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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볕 Nov 20. 2019

여전히 어려운 ‘나답게 살라는 말’


'취미'에 대해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를 마지막으로 보았던 것이 10여 년 전이였나. (내 기억으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인 것 같았다. 동아리 선배 중 한 명이 결혼하면서 자리가 마련되었고, 생애 처음 만났던 그와 어느덧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는 나와 어떤 사이도 아닌 것처럼 본인의 연애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는 본인의 취미생활을 언급하며, 나의 취미에 대해서도 물었다. 난 어색한 상황 때문인지 선뜻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는 그냥 "요새 이직 준비하느라고 여유가 없네"라고 말해버렸다.


  평소 같았으면 아마 의미를 두지 않고 답 했을 질문이지만 취미란 뭔가 그럴듯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 같았다. 괜찮은 사람인 척하고 싶어서였을까. 그래도 꾸며서 거짓을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취미를 수단으로 본인을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어필하기도 한다. 때로는 재미와 즐거움보다 남들에게 보이는 것이 더 우선이 되는 경우도 있다. 집으로 돌아와 가만히 생각해보니 취미는 나에게 스며들어 있는 그 무언가에 더 가까운 것이었다. 너무 익숙한 나머지 선뜻 대답하지 못했을 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는 그 무언가 어쩌면


  나에게는 대단하지는 않아도 매일 집에 돌아오면 꼭 하는 일들이 있다. 청소 겸 정리, 뜨순 물 샤워, 약간의 스트레칭 이 세 가지는 일상이다. 필요해서 하는 일들이기도 하지만 그 속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느낀다. 잠들기 전 깨끗한 책상과 침구를 보면 하루를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고, 뜨순물에 몸을 맡기면 시원한 느낌이 든다. 잠깐의 스트레칭은 망가진 내 몸을 바르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어느 순간 '정리와 정돈'을 통해 안정을 찾는 것이 내 하루하루에 스며들어 있었다. 나라는 사람이 담겨 있는 행동과 일상들. 나와 닮아 오히려 거창하게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되며 남의 눈을 신경 쓰며 잘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나다움’이라는 말속에 갇혀 산다. 온전히 나로 살아야 하고 고유해야 하고 특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끔은 내 안에 나를 스스로 만들어내고 증명하고 표현하고 싶어 한다. 그것이 꼭 잘 사는 것도 아니고, 누구보다 더 나은 것도 아니다. 좋은 것만 보여주는 것보다 특별하지 않아도 그게 그냥 나라면 괜찮지 않을까. 거창한 취미가 없다 하더라도 기죽을 필요 없다. 그냥 나니까. 말하기 싫다면 얘기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여전히 어려운 '나답게 살라는 '


  난 종종 선택의 문제에 맞닥뜨리고, 사람들이 쉽게 던지는 "너답게 살아"라는 말을 맞이한다. 그것이 그렇게 쉬운 거라면 우물쭈물하지 않겠지. 여전히 어려운 일이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의 모습들처럼 그렇게 하나씩 인정하고 쌓아가면 선명해지지 않을까. 좋아하는 것 이전의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는 일부터 생각해보기로 한다. 그것들이 좋아하는 것이 되어 있을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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