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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퓰러 Mar 03. 2024

낯선 여행지에서 기억을 잃는다면

해외 여행지에서 혼자 길을 걷다 꼭 한 번쯤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이렇게 길을 걷다가 기억을 송두리째 잃어버리면 어쩌지?  
모든 기억을 잃게 되면 나는 어디로 가게 될까?
 


특히 밤에 일본의 고요한 골목길을 혼자 걷다 이런 생각을 많이 한다.

무료로 족욕을 할 수 있는 고요한 시라하마 온천마을에서도, 

복잡 현란한 오사카 도톤보리 뒤편의 상대적으로 조용한 골목길을 걸을 때도,  

후쿠오카 맛집 탐방을 하겠다며 식당을 찾아 나선 길에서도, 

삿포로 드럭스토어에서 잔뜩 쇼핑을 하고 홀로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서도,  

목적지를 향해 바삐 걷고 있는 내 발을 바라보다 갑자기 기억을 잃을 것에 대한 상상을 하며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익숙한 내 나라가 아닌,

내가 살고 있는 거주지가 아닌,

낯선 여행지에서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기억을 잃으면 걸음을 멈출까, 아니면 가던 방향으로 계속 걸을까?  


돌아갈 곳을 찾을 수 없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 여행의 시작이다.  


어디서 누군가를 만나느냐에 따라 이후의 결과는 송두리째 바뀔 수 있다.

더 무서운 건 기억을 잃고 그 이후의 일들을 나는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내가 사라졌다면 나를 걱정해 줄 가족이 있다.

하지만 더 나이가 들어서, 가족이 아무도 없는 노년이 되어서 여행지에서 기억을 잃는다면 그때의 나는 아마 이 세상에서 잊힌 존재로 살아갈 확률이 높다. 쥐도 새도 모른 채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길은 잃어도 좋다. 

그런데 기억은, 정신은 절대로 잃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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