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97살의 내가 말했다.

덕분에 즐거운 인생을 살았다고

by poppy

나는 꽤 자주 사색에 빠진다. <생각을 비워내라>라고 하면 '어떻게 생각을 비우지? 애초에 생각이라는 걸 비워낼 수 있는 걸까?....'를 시작으로 더 많은 생각에 빠지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어차피 하는 생각이라면 조금 더 깊이 있는 생각을 해보기로 했다.




종착지에 관하여


그중에서도 나는 굉장히 자주 죽음에 대해서 생각한다. 누군가 보면 얘 조금 힘든 거 아닌가? 싶을 수 있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기는 약간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사실 이 버릇은 작년 상담을 한 뒤부터 시작되었는데 점점 생각의 주제가 달라져서 신기하다.


상담을 받던 초반에는 '이런 반복되는 인생을 언제까지 살아야 하는 거지? 과연 어디에서 보람을 느껴야 하지? '라고 생각했다. 이때는 뭔가 마음에 안 들고 힘든 상태였다. 현재의 삶을 앞으로도 영원히 똑같이 살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 잡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어차피 한 번쯤은 오는 죽음 앞에 당당해지기 위해 매일을 재미있게 살고 싶다. 그렇다면 어떻게 내가 재미있어하는 삶으로 나를 이동시킬까?'를 고민하고 있다.


이렇게 바뀌게 된 계기는 내가 실제로 작고, 큰 재미들을 조금씩 맛보았기 때문이다. 나를 중심으로 삶을 살면서 스스로 원하는 인생이 뭔지 점점 깨닫고 있다.

내가 어떨 때 흥미, 재미를 느끼고 어떨 때 성취감을 느끼며 감사한 마음이 드는지를 관찰하고 기록한다.


사람은 먼 미래를 계획하고 앞으로 살게 될 인생을 바라보면서 살지만 그건 아무도 보장해 주지 않는다.

내 끝은 나조차도 알 수가 없다. 누구나 한 번쯤은 마주하는 일. 이 세상에서 제일 공평한 일이다. 100% 일어나게 되는 일이다. 그런데 그 끝의 과정을 약간 쉬쉬하고 대화하지 않으려 한다. 무언가에서 한번 도망치면 계속 도망쳐야 한다. 언젠가는 반드시 마주할 필요가 있다.




97살의 내가 말했다. 덕분에 즐거운 인생이었다고.


나는 내가 어떻게 죽고 싶은지 종종 스스로에게 묻고는 한다. 그게 정한다고 해서 이뤄질 가능성이 그리 높지는 않겠지만, 뭐 상상은 자유니까. (사실 어떤 장면에 어떤 계절, 분위기, 주변 풍경도 정해놨다. 정했다고 하기에는 너무 많이 생각해서 그런지 기억처럼 선명해져 버렸다. ) 더 나아가서 미래의 내가 가끔 나에게 말을 건네는 식으로 대화도 종종 해본다.


지금의 네가 나를 만들어 준거야.

잘 버티고 즐겁게 살아줘서 고마웠다.

라고 나한테 말한다.


이건 미래의 내가 과거의(현재의) 나에게 하는 독백이자 기록이다. 가끔 현재의 삶은 미래의 내가 이미 살았던 삶을 살아내는 것뿐이라고 느낀다. 이렇게 말할 때면 뭔가 울컥하기도 하고 현재 내가 자랑스럽기도 하다.

그리고 조금 덜 불안하다. 나는 미래의 나를 믿으니까.


자기 전에도 어떤 날은 '오늘의 나는 잠듦과 동시에 죽는다'라는 암시를 건다. 그리고 내일 만약 눈을 뜨게 되면 그건 어제와는 또 다른 새로운 내가 된다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가끔씩 다시 태어난다.




내가 끝나고 나면


모든 게 끝이 없다면. 젊음, 사랑, 수명 이런 것들이 소중하다고 여김을 받을까?

아마 내 생각에는 플라스틱 같은 취급을 받지 않을까 한다. 영원히 썩지 않아서 골칫거리인 문제같이.

요즘 들어서 물건을 사거나 만드는 것에 회의를 느낀다.

이 모든 게 다 어디로 갈까 싶다.

예뻐서 사고, 지겨워서 버린다. 그 물건들을 다시 개발도상국가나 저개발국이 다시 사들인다. 그러다가 올바르지 못한 방법으로 폐기가 되어 자연으로 흘러간다. 그걸 다시 인간이 먹고 마시며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결국 끝은 인간이 문제라는 걸로 종결된다. 그렇다면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이 다 멸종되어야 문제가 해결될까. 그건 알 수 없는 문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최선을 다할 뿐이다.


식재료를 살 때 최대한 먹을양만 구매하거나, 옷이 해졌다면 다시 고쳐서 입거나, 살까 말까 고민하는 건 장바구니에 넣어두고 더 고민을 하거나(그러면 90% 이상은 까먹는다), 플라스틱을 조금 덜 쓰거나 하는 작고 사소한 것들이다.

더 나아가서 지금 내가 현업으로 하고 있는 디자인 관련된 일들도 환경을 위해서 할수 있는 일들로 생각한다.


내가 끝나고 나면 나의 세상은 끝이지만 그 이후 누군가의 삶은 계속 이어질 테니 내가 받은 몫을 누리면서도 잘 가꾸는 것.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삶의 끝에서 '참 좋은 여행이었다' 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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