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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초케 Apr 05. 2023

영화,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한 따뜻한 상상력

<좋은 영화>에 대한 생각정리

 영화를 만든다는 건 머릿속에 존재하는 실체 없는 단어와 문장들을 이미지로 만드는 일이다. 사실 영화 속 상상력은 관객의 것이 아니다. 시작부터 감독과 작가의 상상력이다. 이 상상력은 처음부터 이미지로 존재하지 않는다. 감독과 작가는 실체 없이 떠다니는 생각들을 이미지 속 이야기로 녹여 관객들과 이야기의 창작자가 소통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든다. 영화는 창작자의 상상의 세계와 관객들의 상상의 세계를 연결해 준다. 영화로 완성된 감독의 상상은 관객의 세계에서 재해석되기도 하고 다른 형태의 창작물로 재탄생되기도 한다.



<혁오 - 공드리> 뮤직 비디오


 예를 들면 혁오 밴드의 공드리라는 노래는 미셸 공드리 감독의 이터널 선샤인을 보고 만들어진 곡이다. 뮤직 비디오 또한 영화 속 이미지와 닮아있는 설원이 배경이다. 이터널 선샤인이라는 영화는 오혁이라는 인물에 의해 재해석이 되고 그러한 재해석은 음악의 형태로 확장되어 재탄생했다. 사실 이건 반대의 형태로도 성립이 될 수 있고 음악과 영화뿐만 아니라 예술이라는 행위에서 전방위적으로 이러한 확장성에 대한 가능성은 가질 수 있다. 이러한 가능성은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희망이다. 예술은 하나의 꽃을 가지고 사랑을 담을 수도 절망을 담을 수도 있게 한다. 이 꽃은 사랑의 언어와 절망의 언어가 소통하게 하고 두 세계가 공존하게 한다는 점에서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술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물리적인 공간에서의 언어와 우리 무의식의 공간에서의 언어, 이 두 가지 장벽을 한꺼번에 허물어 버린다. 어떤 방식의 예술이든 예술은 서로 다른 상상의 세계를 소통하게 한다.



 하지만 이런 가능성은 실체가 없다. ‘좋다’라는 감정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좋다는 건 개인적인 영역이다. 그래서 어떤 영화가 좋은지에 대해 말하기 앞서 ‘영화가 왜 좋은데?’에 대해 먼저 말해야 할 것 같다. 일상생활에서 나에게 좋은 영화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사람이면 분명히 영화를 엄청 좋아하던가 나를 엄청 좋아하던가 둘 중 하나일 것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인 감정이 집단의 감정이 되고 어떤 특정 집단의 감정이 좀 더 보편적인 감정이 될 때 우리가 흔히 말하는 보편적인 좋다는 개념이 된다. 좋은 영화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혹은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과 내가 영화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는지 말하면서 형성이 된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도 그들이 영화를 왜 좋아하는지, 영화를 어떻게 좋아하는지, 그래서 그들에게 영화가 어떤 의미인지를 전달하기 위해 영화를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실체 없는 단어와 문장들은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다닌다. 나 또한 이렇게 실체가 없는 생각들이 항상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고 있다. 영화는 이런 실체 없는 생각들을 이미지로 풀어낼 수 있게 해 준다. 감독들의 상상력이 이미지가 되고 그 이미지가 내 실체 없는 상상 속 세계에 이미지로서 영감을 준다. 일상을 살아가는 데는 이렇게 실체 없는 세계를 이미지화시켜줄 영감이 필요하다. 상상의 세계를 확장하지 못하면 사람은 성장할 수 없다. 성장이 멈춘 인간은 무기력하다. 20살 초반,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고 느끼던 시절 나의 머릿속은 스스로 세운 벽 때문에 더 이상 아무것도 상상할 수 없는 상태였다. 집 밖을 나서는 내 모습도 상상할 수가 없었다. 생각이 벽에 갇히자 움직임도 방 안에 갇히는 느낌이 들었다. 영화는 내 생각 속에 있는 벽을 깨주며 내가 다시 살아갈 영감을 얻게 만들어 주었다. 이때부터 영화를 조금씩 좋아하면서 내 생각들을 영화를 통해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렇듯 나에게 영화는 일상을 살아가는 영감을 계속해서 제공해 주는 존재이다. 이 영감은 앞서 말한 것처럼 내일을 상상하게 하는 상상력이다. 마이크 임팩트라는 강연에서 가수 타블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드라마 보는 것, 영화를 보는 것, 게임을 하는 것에 대해서 하고 싶으면 다 하라고 말한다. 내일을 기다려지게 하는 요소가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인생에서 꼭 필요한 요소라는 점을 언급하며 그런 말을 했다. 이 말에 굉장히 큰 공감을 한다. 우리 모두는 연료로써 일상을 살아가는 영감을 필요로 한다. 사회에서 젊은 세대들이 겪는 많은 문제들은 그들의 상상력이 억압되는 것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더 나은 삶을 상상할 수 없고, 자신이 성장하는 모습, 무엇보다 기다려지는 내일을 상상할 수 없는 사회가 된 것 같다.



 내가 살아온 시대를 되돌아볼 때 조언을 구하거나 한 가지 주제를 놓고 깊게 대화를 할만한 어른이 생각보다 많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영화들이 꾸준히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동진 평론가의 말을 인용하자면 좋은 영화는 좋은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영화는 교훈을 주거나 메세지를 주는 역할도 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문제를 제시하고 넌 어때?라고 물어보는 입장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창작자는 자신이 그 자리에 없어도 작품으로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깊이감이 담기지 않은 작품들은 크게 티가 나는 것 같기도 하다. 깊이감은 주제의 무거움이나 사건의 심각함에서 오지 않는다. 오히려 진리의 영역은 훨씬 가볍고 쉬운 출발점에 있으니까 말이다. 좋은 대화를 마친 후에는 그 대화에 대해서 계속 곱씹게 된다. 좋은 영화는 영화가 끝난 후에도 머릿속에 남아 내 삶과 맞닿아 있는 문제들을 계속해서 생각해보게 한다. 좋은 영화를 통해 나에게 남게 된 온기는 아주 오랫동안 내 삶에 영향을 미친다.



              <JR철도의 지면광고> - "모험이 부족하면 좋은 어른이 될 수 없어"


 일본 JR 철도의 광고 카피 중에 ‘모험이 부족하면 좋은 어른이 될 수 없어’라는 카피가 있다. 이 광고에서 모험은 집 밖으로 나와서 JR 철도를 이용하라는 의미지만 나에게는 상상력의 영역으로도 이해가 됐다. 좋은 어른을 만드는 건 좋은 상상력이다. 좋은 어른은 상대방의 좋은 모습이나 좋아질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상상을 확장하는 행위는 생각 속 모험이나 세상을 모험하는 일 모두에 해당이 된다. 영화는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를 모험하게 한다. 대화해보지 않은 사람과 대화할 수 있게 한다. 많은 경험과 많은 모험을 통해 인간은 더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된다. 인간의 상상은 소통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게 하고 그로 인해서 사고의 확장이 가속화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영화는 좋은 상상력을 제공해 준다. 그게 절망의 영역을 상상하게 하더라도 상상의 세계는 그 안에서 절망에 대해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하도록 만든다. 보통 우리는 안에 내재된 절망을 알아차리지도 못한 채 절망감에 잠식당할 때가 많아서 이 문제를 본질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영화는 언제나 무의식의 영역과 의식의 영역을 함께 다룬다. 상상이 없이는 의식에 영역에 있는 자아가 무의식의 세계를 들여다보지 못한다. 상상력은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허물어 버리고 그 둘 사이의 교집합을 만들어 내는 힘이다.


하마구치 류스케 <드라이브 마이카> 마지막 장면


 나는 개인적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 모두는 일상을 이어나갈 영감과 상상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상상력은 절망의 상황에서도 온기를 느낄 수 있게 한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슬픔을 행복이 담기는 그릇으로 표현한 것처럼 상상력은 우리에게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연료로 더 큰 깨달음과 기쁨을 가져다준다. 드라이브 마이카의 마지막 장면에서 유나와 가후쿠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세상에는 극복해야 할 문제가 너무 많다. 우리는 그 모든 문제들을 극복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그 모든 걸 안고 가면서도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모두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절망과 희망은 항상 손을 잡고 있다. 이루어질 확률이 희박한 문제들을, 다시 말해 희망을 붙잡고 사는 것은 사실 절망에 가깝다. 그렇지만 절망과 손을 잡고 있는 희망을 외면해서도 안된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은 핀다. 사실 희망은 절망의 한가운데 있다. 절망 가운데 피어있는 희망은 더욱더 빛나고 아름답다. 이러한 희망들이 영화로 표현될 수 있다면 사람들은 절망 속에서도 온기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좋은 어른들이 만들어 내는 따뜻한 상상력이 세상에 널리 퍼져 나갔으면 좋겠다. 아주 힘들고 고된 상황 속에서도 사람들이 더 좋은 인생들을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상상이 부족하면 좋은 어른은 될 수 없다. 기분 좋은 상상이 서로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다정함과 온기를 베풀 수 있도록 좋은 영화가 세상에 많이 나오길 기대하고 기다려본다.


다니엘 콴, 다니엘 쉐이너트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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