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입사하고 얼마 안 된 시점, 그러니까 10년 전인데 내 인생에 들어온 비싼 물건은 그때 다 산 것 같다. 지나다니며 눈에 담기만 했던 명품 가방을 하나씩 들였고 비쌀 것 같아 들어가 보지 않았던 브랜드 매장의 옷들을 샀다. 대단한 벌이는 아니었지만 처음 받아보는 월급을 모으고, 양껏 쓰는 것에 재미가 들렸던 때였다.
당시 내 지인 중엔 반(反) 명품파 A가 있었다. '된장녀'라는 표현이 갓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던 때라 대화 중에 자연스레 명품 얘기가 나왔던 것 같다. A는 품질 좋고 디자인도 좋은데 1/10 가격으로 살 수 있는 제품이 널렸다며, 명품가방 사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열변을 토했다. 괜히 눈치가 보여 슬쩍 자세를 바꿔 내 옆의 가방을 몸으로 가렸다. 잠시 후 자리를 일어나며 우리는 입술을 고쳐 발랐다. A의 손에는 금색 샤넬 로고가 박힌 까만 립스틱이 들려있었다.
시간이 흘러 우연히 '여우와 신포도' 우화를 읽었을 때 나는 그날의 A가 떠올랐다.
시간이 흘러 부동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가방보다 집을 사고 싶어졌다. 오로지 부동산 말고는 갖고 싶은 게 없었고, 집을 사기 위한 종잣돈을 모으는 데 집중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명품에 대한 물욕도 사그라들었다. 그렇게 짧았던 나의 고오급 추구 생활이 끝이 났다.
그때쯤 남편과 결혼하게 되었다. 결혼하고 얼마 후 시댁에서 선물로 명품가방을 사주시겠다고 했다. 나는 그때 정말 갖고 싶은 게 없었으므로 괜찮다고 극구 사양하였으나 어머님의 착한 닦달에 남편이 나를 이끌고 백화점으로 갔다. 지방시(GIVENCHY)를 기븐치로 읽을 정도로 명품을 잘 모르는 남편은 형님이 '요즘엔 샤넬이 대세'라고 했다며 다른 데는 둘러보지도 않고 곧장 샤넬 매장으로 나를 이끌었다. 셀러가 추천하는 가방을 이것저것 매 보았지만, 전처럼 예뻐 보이지가 않았다. 정확히는 가방은 여전히 예쁜데 그 가방을 든 내 모습이 그저 그랬다. 이전에 '강한 욕망의 눈'을 하고 볼 때는 나에게 잘 어울리는 것 같던 가방들이 그날엔 가방만 삐까뻔쩍 빛나는 느낌이었다. 어딘가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 같았다. 심드렁한 내 표정을 뒤로하고 남편은 '혼수는 샤넬 클래식'이라는 셀러의 추천에 해당 모델에 대기 신청을 걸고 있었다.
일주일이 지나 매장에서 연락이 왔다. 제품이 도착했으니 찾으러 오라는 셀러의 전화였다. 곧바로 전화를 끊으려는 셀러를 다급히 불러 세워 안 사겠다고, 대기 취소해 달라고 말했다. 셀러는 나보다도 더 아쉬워하며 이 모델, 이 사이즈는 진짜 구하기 어려운 건데 정말 취소하시겠냐고 여러 번 강조해서 물었다. 어찌나 아쉬워하는지 잠시 마음이 흔들릴 뻔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돈을 주면서까지 갖고 싶지가 않았다. 퇴근 후 남편에게 샤넬 매장에서 연락이 왔는데 그냥 취소했노라고 알려줬더니, "괜찮아? 후회 안 하겠어?" 하고 물어왔다.
"어, 후회 안 해. 진짜 괜찮아." 단호하게 답했다.
어쩌다 이런 해묵은기억까지 끄집어내 왔냐고?
'물욕 10년 주기설'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으신지.
물론 없을 것이다. 방금 내가 지어낸 말이니까^_^
요즘 다시 물욕이 피어오르나 보다. 과히 단호한 그때를 떠올리면 조금 후회되고, 괜찮고도 안 괜찮다.
파리에서 관세까지 200이 안 되게 주고 샀던 WOC는 이제 450이고, 당시 500만 원 좀 넘던 샤넬 클래식 스몰은 이제 천만 원을 훌쩍, 후우우우우울쩍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