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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퓰러 Apr 14. 2024

가브리엘을 찾아서

많은 여성들의 유럽여행에 대한 기대

포르투갈 여행 중 포트와이너리 투어에 갔다.

투어 마지막 코스인 포트와인 시음 장소에서 혼자 여행 온 한국 여성을 만났다.

직장을 그만두고 퇴직금으로 혼자 유럽 여행을 왔다고 한다.




나도 젊었다면 호기롭게 직장을 그만두고 오랜 기간 해외여행을 떠났을 텐데...

이직 경험이 풍부한 나는 언제든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떠나는 것을 꿈꿨었다. 이직을 곧잘 한 편이어서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떠나는 것은 언제든 가능한 일이라고도 생각했었다.


그럼에도 일복이 많은 탓이었던 건지, 나는 족히 10개쯤은 각기 다른 4대 보험 가입 사업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으나, 신기하게도 단 하루도 이직 중간에 쉬어본 적이 없다.


필요하면 몇 개월마다 한 번씩 이직을 밥 먹듯 하던 나는 세월이 지나 한 직장에 정착을 했고, 나이를 먹었다. 이제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지금 회사를 자발적이든 자발적이지 않든 그만두고 나서야 가능한 일임을 깨닫는다.


그녀의 젊음이 부럽다.

그녀의 퇴사 후의 이 시간이 부럽다.





"어머, 정말 부러워요!"

진심 부러워하며 물었다.

"그럼 포르투갈 말고 또 어디를 둘러볼 예정이에요?"

여자는 포르투, 리스본, 파리를 돌고 있는데, 파리는 이미 들렀다가 왔고, 돌아갈 때 다시 파리를 들러서 한국으로 갈 예정이라고 했다.


우리도 포르투갈 여행을 마치면 돌아가는 길에 파리에서 환승을 할 예정이었다.

파리의 에펠탑은 잠시 들르기 좋냐고 묻자 그녀는 파리 에펠탑 트로카데로 광장은 지금 올림픽 준비가 한창이어서 들어갈 없다는 아쉬운 소식을 전한다.


여자는 묻는다.

"혹시 <에밀리, 파리에 가다> 보셨어요?"

"아뇨? 영화예요?"

"넷플릭스 드라마예요. 거기 가브리엘이라는 남자가 나오거든요. 제 이상형이에요. 저는 여행에서 가브리엘을 찾아왔는데... 쉽지 않네요."






풋.

다시 한번 젊구나 싶다.


가브리엘이 드라마 속에서 어떤 모습일지 모르겠으나 여행지에서라면 누구나 한 번쯤 내 인연을 만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게 되는 것 같다. 나도 그런 상상을 해봤다. 낯여행지에서 운명과도 같은 나의 남자를 만난다는 상상. 30대 초반, 엄마와의 유럽 배낭여행에서는 엄마 없이 혼자 왔더라면 내 인연을 만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었다.




운명인 건가. 혹은 그녀의 계획 덕분인 걸까.  

그녀의 옆에는 근사한 슈트를 입은 남자가 앉아 있다.

남자는 지인 부부에게 와이너리 투어를 시켜주는 듯했다.


나는 남자가 자리를 비운 사이 슬며시 여자에게 말을 건넨다.  

"옆에 앉아 계신 남자분, 근사하던걸요? 매너도 좋고요." 

여자는 말한다.

"네, 그렇죠... 근데... 반지를 꼈더라고요."


역시... 그녀는 이미 많은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녀는 여행을 하면서,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꾸준히 가브리엘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유럽은 많은 젊은이들이 그녀와 같은 희망을 가지고 혼자 오기 좋은 여행지가 아닌가 싶다.  

낯설지만 낭만적인 이곳에서 어쩌면 자신의 인연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설령 여행 출발 전에는 이런 희망이 없었다라도, 유럽 곳곳의 매력 속에서 나홀로 여행자는 여행 중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게  것이다.


실제 그렇게 탄생한 커플도 많다.

I언니도 유럽 여행에서 만난 4살 어린 남자와 연애를 시작했고 결국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


하지만 희망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그녀처럼 적극적이어야 할 것 같다.  

가브리엘을 찾아온 여자처럼 호감이 가는 남자 옆에 앉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남자가 반지를 끼고 있는지 확인하는 센스도 있어야 한다.


문득 그녀의 여행의 결말이 궁금해진다.

그래서 여자가브리엘을 만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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