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이라도 타고
판사님과 저의 뇌를 바꾸고 싶다
2019년 5월, 제주도 조천읍에 위치한 펜션에서 한 남성이 살해당했다. 용의자는 남성의 전처. 그리고 위는 그녀가 재판을 받으며 한 말이다. 남편을 살해한 아내. 여기까지만 보면 요즘 세상에 그리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최초 사건이 공개되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치정 혹은 돈 때문에 발생한 살인 사건 정도로 여겼다.
이미 결론은 나와 있었다. 살인. 그러나 무서운 것은 사건을 역순으로 파헤치며 밝혀지게 된 과정들이었다. 그녀는 여느 범죄인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나 살인사건이 밝혀지기 전 그녀의 행적을 살펴보면, 이번 살인사건은 철저하고 치밀하게 준비된 계획범죄였다. 그녀의 이름은 고유정,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희대의 살인마 중 한 명이다.
고유정은 전 남편을 살해하기 전 약국에서 수면제 중 하나로 알려진 졸피뎀을 구입한다. 이후 인근 마트에서 톱, 표백제, 쓰레기봉투 30장, 캐리어 가방 등을 구입했다. 그녀가 구입한 물건 만으로도 그녀의 계획범죄가 얼마나 끔찍한 형태인지 짐작이 간다. 그녀가 구입한 물건들은 모두 토막살인을 위한 준비물들이었다.
살인죄로 긴급체포하겠습니다.
… 왜요?
고유정을 긴급 체포하며 경찰이 고지한 범죄 사실에 대한 고유정의 답변이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을 꽤 오래 눈여겨보았다. 만약 저 상황에서 나라면 경찰의 긴급체포 고지에 처음으로 어떤 말을 했을까. 일단 "나는 실종된 전 남편의 행방에 대해 모르며, 전 남편이 살해당한 일과 무관하다"라는 전제를 가지고 시작한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경찰의 살인죄 긴급체포 고지에 대한 첫 대답으로 "왜요?"라는 말이 나오기는 힘들다. 이에 대해 권일용 동국대 경찰 사법대학 교수는 매우 흥미로운 분석을 하였다.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을 본다면 아마 거의 손에 꼽을 정도로 고유정의 범행 계획은 치밀하다. 자기가 충분히 증거를 인멸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체포를 당하는 상황이 되면 일시적인 공황상태를 나타낼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이건 공황상태라기보다는 (오히려) ‘왜요?’라고 한다. 이는 ‘시신이 (있는 곳이) 밝혀졌느냐? 증거를 찾았느냐?’라고 물어보는 것"
고유정 사건에 안타까운 진실 있다
세상이 고유정을 욕할 때, 그녀를 감싼 사람들이 있다. 제주에서의 첫 공판에서 그녀의 변호를 맡은 변호인들이다. 그중에서도 남국현 변호사의 변호가 이목을 집중시켰다. 고유정 사건에서 많은 사람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던 이유 중 하나는 그녀가 검색한 키워드 들이다. 누가 보아도 토막 살인 및 시신 유기라는 결론을 뒷받침할만한 키워드임에도 불구하고 남국현 변호사는 이에 대해 전혀 다른 해석을 해 놓았다.
▶ 뼈와 관련된 검색어(뼈 중량, 뼈 강도, 감자탕) - 보신용 음식을 준비하기 위한 검색어
▶ 혈흔 - 두 차례의 유산 경험이 있는 피의자가 면 생리대를 알아보기 위한 검색어
당연한 이야기지만 남국현 변호사는 고유정 못지않은 세상의 질타를 받았다. 변호사라는 직업적 소명의식이 있음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변호사라면 사람을 변호해야지 악마를 변호해서는 안된다"라는 말까지 나왔다. 남국현 변호사는 고유정 사건에는 안타까운 진실이 있다고 했고, 고유정은 진실은 언젠가 밝혀질 것이라고 했다.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오직 두 사람뿐이다. 피의자와 피해자. 그리고 그중 살아있는 사람은 피의자뿐이다. 백 번 양보해서 남국현 변호사만이 우리가 모르는 고유정의 진실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안타까운' 진실이라는 남국현 변호사의 말은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 좀 더 자세히, '안타까운'일과 '진실'을 구분하여 이야기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0. 2. 20. 사건 9개월 만에 1심 공판 결과가 나왔다. 언제나처럼 공판 결과는 국민들의 분노 지수에 부응하지 못했다. 고유정의 전 남편 살해 혐의에 대해서는 무기징역, 이후 전 남편 살해보다 더욱 이목이 집중되었던 의붓아들 살해에 대해서는 무죄가 나왔다. 당연히 항소심에 이어 상고심까지 가서 최종적으로 대법원의 판단까지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대법원의 판단이 '진실'은 아니다. 앞으로 나올 대법원의 판단 또한 실체적 진실에 가장 가깝게 다가간 합리적인 의심으로 도출된 결론일 뿐이다.
고유정은 재판을 받으며 판사에게 "판사님과 제 뇌를 바꾸고 싶어요"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수많은 범죄자들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한 말들 중 가장 영악한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 기술력으로는 상대방의 뇌에 있는 모든 정보를 다 꺼내어 볼 수 없다. 언젠가는 영화처럼 그런 일이 가능한 날이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고유정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불가능한 일이란 것을 알고 있기에, 이 말이야 말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함과 동시에 입증이 불가능한 가장 치밀하고도 완벽한 호소였다는 것을. 마치 그녀가 범죄를 계획할 당시처럼 말이다. 판사와 뇌를 바꾸고 싶다는 고유정에게, 우리도 불가능한 부탁을 해본다. 뇌를 바꿀 것이 아니라, 고유정의 뇌를 전 국민이 들여다볼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길 바란다.
https://news.v.daum.net/v/202002101806255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