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작가 포기, 브런치 작가 복귀
그녀와 헤어진 후 돌아오는 길의 발걸음은, 오히려 그녀와의 이별을 맞이하러 가는 길보다 가벼웠다. 아쉬움, 서운함, 씁쓸함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이야 왜 없었겠냐만은, 그는 결코 자신의 결심을 후회하지 않았다. 물론 그의 결심이 이별 선언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그럴 권리가 없었으니까. 다만 이별의 순간에 그녀를 붙잡지 않았던 것. 그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결심이었고, 그걸 지켜낸 스스로가 대견했다.
그 후에도 모든것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녀와 헤어진지 며칠이 지났다. 여전히 괜찮은걸보면 상처가 아니었음이 분명했다. 사실 괜찮아졌다고 할것도 없었다. 처음부터 다친게 아니었으니까. 그녀를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그에게 있어 그녀와의 만남, 그 자체는 돌이켜보면 독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과 결정은 온전히 그의 뜻이었기에, 누군가를 힐난할 이유도 없었다. 굳이 후회에 대한 벌을 내리자면, 그는 자신 스스로를 벌하고 싶었다. 왜 그리 성급했냐고. 왜 감당 못할 무게를 짊어지고 힘들어했냐고. 그렇게 스스로를 벌하고 난 뒤에는, 다시 스스로를 다독이고 싶어졌다. 괜찮다고. 다 경험이라고.
머리는 맑고 컨디션은 좋았다. 잠도 잘자고 밥도 잘먹었다. 한 마디로 모든게 좋았고, 전보다 더 나았다. 다만 한 가지 그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것이 있었다. 그동안 그와 그녀의 만남을 응원해준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 마음이었다. 가족들 외에 그의 주변 사람들은 그가 그녀와 만나고 있다는 사실 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와 그녀의 관계로부터 먼 곳에 있음에도 누구보다 더 둘의 만남을 축복하고 응원해주던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 대한 죄송스런 마음. 그를 힘들게 하는 건 오직 그뿐이었다.
그녀와 헤어진 그에게는 생각보다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는 그녀와의 만남이 그의 일상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다행히 그 변화들은 긍정적이었다. 적어도 그에게 만큼은.
그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른 일정들을 포기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를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자신을 속일 필요도 없었으며, 부족한 능력으로 그녀의 깊은 뜻을 헤아리고자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었다. 그동안 보고싶었지만 애써 관심없는척 해왔던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을 섭렵하기로 했다. 어느 노래 가사처럼 PC게임의 만렙도 찍고, 밤새 마시고 필름도 끊어보기로 했다.
그는 조금 변해보기로 결심했다. 다양한 계획들을 세워보았지만, 기존에 것들이 변하는 것은 진정한 변화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진정한 변화는 새로운 것들의 창조에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는 그녀와의 이별 후 결심했다. 언제든, 무엇이든, 항상 매순간 도전하며 살아가겠다고. 그렇게 다짐한 그는 어느덧 일상으로 돌아와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변화를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