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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랑이 Apr 17. 2020

이별 그 후

출간 작가 포기, 브런치 작가 복귀

지난 야기

<오늘 헤어졌어요>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그녀와 헤어진 후 돌아오는 길의 발걸음은, 오히려 그녀와의 이별을 맞이하러 가는 길보다 가벼웠다. 아쉬움, 서운함, 씁쓸함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이야 왜 없었겠냐만은, 그는 결코 자신의 결심을 후회하지 않았다. 물론 그의 결심이 이별 선언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그럴 권리가 없었으니까. 다만 이별의 순간에 그녀를 붙잡지 않았던 것. 그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결심이었고, 그걸 지켜낸 스스로가 대견했다.
그 후에도 모든것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출간계약 해지 후 돌아오는 길에 그리 깊은 생각을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적어도 지하철 노선을 헷갈린다거나,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치지 않았으니 말이다. 생각보다 담담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고,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는 법이다. 그동안 겪었던 다양한 경험들은 나를 그렇게 가르쳐왔다. 허나 이번에는 달랐다. 기대컸음에도 실망 없었다. 처음 겪어보는 기대와 실망의 반비례 관계에 대한 경험 조금 낯설게 가올 뿐, 모든것이 생각보다 괜찮았다.








그녀와 헤어진지 며칠이 지났다. 여전히 괜찮은걸보면 상처가 아니었음이 분명했다. 사실 괜찮아졌다고 할것도 없었다. 처음부터 다친게 아니었으니까. 그녀를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그에게 있어 그녀와의 만남, 그 자체는 돌이켜보면 독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과 결정은 온전히 그의 뜻이었기에, 누군가를 힐난할 이유도 없었다. 굳이 후회에 대한 벌을 내리자면, 그는 자신 스스로를 벌하고 싶었다. 왜 그리 성급했냐고. 왜 감당 못할 무게를 짊어지고 힘들어했냐고. 그렇게 스스로를 벌하고 난 뒤에는, 다시 스스로를 다독이고 싶어졌다. 괜찮다고. 다 경험이라고.


    지난 1년을 돌이켜보았다. 적지 않은 시간 출간을 위한 퇴고작업에 집중해왔다. 물론 최선을 다했던것은 아니다. 그럴만큼의 충분한 의지가 없었다. 아니, 분명 시작할 때 있었던 다분한 의지를 어느 즈음엔가 잃고 말았다. 그래도 일상생활에 글쓰는 시간을 위한 나름의 패턴을 만들기도 했었다. 직장생활에 있어서도 책을 출간하기 위해 승진이나 원하는 부서로의 이동도 포기했다. 그러고보면 지난 1년은 출간을 위해 그리 분주하지 못했지언정 나름 분투했던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남은 건 지난 선택의 순간에 경솔했던 나 자신에 대한 약간의 후회와, 1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해 얻 값진 경험이었다.










머리는 맑고 컨디션은 좋았다. 잠도 잘자고 밥도 잘먹었다. 한 마디로 모든게 좋았고, 전보다 더 나았다. 다만 한 가지 그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것이 있었다. 그동안 그와 그녀의 만남을 응원해준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 마음이었다. 가족들 외에 그의 주변 사람들은 그가 그녀와 만나고 있다는 사실 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와 그녀의 관계로부터 먼 곳에 있음에도 누구보다 더 둘의 만남을 축복하고 응원해주던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 대한 죄송스런 마음. 그를 힘들게 하는 건 오직 그뿐이었다.


     다행히 출간계약 해지에 대한 후유증은 없었다. 다만 유일하게 신경쓰이는 점이 있다면, 이 소식을 듣고 나보다 안타까워할 사람들이었다. 가족들은 항상 내 선택과 결정을 존중해주는 편이라 내가 괜찮다행이라고 했다. 주변 친구들이나 직장동료들은 내가 글을 쓴다는 사실 조차 모르기에 별 문제가 없었다. 다만, 내 글을 나 못지않게 '돌봐주는' 사람들, 내 글을 쓰며 가장 많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건 다름아닌 브런치 구독자들이다. 그 중에서도 매번 새로운 글을 올릴 때마다 관심을 갖고 응원해주시는 분들, 특히 이전에 만든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 계신 소중하고 든든한 구독자분들. 그분들께 출판계약 해지에 대한 소식을 전하기가 가장 힘들었다. 그리고 그 소식을 전한 후인 지금도 그분들께 가장 죄송스 마음이다.








그녀와 헤어진 그에게는 생각보다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는 그녀와의 만남이 그의 일상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다행히 그 변화들은 긍정적이었다. 적어도 그에게 만큼은.

그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른 일정들을 포기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를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자신을 속일 필요도 없었으며, 부족한 능력으로 그녀의 깊은 뜻을 헤아리고자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었다. 그동안 보고싶었지만 애써 관심없는척 해왔던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을 섭렵하기로 했다. 어느 노래 가사처럼 PC게임의 만렙도 찍고, 밤새 마시고 필름도 끊어보기로 했다.

그는 조금 변해보기로 결심했다. 다양한 계획들을 세워보았지만, 기존에 것들이 변하는 것은 진정한 변화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진정한 변화는 새로운 것들의 창조에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는 그녀와의 이별 후 결심했다. 언제든, 무엇이든, 항상 매순간 도전하며 살아가겠다고. 그렇게 다짐한 그는 어느덧 일상으로 돌아와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변화를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출간 계약이 해지되고 며칠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다양한 변화들이 있었다. 생활면의 일부가 그러했고, 생각면에서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한편으로는 변화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복귀였다.


    더 이상 스스로 정해놓은 시간에 카페에 가지 않아도 됐다. 물론 앞으로 글을 쓰지 않겠다거나, 글을 쓸때 카페에 가지 않는다는 뜻아니다. 그러니 행여라도 내가 가는 단골 카페 사장님이 이 글을 보시더라도 속상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어쩌면 이전보다 더 많이 가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어쨋든 강박적으로 글을 쓰지 아도 됐다. 이는 비단 시간적인 부분, 즉 마감에 대한 압박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글을 쓰고싶을 때, 쓰고싶은 글을 마음 껏 쓸 수 있다는 것. 이 당연한 사치가 이상하리만치 호화스게 느껴졌다. 말도 안되는 비유겠지만, 은퇴한 박지성이 조기축구회에 나갈때 혹 은퇴한 김연아가 잠실역 아이스링크장에 놀러갈 때 이런 기분일까? 방금 이 해괴한 문장마저도 타이핑을 하는 순간 누구의 눈치도 안보고 내 멋대로, 내 맘대로 글을 '써갈길' 수 있다는 해방감에 짜릿 마저 느꼈다.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도전들을 해볼 생각이다. 글로써 놀아보고자 하는 의욕은 수능 끝난 고3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주제없이 일상생활에 관해 주절주절 일기처럼 쓰는 글, 삶과 글의 인사이트를 키우기 위한 글, 모아두면 피가되고 살이될 각종 정보에 관한 글, 자다 깨서 몽롱한 상태로 끄적이는 글까지. 내가 쓰는 글 하나하나가 다시 오지않을 순간기록이라 여기며 글을 쓸 것이다. 그렇게 써내려간 생각의 기록들은 언젠가 생기록이 될것이다.


출간 작가의 꿈은 잠시 접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행복한 브런치 작가로의 복귀.

새로운 변화를 꿈꾸며,

그토록 그리워하던 일상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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