 하고 안 하고는 선택의 문제이니 50%는 안 해도 되지. 결혼한 뒤 계속 살지 말지 역시 선택의 문제이니 그 역시 50%는 이혼 가능성이 있지. 고로 전체 남녀의 25% 정도만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게 바람직한 것 아닐까? 아마 프랑스 사람들이 그쯤 될거야.”
우리는 완전 후진국에서 선진국 대열로 들어선 기간이 가장 짧은 나라의 사람들이다. 그렇고 보니 결혼문화와 가정의 양태도 세계에서 가장 빨리 변하고 있다. 뭐든지 빠른 사람들.
목포역에 도착했다. 역 근처도 한산한 건 마찬가지이고, 역사도 오래 전 케케묵은 모습이었다. 택시비를 지불하며 “옛날식 역사가 그대로 남아 있네요” 하고 말했더니, 기사가 “운치 있죠?” 하고 웃었다. 그러며 덧붙였다. “변화가 꼭 좋은 게 아니지라. 변화가 곧 발전인 것도 아니고.”
그 역시 동조하지 않을 수 없어 택시기사에게 경외심을 표하게 되었다.
“힘든 시절인데 건강하세요.”
돌아서는 등 뒤에서 이런 말이 들렸다.
“우리가 안 힘든 적이 있었는가...”
기사의 얼굴 주름살과 말투를 가늠해 보니 70세는 훌쩍 넘은 듯했다. 얼추 그는 전쟁을 겪고 가난 시대를 지나 새마을운동과 민주화운동과 정보화 사회를 모두 지나 왔을 터. 시대의 온갖 변화를 섭렵하는 동안 쌓인 초연의 미학일까. 어찌됐든 그렇다.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게 낫고, 전쟁보다는 평화가 낫다. 불안하게 해석하며 떨기보다는 편안하게 받아들이며 즐기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며 기차를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