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랑이 Dec 06. 2019

어쩌다 보니 작가

안녕하세요. 브런치에 경찰 에세이 <가제 : 새벽 4시>를 연재 중인 필명 포랑이 입니다.

혹시 제목을 보고 오해하신 분들이 계실까 봐 서두에 밝힙니다.

이 글은 결코

'글기 대회 한 번 나가본 적 없던 그는 어떻게 작가가 되었나?'

'칠전팔기! 고군분투! 어느 평범한 직장인이 작가가 되기까지의 피나는 노력의 경험담'

과 같은 거창한 소제목이 붙을만한 글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쓰는지, 어떻게 작가가 되는지에 대한 노하우를 공개하는 글이 아닌, 그저 소소한 제 근황에 대한 글이니 목적이 다분들은 살포시 좌측 상단에 뒤로 가기 버튼을 누르시어 소중한 시간을 아껴주시기 바랍니다.



 




별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글을 써보고 싶었고,
마음먹은 대로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쩌다 보니, 어느새,
작가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2014년, 기록하다

    분명 처음부터 원대한 꿈이나 거창한 계획이 있던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작가라니! 상상도 해본 적이 없다. 시작은 미약했다. 모든 것이 낯설었던 신임 시절, 업무를 배워가며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선배들의 말 한마디,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업무 매뉴얼 중 숙지해야 할 점, 그 외 내가 느낀 점들까지 가능한 빠지지 않고 기록해 두었다. 때로는 메모를 할 시간이 없어 간단히 단어만 적어두거나, 글씨를 휘갈겨 쓰기도 했다. 그 탓에 내가 쓴 글이 무슨 글인지 알아보기 힘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쉬는 날 시간을 내어 적어두었던 메모들을 조금씩 정리했다. 그렇게 정리한 메모들은 어느새 '글감'이 되어갔다.




2015년, 정리하다

    수첩마다 빼곡하던 메모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긍정적으로 합리화하자면, 이제 굳이 메모를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다. 부정적이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메모 따위가 귀찮아졌다. 결론적으로 메모에 대한 열정이 줄어들었다. 그래서 보다 흥미를 느낄만한 요소를 찾아보던 중, 그동안의 메모에 살을 덧붙여 보기로 했다. 하나의 사건에 날짜를 적고, 언제나 주인공인 나를 비롯한 등장인물들, 그리고 우리가 겪은 사건들과 내가 느낀 점 들을 간단히 정리해 보았다. 마치 어린 시절 방학이 끝나갈 무렵, 방학 숙제였던 미뤄온 일기를 한 번에 다시 쓰는 느낌이었다. 방학 숙제와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이건 꽤나 재미있는 일이었다.




2016년, 덧붙이다

    하나씩 퍼져있던 퍼즐 조각들을 맞춰가다 보니 어느새 하나의 그림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림은 아직 형태가 불분명할 뿐만 아니라, 채색조차 없는 흑백 그림이었다. 보다 멋들어진 그림을 그려보고자 색을 입히기 시작했다. 단순히 시간의 경과에 따른 사건의 나열이 아닌, 때와 장소를 구체화하고 곳곳에 숨어있는 감정들을 꺼내어 적재적소에 배치해 나아갔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이 가능했던 기반은 작은 메모들이었고, 이것들은 모두 내 기억 속에 온전히 살아있는 경험들의 집합체였기에 가능했던 일들이다. 그러다 보니 강렬하게 남아있는 기억들만이 하나의 글이 될 수 있었다. 겪었던 일들이 수십 개라면, 글로써 재탄생 할 수 있는 것들은 많아야 한두 개쯤이었다. 그림으로 치면 무채색 스케치에 색을 입히는 작업, 요리로 치면 재료들을 모아놓고 소스를 만드는 작업이었다.




2017년, 선보이다

    혼자 그려본 그림, 혼자 만들어 본 요리가 점차 늘어나기 시작하자 문득 남들의 평가가 궁금해졌다. 욕심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 그림… 그냥 시간 날 때 심심해서 그려 본 건데 어때?"

    "이 요리… 그냥 내가 먹으려고 만든 건데 맛 좀 볼래?"

    내게는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 메모를 하는 것보다, 정리한 메모로 글을 쓰는 것보다, 글을 다듬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여도 내가 쓴 글을 보여준다는 것이 너무나도 어색하고 오글거렸다. 글이야 말로 솔직한 나의 모든 감정들의 집약이기에, 이것을 보여준다는 것은 알몸인 나를 보여주는 것과 진배없었다. 어린 소녀가 숱한 날들을 고민하다가 쓴 고백편지를 좋아하는 남자아이에게 건네주고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집으로 쏜살같이 달려가는 모습. 그게 바로 나였다.

    한 번 자라난 욕심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 법. 더 많은 평가를 갈구했지만 그만큼의 용기는 없었다. 그래서 얻은 답은 바로 '익명'이었다. 왜, 소녀들도 고백을 할 때 편지 봉투에 이름을 직접 적기보다는 이니셜이나 닉네임을 적지 않던가! 그래서 익명으로 모 카페에 글을 올려보았다. 인터넷의 익명성 활용의 긍정적인 예랄까? 익명이라는 우산 덕분에 부끄러움이라는 장대비에 온몸이 흠뻑 젖을 일도 없었고, 평가자들 또한 익명이기에 지인들과는 달리 솔직하고 다양한 평가가 이어졌다. 인터넷상의 익명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강한 요즘, 내게는 이 특성이 그렇게 반가울수가 없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내 글을 읽으며 소중한 시간을 할애애 주고, 거기에 응원과 비평까지 더해줬던 기억들은 지금의 내가 계속해서 글을 쓰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다.

  "이 집, 나름 인테리어 그림도 이쁘고 요리도 먹을만하네. 그런데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






2018년, 인정받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개인의 가치를 빛내기 위해서는, 온전히 스스로 빛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끊임없는 관계 속에서 그 가치가 빛나는 법이다. 내가 써 온 보잘것없는 글이, 다른 사람들이 불어넣어 준 온기 덕분에 새로운 생명을 얻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글쓰기는 내게 1순위 취미가 되었고, 때로는 글을 쓰다 보면 밥도 거르고 밤을 지새우기도 하였다. 글을 쓰며 알게 된 공식이 있다. [재미+자신감=성공]이다. 물론 성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스스로가 만족한다면 그것이 곧 성공 아니겠는가.

    그렇게 한창 글쓰기에 재미를 붙이던 무렵, 박지성이 히딩크를 만나듯 나는 브런치를 만났다. 조심스럽게 그동안 써온 글의 일부를 브런치에 보내 작가 심사를 요청했다. 그리고 답이 왔다.




    

    



    이때부터였을까. '작가'라는 호칭의 울림이 좋았다. 물론 정말 책을 출간한 작가, 누구나 이름을 아는 작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브런치에서 만큼은 나를 작가라고 불러주었다. 그리고 스스로도 그 호칭에 떳떳할 수 있도록 보다 신경 써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제 내가 그리는 그림은 나 혼자만이 보는 그림이 아니고, 내가 만드는 요리 또한 나 혼자 먹으려고 만드는 요리가 아니었다. 이런 생각으로 그린 그림의 붓 끝은 떨리고 있었지만 그만큼 섬세했고, 이런 생각으로 만드는 요리는 오래 걸렸지만 전보다 깊은 맛이 나기 시작했다.  






2019년, 계약하다

    작은 퍼즐 조각들은 어느덧 하나의 그림이 되어 액자에 걸리더니, 이제는 스포트라이트까지 받아가며 갤러리에 전시되었다. 나 혼자 먹기 위해 만들던 음식들이 어느덧 하나의 요리가 되어 메뉴판에 걸리더니 이제는 단골손님까지 생겼다. 즐거움 뒤에는 책임감이, 뿌듯함 뒤에는 부담감이 뒤따랐지만 이 모든 것들이 좋았다. 처음처럼 글쓰기 자체가 재미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원동력을 얻고나면 추진력은 시간문제다.

    작은 목표도 생기기 시작했다. 바로 브런치 북 응모. 2019년에는 제7회 브런치북 응모가 있을 것이고, 아직 원고를 완성하지 못한 나로서는 빠르면 8회, 늦어도 9회 전에는 한 번쯤 브런치 북에 응모를 해보고 싶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던 중 브런치를 통해 뜻밖의 연락이 왔다. 처음 브런치에 작가 심사를 요청했던 당시는 기다렸던 회신이었기에 반가움이 컸지만, 이번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연락이기에 당혹감이 더 컸다.

  


 

    내용은 어느 정식 출판사의 출간 제의였다. 제안을 받은 당시 내 솔직한 심정은 기쁨이나 설렘이 아닌 당혹감이었다. 생각해 보시라. 학교 운동장에서 공을 갖고 노는 아이에게 어느 날 갑자기 축구 대표팀 감독이 나타나 '축구 선수해볼 생각 없니?'라고 묻는다면 어떤 기분이겠는가. 코인 노래방에서 혼자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더니 엔터테인먼트 대표가 나타나 '가수 데뷔해볼 생각 없니?'라고 묻는다면 어떻겠는가 말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보면 이불킥 각이지만, 이런 일들에 처음에는 누구나 당황하기 마련일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처음 이러한 제안을 받았던 당시는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감히, 건방지게, 제 주제도 모르고 'No!'라고 회신을 보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싫은 게 아니라 두려웠고, 고민과 결정의 기로에 놓인 것이 아닌, 그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그래서 그냥 거절해 버렸다. 멍청한 사람은 뜻밖의 순간에 기회가 찾아 왔을 때, 그것이 기회인지 조차 모르고 놓쳐 버린다. 내가 바로 그 멍청이였다.

    하지만 하늘은 멍청이를 저버리지 않으셨다. 이후 다른 출판사들로부터 몇 차례 더 출간제의를 비롯한 멘토링 등의 제의를 받았고, 보다 진중하게 제안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드디어 모 출판사와 수개월간 이야기를 나눈 끝에 정식으로 단행본 출간 계약을 맺었다.


 




2020년, 꿈을 꾸다

    한국에서 엘사가 떠날 무렵,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겨울왕국도 4월이 되자 어김없이 꽃이 피고 새가 지저귀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밖으로 뛰쳐나가 온몸으로 완연한 봄의 기운을 느끼고 싶지만 녹록지가 않다. 작가를 꿈꾸는 자에게 봄날 꽃놀이는 사치다. 비록 남들처럼 봄을 즐기지는 못하지만, 아쉬운 대로 봄내음이라도 느껴보려고 펜과 종이, 노트북과 각종 충전기까지 한 짐 챙겨 집을 나서본다. 도착한 곳은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어느 작은 카페. 작년부터 그래 왔듯 종종 글을 쓸 때면 이 카페를 찾곤 한다. 원래 아메리카노만 즐겨 마시는데 이 카페는 유독 플랫화이트가 맛이 좋다. 사장님도 어느덧 내 얼굴을 알아보시고는, '오늘도 플랫화이트 한 잔 드릴까요?'라고 인사를 건네고 나 역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로 화답한다.

    출판사에 원고를 넘기기로 한 계약일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가을, 계약 당시만 해도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처음 해보는 퇴고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고치고 또 고쳐도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문장들이 보였고, 완벽하게 퇴고를 마무리했다고 생각하고 다음 날 다시 글을 보면 또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들이 보였다. 그렇게 보고, 쓰고, 지우고, 고치고는 지루한 작업들이 반복됐다.

    취미가 일이 되는 순간, 같은 작업임에도 많은 것들이 변하기 마련이다. 흥미는 점차 떨어지고 책임감이 따라오는가 하면, 가벼움은 사라지고 무거움만이 남는다. 오랜 시간 내겐 취미였던 글쓰기에 있어서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된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이런 부담감이, 이런 중압감이 결코 싫지만은 않다. 프로가 되기 위해서는 시련 또한 즐길 줄 알아야 하는 법! 아직 아마추어지만, 프로가 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여 본다.

    예정대로라면 초여름쯤 내 이름이 새겨진, 아직 제목도 모르는 내가 쓴 글이 서점에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나를 '작가'라는 과분한 호칭으로 부를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내가 쓴 글을 '책'이라는 완성된 이름으로 불러줄 영광스러운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이 곧 올 것이다.

    새싹처럼 돋아난 작은 꿈이 무럭무럭 자라 나무가 되는 날.

    나무에 풍성한 꽃과 열매가 맺혀 또 다시 새로운 꿈을 꾸는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