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플레이워커가 피터 드러커를 읽는다면

by 팝업플레이 서울

책을 읽다가 문득 이런 상상을 해 보았다.

‘만약 플레이워커가 피터 드러커를 읽는다면?’


플레이워크는 어떤 언어로 설명될 수 있을까.


피터 드러커는 조직의 목적을 아주 단순한 문장으로 설명했다.


“조직의 목적은 고객을 창조하는 것이다.”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때는 기업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플레이워크 역시 하나의 조직적 실천이며 사회적 활동이다. 그렇다면 플레이워크에도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우리의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의 고객은 누구인가.

우리가 제공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이 질문을 플레이워크에 적용해 보면 생각보다 흥미로운 답이 떠오른다.


먼저 플레이워크의 정의부터 생각해 보자.


플레이워크는 어린이에게 놀이를 가르치는 활동이 아니다. 어린이가 스스로 놀이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지지하는 실천이다.


플레이워커는 놀이를 지도하는 사람이 아니라 놀이가 일어나는 환경을 돌보고 지켜보는 사람이다. 때로는 공간을 정리하고, 때로는 위험을 관찰하며,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문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어린이가 있다.


그렇다면 플레이워크의 고객은 누구일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존재는 어린이다.


어린이는 어른이 정해 준 놀이가 아니라 스스로 탐험하고 만들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는 놀이를 원한다. 나무에 오르고, 흙을 만지고, 친구들과 세계를 만들며 때로는 위험에도 도전한다.


어린이에게 놀이는 단순한 활동이 아니다.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이다.


플레이워크는 바로 그 경험이 가능하도록 환경을 만든다.


하지만 플레이워크의 고객은 어린이만이 아니다. 어린이가 자유롭게 놀 수 있는 환경은 어린이 혼자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공간에는 부모가 있고 친구가 있고, 그곳을 지나가는 이웃이 있다. 때로는 행정 담당자가 있고 도시를 설계하는 사람도 있다.


놀이 환경은 하나의 생태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한 어린이가 놀이터에서 나무에 오르려고 하는 장면을 떠올려 보자.


어린이는 단지 재미있어서 나무를 오르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장면의 주변에는 여러 사람들이 존재한다.


어떤 부모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

어떤 부모는 흥미롭게 관찰할 수도 있다.

어떤 이웃은 소음에 대해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어린이가 노는 모습을 보며 잠시 미소를 짓기도 한다.


같은 공간이지만 사람마다 경험하는 의미는 모두 다르다.


그래서 플레이워크의 고객은 단순히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놀이 환경과 관계를 맺는 사람들 전체라고 볼 수 있다.


어린이는 그 공간의 중심에 있는 존재다.

부모 또는 보호자는 그 공간을 허락하는 사람이다.

지역사회는 그 공간을 함께 사용하는 사람이다.

도시는 그 공간을 가능하게 만드는 구조다.


플레이워크는 바로 이 관계들 사이에서 작동한다.


이렇게 보면 플레이워크는 단순한 놀이 활동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적 시스템에 가깝다.


그리고 이 시스템 속에서 플레이워커의 역할도 조금 더 분명해진다.


플레이워커는 놀이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어린이를 가르치는 사람도 아니다. 놀이가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을 지키는 사람이다.


때로는 공간을 정리하고, 재료를 제공하고, 위험을 관찰한다. 그리고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문다.


그 시간 속에서 어린이들은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간다.


나무 조각은 배가 되고,

천 조각은 집이 되고,

흙과 물은 새로운 실험이 된다.


어린이에게 놀이는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플레이워크의 성과를 숫자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얼마나 많은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어린이들이 얼마나 오래 그 공간에 머무르는가이다.


어린이가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놀 수 있는 공간,

해가 질 때까지 집에 돌아가기 싫어하는 공간,

새로운 친구를 만나 함께 세계를 만드는 공간.


그런 공간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플레이워크의 성과일지도 모른다.


다시 드러커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조직의 목적은 고객을 창조하는 것이다.”


플레이워크의 관점에서 이 문장은 조금 다르게 들린다.


플레이워크의 목적은 어린이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어린이가 마음껏 어린이일 수 있도록 사회를 다시 만드는 것이다.

플레이워크는 어린이를 모으는 일이 아니라
어린이가 존재할 수 있는 환경을 지키는 일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고객이 만들어진다.


어린이의 놀이를 이해하는 부모,

놀이가 도시를 더 건강하게 만든다는 것을 아는 정책 담당자,

어린이가 노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지역사회.


이 사람들이 바로 플레이워크가 만들어 가는 고객이다.


어쩌면 플레이워크의 가장 큰 성과는 눈에 보이는 시설이나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이 조금씩 바뀌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어린이가 나무에 오르는 모습을 보고

“위험하니까 내려와”라고 말하기보다

“어떻게 올라가는지 한번 지켜보자”라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


그 작은 변화는 아주 사소해 보인다. 하지만 그 장면이 반복될 때 사람들의 시선은 조금씩 달라진다. 어린이를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지고, 놀이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고, 결국 도시가 어린이를 대하는 방식도 달라지기 시작한다.


플레이워크는 거대한 변화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작은 공간에서 시작되고,

작은 관계에서 시작되고,

작은 실험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작은 실험들이 모여 언젠가 도시의 문화를 바꾼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남기고 싶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어린이를 모았는가를 묻고 있는가.
아니면 이 도시에서 어린이가 얼마나 자유롭게 놀 수 있는가를 묻고 있는가.


플레이워크는 어쩌면 그 질문을 사회에 던지는 일이다.


그리고 그 질문이 사라지지 않도록 조용히 곁에 서 있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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