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띠해에 바람
셰익스피어, 하이든, 톨스토이, 로댕, 차이코프스키, 김구, 주시경, 김동인, 현진건, 손기정, 말론브란도, 프란치스코 교황, 김훈, 김용옥, 성석제, 서태지, 심은하, 구구단의 세정과 소이, 박봄, 산다라박, 아유미…
이상은 역대 쥐띠해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작가와 예술가들이 유난히 많다. 그리고 현대에 가까워지면서 연예계와 스포츠 스타들이 눈에 띄게 늘어난다. 혹시 유명인의 기준을 세운 알고리즘 영향이 아닌가 싶어 다른 띠도 검색해 봤다.
√ 지난해인 돼지띠 인물들 : 이성계, 크롬웰, 마리 앙뚜아네뜨, 이승만, 장면, 로널드 레이건 등... 정치인이 많고 그들 대부분 은근히 욕심 많고 적극적인 성격들로 보인다.
√내년에 해당되는 소띠 인물들 : 삼국지의 유비, 원효대사, 세종, 성종, 숙종, 바흐와 헨델, 고흐 등... 왕들이 많고 음악의 고수들이 등장한다. 왠지 모르게 (소처럼) 인내심의 화신들 느낌이 난다.
√내후년에 해당되는 호랑이띠 인물들 : 레오나르도 다 빈치, 류성룡, 루이 14세, 헤겔, 베토벤, 쑨원, 아이젠하워, 드골, 호치민, 김소월, 정지용, 채만식, 유관순, 마릴린 먼로, 박경리, 엘리자베스2세, 카스트로, 나훈아, 조용필, 최백호, 홍수환, 선동렬, 최민수, 최수종, 최명길, 조수미, 강풀, 서장훈,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류준열, 문채원, 송가인... 이름 날린 사람들의 숫자가 다른 띠보다 유난히 많다. 면면이 호랑이 기운이 풍긴다.
이 모든 띠들의 공통점은 미묘한 흐름에 있다. 현대에 접어들수록 특히 1990년 이후 유명인들을 보면 연예계와 스포츠계가 주를 이룬다는 점이다. 사회의 주류 직업이 바뀌고 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해가 바뀔 때마다 십이간지의 의미를 새기고 띠별 운명을 헤아리는 문화,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다. 십이간지를 생활화하고 있는 나라는 한자문화권 외에도 유럽의 훈족(국가로는 헝가리)과 투르크족(국가로는 터키)이 있다. 참고로 일본은 돼지 대신 멧돼지띠를, 베트남은 소 대신 물소띠를 사용하며 태국은 용 대신 나가(머리가 셋 달린 뱀)를 사용한다고(출처 : 나무위키).
하필이면 쥐가 12간지의 맨 앞에 서게 된 이유가 늘 궁금했지만 명쾌한 답을 찾기는 힘들다. 대부분 전설적 이야기들로 설명을 대신하고 있다. 그나마 이해하기 쉬운 답은 농사와 관련된 풀이이다. 열두 동물의 주된 활동시기를 12시간으로 나누어 거기에 적합한 동물들이 배치됐다는 것이다. 가령 쥐는 자시(23:00~01:00)에 가장 왕성하게 움직이고, 다음 시간인 축시(01:00~03:00)에는 소가 내일을 위해 힘을 비축한다는 식의... 알쏭달쏭한 설이다. 정오를 알리는 12시 무렵은 말(午)의 시간인데 모든 동물이 쉬는 중에 유일하게 활동하는 동물이 말이라는 설명에 이르러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농식품 관련 정부 부처에서 내놓은 새해 인사말을 보면서 2020년을 가늠해 보니 세 가지 공통점이 보였다. 공익성, 안전성 그리고 미래 준비를 위해 일하겠다는 메시지가 핵심이다. 그 중에서 농식품부장관이 인용한 문구가 눈길을 끌었다. 윤봉길 의사가 쓴 <농민독본>의 내용 일부.
“우리나라가 돌연히 상공업 나라로 변하여 하루아침에 농업이 그 자취를 잃어버렸다 하더라도, 이 변치 못할 생명창고의 열쇠는 의연히 지구상 어느 나라의 농민이 잡고 있을 것입니다.”
윤봉길 의사는 독립운동을 하기 전 농민운동을 했고, 그 당시 <농민독본>이라는 계몽서를 펴냈다고 한다. 거기에 ‘생명창고’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놀라운 단어다. 그런 창조자들이 역사를 만들어 간다. 당시 조선의 총생산액이 18억원, 이 중 농업생산액이 13억원이었다 하니 농업이 곧 경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업은 핍박받는 직업이었고 그 안타까움을 윤봉길 의사가 직시했던 것이다(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물론 변한 것도 많다.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 공무원이 제일의 꿈이 된 것이 대표적 변화다. 하지만 그 어떤 직업도 생명창고가 기반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2020년 쥐띠 해에는 셰익스피어와 톨스토이처럼, 차이코프스키와 말론브란도처럼,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처럼 열정이 샘솟아 생명창고가 풍성해지길 기원한다. 2020 숫자의 모양이 왠지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