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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쓰담 Apr 08. 2024

주인집 변기가 막혀버렸다.

어떡하지? 큰일 났어.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몸이 얼어붙은 것 같았다.


크다가 응가를 하겠다며 화장실에 다녀왔다. 물을 내려주러 화장실에 갔다. 내려가는 소리가 시원치 않았다. 오 마이갓ㅠㅠ 변기가 막혀버렸다...


주인집 화장실은 물 내리는 버튼이 쉽사리 눌리지 않는다. 가끔 나도 두세 번 누를 때가 있을 정도다. 아이들에게는 화장실에 다녀오면 물 내리지 말고 그냥 돌아오라고 했다. 아이들이 물 내리는 버튼을 누르려면 어른보다 팔이 짧으니 가까이 가야 하고 그러려면 벽과 변기 사이를 굳이 비집고 들어가서 청소되지 않은 매우 더러운 바닥을 디뎌야 하는데 매우 싫 때문이다. 차라리 내가 내려주고 말지.


소리가 시원치 않다 싶었는데 슬픈 예감은 왜 항상 틀리지 않는 걸까. 순간 나도 모르게 말했다.

와... 큰일 났네...




58평이나 되는 집이라 화장실이 두 개지만 주인집 할머니는 우리와 화장실을 같이 쓰신다. 얼마 전에 화장실이 있는 안방에 새 사람을 들였기 때문이다. 애초에 우리가 세 들어올 때는 방 두 개사이에 있는 화장실은 우리만 쓰는 걸로 얘기가 되었었다.


안방에 사람이 들어온 뒤로 언젠가부터 할머니가 우리 화장실을 쓰시는 것 같았다. 그냥 잠깐이려나 싶었는데 뭔가 이상했다. 우리만 쓰기로 했었잖아. 그러고 다시 며칠이 지 어느 날이었다. 화장실에 휴지 두 롤이 놓여 있었다. 마침 남편도 퇴근하고 와있어서 할머니께 말을 꺼내봐도 되겠다 싶었다. (무서운 분은 아닌데 괜히ㅠㅠㅠㅠ)


"화장실에 누가 휴지를 가져다 놨네요?"

"이이- 내가 가져다 놨어."

"아아... 화장실은 저희만 쓰는 줄 알았어요."

"이이- 안짝 화장실을 못 쓰게 되었응게."

"아아... 네에..."



속으로 구시렁거리며 방으로 돌아왔다.

'으아니! 그럼 말씀을 해주셔야 할 거 아니야!'


사실 모르지 않았다. 누가 봐도 상황이 뻔하잖아. 그럼에도 굳이 말을 꺼낸 이유는 말씀을 해주셔야 했던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물론 할머니가 집주인이니 쓸 수 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으니 얘기를 해야 하지 않나. 그렇다고 우리가 '안 돼요!' 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닐 텐데 말이다.



여하튼 물이 막혀서 망연자실하고 있는데 이번엔 작다가 해맑게 뽀르르 달려 나가며 말했다.

"엄마! 응가하고 올게요오-!!"


.

.

.

.

.

WHAT?!?!?!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잘못 들었나?

왜 너희들은 똥도 같은 타이밍에 싸는 건데ㅠㅠㅠ



울고 싶었다. 변기를 뚫을 수 있는 그 어떤 무기도 존재하지 않았다. 론 뭐가 있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아이들을 재워야 하지만 지금이라도 나가서 액체로 된 뚫어뻥이라도 사 올까? 부으면 뚫리기는 하나? 온갖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방에 사두었던 환타를 부으라고 했다. 일단 붓기는 했는데 그걸로 되기는 하는 거냐고ㅠㅠㅠ 뚜껑을 덮고 시간이 지나길 기다렸다. 슬쩍 뚜껑을 열어 봤는데 아직인 듯했다.


.

.

.

갑자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가 화장실을 쓰러 오셨나?'

두려움이 앞서 호다닥 뛰쳐나갔다.

내가 이렇게 빠른 사람일 줄이야..


남편이다. 안도감이 밀려왔다.

구세주가 당도한 느낌이었다. '이제 살았다!'


남편은 내게 일찍 자라고 했다.

"뚜껑이 닫혀있으면 화장실 쓰지 마."

혹여나 밤에 화장실을 갈까 봐 남편이 붙였다.



잠드는 동안 머선 일이 있었는지 알지는 못하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해결되었음은 알 수 있었다.

설마 밤새 고생한 건 아니겠지ㅠㅠㅠ




.

.

.

막힌 변기 앞에서 크다에게 말했다.

"크다야ㅠㅠ 똥 좀 나눠서 누면 안 돼?ㅠㅠ"

"엄마아! 제가 염소똥을 눌 순 없잖아요^----^"

"그.. 그렇지..ㅋㅋㅋㅋㅋㅋ"


상황이 어찌 되었든 아이는 참 해맑았다.

그 사이 주인집 할머니가 화장실에 다녀가실까 봐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너는 르겠지ㅠㅠ

다시 생각해도 참으로 아찔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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