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는 밤 11시의 철학자

by 싱가

라고 새벽 2시에 말하고 있다 ..

이 시간까지 깨어 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월수금 12-6시 계절을 듣기 전에 컴포즈에서 아.아를 한 잔 테이크아웃해서 점심으로 페레로로쉐랑 같이 먹으면서 쭉 수업 듣는다. 저녁 약속에 가서 밥을 먹고 카페에 가서 디저트랑 뜨.아를 한 잔 시킨다. 나는 카페인에 엄청 민감한데 하루에 아.아/뜨.아 콤보로 이날 잠은 다 잔 셈이 된다.

그래서 시작하는 니체 얘기

이번 계절학기에는 철학개론이라는 수업을 듣는데 조별로 철학자 하나씩 선정해서 발표한다. 그리고 니체를 지원해서 이번 주 금요일에 발표함 .. 정리 겸 니체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



니체에 처음 관심을 가진 건 낙관적 허무주의를 알아보면서부터다. 원래는 카뮈에서 시작했으나 서칭을 하다 보니 니체와 카뮈를 어느 정도 묶어서 설명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삶의 부조리를 마주한 인간은 (능동적) 허무주의자가 될 수 있는데, 이때 각각의 극복 방식에 따라 니체는 ‘초인’이 됨으로서 이 문제에 접근한다고 한다 ~~

여기까지가 니체와의 첫인상

니체 발표를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살펴본 것은 니체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니체의 사상을 볼 때 빠뜨릴 수 없는 건 니체의 생애

니체는 1844년 태어나 처음에는 고전문헌학자로서 커리어 (?) 를 시작했다. 아직 학위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실력을 인정받아 최연소 교수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후에는 고전문헌학보다는 철학/예술/문화 비판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되면서 우리가 아는 니체의 모습에 가까워지게 된다.

~~ 많은 일들이 있고 .. 니체는 기본적으로 몸이 좋지 않은 사람이었다.. 만성적 편두통과 시력 저하 등으로 인해 교수직을 완전히 내려놓고 이후 10년 간 유럽 각지를 여행하며 은둔과 사유에 집중했다고 한다. 이때 초인/영원회귀와 같은 결정적 개념이 정립된다. 니체의 학문이 절정에 이른 직후 그는 “정신붕괴” (ㅜ.ㅜ) 를 경험하고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다 생을 마감



니체는 “망치를 든 철학자”라고 불린다.

과언이 아닌 것이 “신은 죽었다” 라고 외치는 폭룡적인 철학을 전개한 인물이다. 전통 도덕을 ‘노예 도덕‘이라고 칭하고, 칸트/헤겔 등 기존의 이성 중심 철학을 비판한 그는 새로운 가치 창조의 주체로서 인간을 재정의하고자 했다는 데서 의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신은 죽었다” 를 무신론하고 동치시키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도그랬음 이건 단순한 무신론이 아니라 기독교적 가치의 몰락을 의미하는 바로 이해하는 게 더 정확하다고 한다. 니체가 살았던 19세기 유럽은 여러모로 ’가치 체계 붕괴‘의 시점이었는데, 이때 근대 이성주의와 과학의 발달로 이전에는 절대 of 절대였던 신의 자리가 흔들렸다.

—> 그래서 니체: 인간은 이제 스스로! 자기주도적으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창조해야 한다.

라고 주장했던 것

그리고 이런 신의 죽음은 위버멘시 (초인) 로 나아가는 동력이 된다.

그리고 인식..

니체는 “절대적인“ 이라는 키워드의 정말 유명한 안티였다. 우리가 인식하는 게 절대적 진리냐??

인간의 인식이란 언어와 관습, 비유에 의한 구성물일 뿐 이것이 절대적 진리는 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진리라는 것 자체도 가만히 있는 정적인 대상이 아닌, 힘에의 의지 (후에 서술) 와 관련된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건 ”절대적 진리“를 주창하며 이에 대한 탐구를 진행했던 기존의 플라톤 중심 서양 철학 & 칸트와 헤겔의 인식론에 대한 강한 비판으로 해석된다.

이것과 관련지어 개개인의 가치판단이 달라질 수 있음을 강조한다. 사람마다 다 ~~ 다르다는 것

그 다음으로 나오는 게 힘에의 의지 (Willie zur Macht) 라는 개념이다.

생명체는 단순한 자기 보존을 넘어 성장과 우월을 추구한다는 점 .. 그니까 목숨이 붙어있기만 하면 되는 존재가 아니라, 자기극복 & 권력의지를 통해 스스로를 초월하려는 존재인 것이다. 이 ’힘에의 의지‘ 개념은 위버멘시 (초인) 개념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그래그래

주도적으로 살고 절대적인 건 없고 자기극복 중요하겠지 .. 그럼 여기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정말 너무너무 중요한 위버멘시 (Ubermensch, 초인) 의 개념을 들고 온다.

초인은 신의 죽음 이후 새로운 가치 창조를 담당한 새로운 인간상을 뜻한다. 전통 도덕을 초월해서, 자신의 삶을 예술처럼 창조하는 존재라는 것. 이 사람들은 힘에의 의지를 적극 실현하고, 영원회귀 (후에 서술) 를 긍정하는 사람이다.

그럼 영원회귀는 또 뭔가 (Ewige Wiederkehr does Gleichen)

말 그대로 우주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무한히 반복된다는 상상이다. 이는 인간에게 자기 삶의 긍정 & 자기 존재에 대한 책임감을 요구한다.

>> 너는 지금의 삶을 무한히 반복할 수 있다고 상상할 수 있어?

사실 이게 제일 핵심인 것 같다. 이외에도 기존 이성 중심이 아닌 신체 중심 사유를 나타낸 점, 예술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고 영향을 끼친 인물이라는 점 등 추가로 들어갈 내용은 많겠지만 여기까지만 ..

니체의 철학은 사실 많은 비판점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내가 발표에서 이 부분을 맡아서 이제부터 아는 부분이 좀 많다 ..

철학mbti검사했는데 니체가 나왔다

반박 1) 니체는 사람들이 인식이 모두 다르다고 주장하지만, 진정으로 좋은 삶에 대해서는 ‘초인’이라고 하는 본인의 방식을 주장한다. 그런데 사람들의 다른 인식 속에서 '좋은 삶'이라는 것도 결국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아니냐 -- 이런 니체의 태도는 모순적이다.

이게 니체의 철학이 봉착한 대표적인 자기지시적 모순이다. 그러나 니체의 대표 저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 한 부분을 읽어보면 생각이 바뀐다.

"나는 나의 제자들이 나를 극복하기를 바란다. 내가 그들을 진리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를 버리고 자신만의 길을 걷게 되기를 바란다."

사실 니체는 자신의 철학조차 궁극적인 진리로 고착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자신의 철학이 보편적/절대적으로 우월하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니체의 주장조차 하나의 해석이며/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다. '외부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말조차도 절대적인 명령이 아니라 '그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식의 태도를 권했음을 알 수 있다.

반박 2) 그럼 앞에서 위버멘시 (초인) 가 최고라고 했던 것, 이것도 마찬가지로 자기지시적 모순이 아닌가? 항상 의심하고 도전하는 삶만이 전부라고 할 수 있는가?

이것도 충분히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초인이라고 하면 .. 혹한기 훈련처럼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하고 자기계발서 같은 삶을 사는 이미지가 떠오르곤 한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이해한 초인은 그런 자학/수련의 개념보다는

정반합에서 '반'을 던지는 자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니까 니체의 초인은 자신의 삶에 주인의식을 가지고, 많은 것들에 대해 의심하고/이것이 옳은가에 대해 생각해보는 사람

이 아닐까??

반박 3) 공동체 차원으로 넘어와서 .. 개개인의 가치판단 참 중요한 거 맞는데, 그럼 사회가 위험에 빠질 수 있지 않은가

예시 1 -- 어떤 사람이 a라는 행위를 한 후, "제 가치판단에는 이게 바람직한 행위인데요?" 라고 말한다면

예시 2 -- 사회적 차원에서 공동체는 어떻게 특정한 판단을 하느냐 .. 궁극적으로 사회 질서가 위험에 빠진다면

우선 니체는 공동체적 삶 자체를 비판한 적이 없다. 오히려 그가 비판한 것은 현대의 대중 사회가 강요하는 획일적 질서/도덕의 절대화/맹목적 복종인 것

그리고 사실 정치 체제로서의 공동체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상대적 객관성' 개념을 가지고 이야기해 볼 수 있다.

개인의 가치판단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일관성 문제에 대해, 니체는 다양한 관점을 종합적으로 사고하는 훈련을 통해 상대적 객관성을 추구하고자 했다. 니체는 개인이 가지는 가치판단만큼이나 타인과 삶을 사랑하는 자세로 논의하는 태도도 중요하게 여겼던 것 같다. 자신의 사상을 바탕으로 상대방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이야기해 보자는 태도 .. 오히려 이런 갈등을 역동성으로 승화시켜 생산적으로 활용하려 했다고 이해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반박 4) 전체주의/파시즘으로 흐를 가능성

니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사회는 '소수의 초인들이 새로운 가치와 방향을 제시하며 문화적 지도자 역할을 하는' -- 이것이야말로 전체주의/파시즘과 같은 위험한 사상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것 아닌가 ..

실제로 니체 사후 반유대주의자였던 니체의 여동생에 의해 그의 사상이 악.편 (악마의편집) 당하면서 한동안 니체 철학은 많은 오해를 받기도 했다 ..

그러나 니체는 지배계층을 강력히 비판하는 발언을 한 사람 (지배계층은 개인의 사상을 탄압하는, 도덕/선/법을 강제하는 입장으로서 혐오스러움!!) 인 만큼 그건 아닌 것 같다.

또 예술을 좋아했던 니체의 모습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그는 '우리는 누구나 춤출 수 있고, 사유할 수 있다' 라고 말했다는 점 &

예술을 특별한 사람들의 것처럼 보이게 하는 전시와 같은 것들을 선호하지 않았다는 점 등에서도 방어가 가능하지 않을까 ..

마지막 반박) 대책이 없다!

니체는 대단한 사람이 맞다. 기존 사상의 문제점을 짚어 비판하고, 사람들에게 의심하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던진 인물이다.

그러나 정작 방법론은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 .. 좋은 기준은 무엇인가? 의심의 판단 기준은 무엇인가? 비판만 하고 끝난 느낌이 든다.

이건 토의를 하면서 팀끼리 낸 결론이기는 하지만

니체가 어째보면 일부러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사상을 전개하지 않았나? 싶었다. 사람들이 다시 토론하는 장을 마련하기 위해서 본인은 극단적인 주장을 펼치고 쏙 빠진 느낌 ..

또 니체는 본인이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 이야기 또한 시대가 변하면서 죽을 논리이기 때문에, 자신의 이론상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은 거기까지임을 미리 알지 않았나? 다만 의심하라는 것은 비판받을 수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의심하라고 한 것


극단적 페레로로쉐

니체의 사상은 참 극단적이다

그래서 여느 유명 철학 중에서도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고 생각하는데 ..

문학 해석에서 반영론적 관점이 빠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니체의 입장을 좀 더 생각해보게 된다.

사람들에게 인식되는 니체는 -100을 말하고 있다. 0이 도달하고자?? 하는 일종의 영점이라고 생각해보면 사람들 입장에서는 니체의 이런 극단적인 주장에 때로 0이 아니라 -100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틀렸다 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니체는 기존 철학이 +100을 찍고 있었기 때문에 그 영점으로 되돌리기 위한 -100을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물리학에서 서로 반대로 미는 힘 --> 상쇄되는 것처럼

그래서 더 극단적으로 말한 것이 아니었나 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니체의 속마음은 저도모르죠ㅋㅋ..

아무튼 발표 준비를 하면서 알게 된 점은 그렇고

내가 니체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위의 생각들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 (Auf lateinisch; amor fati)"는 니체의 말 때문이다.

얼핏 보면 "그냥 주어진 자기 운명을 얌전히 받아들이고 사랑이나 해라" 라는 건가 ?? 싶을 수 있으나 니체가 말하고자 했던 건 그게 아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삶의 조건 -- 고통, 실패, 병, 불행, 수치와 실수까지도 -- 적극적으로 긍정하고 사랑하라는 말이다.

저 너머의 세계에 기대지 않고, 지금-여기 이 삶 자체를 긍정하는 태도

수동적 수용이 아니라, 고통과 결핍/우연과 비극까지도 나를 만든 불가피한 구성 요소로 끌어안고 --> 창조적으로 전환하는 태도

삶의 모든 측면을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아닌 "그렇기 때문에" 긍정하는 태도

그래서 우리가 자신의 삶을 다시 한 번도 아니라 무한히 반복해도 좋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삶 전체에 "예!"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챗지피티발췌..)

관련한 문장들도 찾아볼 수 있다.

"나는 어떤 것에도 부정의 낙인을 찍고 싶지 않다. amor fati! 이것이 나의 최선의 삶의 태도다." (즐거운 학문)

"나는 나의 운명을 원한다. 다시 말해, 내가 되기를 원한다." (이 사람을 보라)

이게 진정한 자기애/자기긍정/자존감 이 아닐까 ??

이러한 삶의 태도는 결과로서 평가되지 않기에 더욱 좋았다. 이러한 초인의 삶의 태도는 언제나 성공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

그러나 니체는 이 결과가 가치를 좌우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초인의 태도! 마음가짐! 결국 핵심은 그거라는 것

안 되면 ?? 아쉬운 거겠죠 .. 하지만 실패했다고 해서 내 삶을 부정할 필요는 없는 것

사실 이게 나한테 제일 필요했던 말이 아닌가 싶다.

낙관적 허무주의부터 시작해서 이게 내가 니체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구 ..

참 긴 글이 되었네요

여기까지 읽은 사람이 있을까요??

어느덧 새벽 3시가 되었고 ..

니체는 왜 나에게 밤 11시의 철학자인가 .. 생각해보면

주류였던 플라톤~이성중심주의 철학이 서양 철학사의 가장 활발한 시간 /낮이었다면 그들을 부정하는 밤의 철학자 같다는 생각

그럼에도 새벽감성에 되도 않는 말을 지껄이는 철학자는 아니라는 생각

다음 날 /철학의 새로운 장을 본격적으로 열기 시작한 철학자라는 생각

그런 의미에서 밤 11시의 철학자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니체는 참 흥미로운 인간이 분명하지만 그가 이런 사상을 고안해 내기까지 겪어야 했던 수많은 병.아픔.정신병.정신박약.만성통증.고난.고통.실연.말끌어안고광장에서엉엉울기. 를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그냥 계절 끝나고 제주상회에서 고기국수 한 그릇 하고 달달한 파이 먹는 지금 내 삶도 꽤 괜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무튼 니체씨를 알게 된 후

영원회귀의 삶을 무한긍정!! 하는 초인의 태도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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