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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포포 매거진 Nov 28. 2023

당신을 울게 하는 것은 당신을 웃게도 해요


자는 두 아이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생각했다. 이보다 완벽한 것은 없다. 자기 직전까지 싸우고 울면서 진을 빼고, 꼭 마시지도 않을 물을 배달해 달라고 하는 녀석들을 보며 한숨지은 나지만 아이들의 자는 얼굴 앞에서는 모든 것을 용서하게 된다. 완벽하게 귀엽고 아름다우며 순수한 이 얼굴들. 평온한 표정. 베개에 뭉개 삐죽 삐져나온 통통한 볼 덩어리와 입술. 이 완벽한 순수와 평화 앞에서 나는 웃는다. 입꼬리는 그대로일지언정 온몸의 세포와 뇌가 웃는다. 이것이 행복인가 잠시 착각한다.


하루 종일 내가 언제 웃었나 생각해 보니 그때가 처음이었다. 재미있게도 하루 종일 웃지 못한 이유 중 하나가 이 천사 같은 존재들이기도 하다.


어쩌다 나는 아이를 낳았지? 아이를 낳는 일이 이렇게 큰 변화를 가져오는 일 일 줄 알았다면 그렇게 해맑고 즐거운 얼굴로 임신을 기다렸을까?


살다 보면 인생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주는 사건을 만나게 된다. 그것은 남들에게는 평범할지언정 내게는 특별해서 나에게만 돋보기 속 왕수박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떤 것은 남들에게도 특이해서 와, 그런 일도 겪으셨군요,라는 말이 나오게도 한다.

국민학생 때 텔레비전으로 본 <타워링>이라는 영화는 나를 웃게 했다. 이거다! 시청각 자료인 주제에 사람을 쥐락펴락하는 이 요물! 누군가에게는 그저 재미있는 킬링타임용 영화였겠지만 내게는 ‘나를 웃게 하는 것’ 목록에 김현철, 김원준 다음으로 영화를 올리게 해 준 특별한 기회가 되었다. 나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바스스 부서진 내 마음을 좋은 영화를 보면서 치유했다. 퇴근하고 영화관에 갈 여력이 없으면 엄청나게 큰 잔에 따른 커피와 함께 컴퓨터 앞에 앉아 미드 오피스와 빅뱅이론을 보며 영혼을 달랬다.


신기한 것은 나를 웃게 하는 것은 영원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일 년여 전,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진단받았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우울하고 불안해지니까 취향이 사라진다. 그 무엇에도 즐겁거나 슬프거나 감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치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아무 감흥 없이 세상을 바라본다. 나를 그렇게 웃기던 시트콤들도, 그렇게 좋아하던 감독들의 영화도 그저 화면 위로 흘러가는 소리와 이미지일 뿐이다.


이런 상태에서 나를 웃길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강력한 존재라는 뜻이다. 예를 들면 안아달라고 보채며 내 볼에 뽀뽀 세례를 하는 둘째라든지, 우울한 내가 발끝에서부터 끌어모아하는 장난에 웃는 첫째라든지, 출근하기 전  빈 커피잔에 여봉이라고 시작하는 카드를 써놓고 가는 우리 집 님이라든지. 그 웃음은 오래가지 않지만 대신 감사함으로 이어진다. 내가 많이 웃어주지 못하고 늘 피곤해해도 그런 나를 받아들이고 조건 없이 사랑해 주는 사람들에 대한 감사.


나를 웃게 하는 것은 내 마음을 빼앗는 것들인 것 같다. 고로 웃게 하는 것은 나를 울게도 한다. 내 모든 것을 내주어도 아깝지 않지만 동시에 나의 복식 고함 능력을 일깨워 준 아이들, 부드럽게 사랑했으나 지금은 여우 같은 영감탱이 남편, 미치도록 사랑했지만 떠나간 사람, 내 생의 목표라고 생각했던 영화, 내가 사랑했던 미드. 모두 어떤 방식으로든 나를 울게 했다. 하지만 웃게도 했다. 많이 웃고 싶다. 작은 것에도 크게 하하하 웃을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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