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영 시인 작품
철저해진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철저히 완벽한 사람이 되는 것 뿐만 아니라, 어느 하나의 입장을 '철저히' 고수할 수 있는 현대인들은 몇이나 될까?
철저하다 : 속속들이 투철하여 빈틈이 없다
오늘은 이 단어에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오세영 시인의 '자화상 2'를 가져와서 기록하고 싶어졌다
자화상 2
오세영
전신이 검은 까마귀
까마귀는 까치와 다르다
마른 가지 끝에 높이 앉아
먼 설원을 굽어보는 저 형형한 눈
고독한 이마 그리고 날카로운 부리
얼어붙은 지상에는 그 어디에도
낱알 한 톨 보이지 않지만 그대 차라리 눈밭을 뒤지다
굶어 죽을지언정 결코 까치처럼
안가의 안 마당을 넘보지 않는다
검을 테면 철저히 검어라
단 한 개의 깃털도 남기지 말고
겨울이 되자 온 세상 수북히 눈이 내려
저마다 하얗게 분장하지만
나는 빈 가지 끝에 홀로 앉아 말없이
먼 지평선을 응시하는 한 마리
검은 까마귀가 되리라
이 시에 대한 해석은 전혀 모르기 때문에 그냥 나의 느낌대로 이 시를 음미하고 읽게 된다
사실 나는 시를 잘 모르기도 하고, 많이 읽는 편도 아니지만 내가 살면서 읽었던 시 중에는 손에 꼽히게 좋아하는 작품이다
시의 제목이 '자화상'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작가는 어떤 자아성찰적 측면에서 이 시를 쓴 것 같다
자신의 얼굴을 보면서, 더 나아가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느낀 어떤 점들을 바탕으로 까마귀를 떠올리지 않았을까?
까마귀는 우리나라에서 흉조로 여겨지곤 한다
영화에서 불길한 장면을 암시할 때는 흐린 날씨와 까마귀의 까악까악 우는 소리가 동반되기도 하고, 까마귀를 보면 그날 운이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까마귀가 아마 흉조여서일 것이다
이 철저히 검은 까마귀는 게다가 겨울을 맞았다! 온 세상에 흰 눈이 내리게 되면, 평소에는 어찌저찌 묻어갈 수 있었던 이 검은색이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반동의 색깔이 되어 버린다
고독한 이마와 날카로운 부리를 가지고 있는 까마귀는 세상과 친해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고개를 숙이며 친해지고 싶은 의사도 없는 것만 같다
굶어 죽을지언정 까치처럼 안가의 앞 마당을 넘보지 않는다는 자신만의 철학을 바탕으로 '철저한 검은색'이 되기를 선택한 것이다
나는 이 시를 보기 전까지 까마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싫어하는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길조인 까치를 보면 왠지 모르게 반가웠지만 까마귀는 내 뇌리에 부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를 읽고 나서부터는 또 다른 감정으로 까마귀를 바라보게 된다
내가 자주 쓰거나 좋아하는 단어들 중 '줏대'와 '치열'이 있다
치열하게 자신의 철저한 검은색을 유지하며 줏대를 지키며 살아가는 까마귀의 모습은 멋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며 참 다양한 군상의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어떤 사람들은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유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본인이 추구하는 바가 명확하고, 이를 위해 단단한 성격을 지니고 살아간다.
지향점이 명확하고 심지가 굳은, 얼핏 보면 꽤 검어 보이는 사람들은 꽤 많지만 실제로 철저히 검은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이 시의 작가는 어쩌면 자신을 유약한 검은색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만 같다.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을 하려고 하지만 돈이 되지 않아 현실과의 괴리가 생기는 이 시점, 처음과는 약해진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며 전신 위의 까마귀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리고 온 세상이 흰 눈으로 덮여도 철저한 검은색을 유지할 수 있는 까마귀 같은 사람이 되고자 했던 건 아닐까?
이 작가처럼 세상에 철저한 검은색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완전 흰색으로 세상의 배경에 동화되어 살아가는 사람들도 거의 없겠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명도가 다른 회색을 띠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본인이 추구하는 바가 있어도 현실과 타협하고, 검은색이었던 자신의 깃털에 조금씩 하얀색을 허용한다.
그러나 그만큼 시인은 이 철저한 검은색의 경솔함을 경계하고 있는 듯하다. 또 철저한 검은색을 표방하는 사람들의 색은 과연 정당한지도 잘 모르겠다!
이 시에서의 까마귀는 무척 매력적이고 고고한 존재지만, 철저함과 오만함은 한 끗 차이다. 그 선을 명확히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나, 철저히 검어지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정당성과 각오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 같다.
이 시를 읽고 정리해보면 결국 내가 내리는 결론은 두 가지다.
철저히 검어질 수 있는 사람은 멋있다! 회색의 삶, 인가에 들어가는 까치의 삶을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달리 온통 흰 세상 속에서 철저히 검은 깃털만으로 먼 지평선을 응시할 수 있는 까마귀는 흰색을 허용하지 않는 용기가 있고, 검은색을 지켜내는 용기가 있는 존재인 것 같다
그러나 동시에 그 철저한 검은색의 무게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단순히 철저한 검은색이 멋있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목적을 상실한 단색은 오히려 역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지 않을까?
'빈 가지 끝에 앉아 홀로 말없이 지평선을 응시할 수 있는' 철저한 까마귀인 것이지, 까치를 무시하고 회색을 깔보는 까마귀는 이 시의 작가가 지향하는 까마귀의 모습은 아닌 것 같다
이 시를 읽다 보면 까마귀의 용기에 감명받다가도 어느 순간 용기와 오만의 선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읽을 때마다 어떤 의미에서든 확실한 동기부여가 되는 시임에는 틀림없는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