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의미를 묻다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일본의 영화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2013년도 작품입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 영화를 비롯해 최근 <걸어도 걸어도>, <바닷마을 다이어리> 등 훌륭한 작품들이 국내에서도 개봉되어 한국에서도 점점 명성이 알려지고 있는 뛰어난 일본 감독입니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가지고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족의 문제를 섬세하게 묘사하여 인생의 가치에 대해서 성찰하는 좋은 작품을 계속해서 발표하고 있습니다. 제가 최근에 가장 좋아하게 된 감독 중 한 명입니다.
이 영화의 큰 플롯은 '출생의 비밀' 이라고 흔히 불리우는 신생아 뒤바뀜 사건과 그 사건을 겪은 두 가정이 아픔을 치유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 쪽 가정은 료타(후쿠야마 마사하루) 가족으로 그는 큰 건설회사에서 성공한 직장인입니다. 료타는 아내 미도리(오노 미치코) 그리고 다섯 살 아들 케이타(니노미야 케이타)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바로 이 케이타가 출산 당시 병원에서 같은 날 태어난 유다이(릴리 프랭크) 가족의 아들 류세이와 뒤바뀌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됩니다. 한편 유다이는 도쿄 외곽의 군마현에서 전파상을 하는 평범한 중년 가장으로 사회적인 성공과 거리가 멀고 교양이 있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한 마디로 료타와는 전혀 다른 부류의 시골 사람입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한국의 아침 드라마에서 흔히 다뤄지는 출생의 비밀 소재에 사회적 신분이 크게 차이가 나는 두 가정이라는 배경까지 등장하기 때문에 흔하디 흔한 아침드라마 형 영화가 될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런 흔한 소재를 자신만의 시선을 가지고 따뜻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로 만들어 냈습니다.
영화의 시작은 료타 가족의 이야기를 먼저 들려줍니다. 료타는 항상 바쁘게 일해왔고 아내 미도리는 이번 일만 끝나면 휴가 가자는 남편의 말에도 시큰둥 별로 기대를 안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연습해도 늘지 않는 케이티의 피아노 실력에 료타는 부끄러움과 분노를 느끼지만 케이티는 피아노에 전혀 흥미가 없음에도 "아빠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피아노를 계속합니다. 겉으론 완벽히 행복한 가정으로 보이지만 이 가족은 서로의 사이에 좁혀지지 않는 평행선을 유지하며 달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병원에서 연락을 받고 아이가 뒤바뀐 것을 알게되어 병원의 중재로 만나게 되는 료타 가족과 유다이 가족은 처음부터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아줍니다. 첫 날부터 약속 시간에 늦고, 한눈에 보기에도 교양이 없어 보이는 유다이를 보고 료타는 내심 유다이 가족을 무시하는 마음을 갖게 되고 "둘다 키워보는 건 어떤가"라는 직장 상사의 조언에 솔깃하여 이 문제를 돈으로 쉽게 해결하기 위해 변호사와 상의를 할 정도로 자기 중심적이고 비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또 자신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에 집중하는 동안 아이가 바뀐 것을 알아채지 못한 엄마 미도리는 자책감에 괴로워하는데도 료타는 자기 자신의 감정과 문제 해결 외에는 관심이 없는 듯 보입니다. 반면 유다이는 세속적인 욕심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몸으로 뒹굴면서 함께 놀아주고 케이타나 료타의 아내 미도리와도 쉽게 친해지는 친화력을 보여줍니다.
두 가족이 만나 시간을 보내는 도중 '아이와 함께 놀아주라'는 유다이의 말에 시간이 많지 않다며 '직장에서 나 아니면 처리할 수 없는 일이 많다'며 은근한 디스와 변명을 시전하는 료타에게 유다이는 어쩌면 이 영화의 핵심 메시지이기도 한, 뼈있는 한 마디를 던지게 됩니다:
"아버지라는 일도 다른 사람이 대신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영화속에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할 때 직접적으로 메인 캐릭터의 입을 빌지 않고 유사한 상황의 주변 캐릭터를 배치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해서 관객들이 영화의 핵심 주제를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는 방식을 종종 보여줍니다. 이 영화에서는 료타 가족이 겪는 갈등과 가족의 의미에 대한 질문이 핵심 문제라면 이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답안을 유다이 가족의 모습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이 그런 한 예이고 료타와는 피가 섞이지 않은 새엄마의 존재가 또 다른 한 예입니다. 료타의 친부는 노골적으로 "피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케타이 대신 친자인 류세이를 데려와서 키우고 케타이와는 인연을 끊으라고 말하는 전통적 가족관을 대표하는 상징으로서의 캐릭터입니다. 반면 새엄마는 "나는 너희를 키우면서 진짜 내 아들들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하며 가족을 이어주는 진정한 가치는 함께한 시간이라는 이야기를 해줍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료타가 당면한 선택의 문제 자체의 본질을, 료타의 친부와 새엄마라는 주변 캐릭터에 투영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료타가 직면한 비극적 상황을 좀 더 덜 비극적인 측면의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볼 것을 관객에게 주문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5년 간 키운 정과 혈연 중 하나를 선택하여 아이를 바꾸는 특이한 문제를 새엄마와 양아들 이라는 보편적 문제와 답안 사례를 제시하면서 감독은 관객에게 이렇게 묻고 있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복잡해 보이지만 조금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의외로 답은 쉬울 수 있지 않을까요" 라고 말이죠.
결국 료타와 유다이 가족은 고민끝에 두 아이를 맞바꾸기로 결정하게 됩니다. 가족들의 마지막 나들이에서 료타와 케이타가 개울가에서 나누는 대사가 유난히 기억에 남습니다:
"유다이 아저씨도 케이티를 사랑한데..."
"아빠보다 더?"
아이들에겐 서로 사랑하는 가족들이 헤어져야만 하는 더 큰 이유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그리고 케이티의 말은 질문인 동시에 자기가 아빠를 정말 사랑한다는 슬픈 고백으로도 들립니다.
영화 속에서 두 가족은 큰 아픔을 오롯이 겪어 내는 동안 크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특히 이 사건으로 가장 상처를 입게될 아이들의 모습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듯한' 모습이어서 영화 보는 내내 마음이 아팠습니다. 결국 케이타가 떠난 후 아들이 나름대로 준비한 '이별 연습의 흔적'을 발견한 료타는 결국 오열하고 마는데 아마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본 관객 대다수가 그 장면에서 함께 눈물을 흘렸을 거 같습니다. 사진기의 프레임에 아빠를 담는 동안 케이티의 마음이 어땠을지... 감히 짐작하기도 어렵습니다.
"유다이 아저씨도 케이티를 사랑한데..."
"아빠보다 더?"
결국 료타가 다시 케이타를 찾으러 가는 길. 고속도로 옆 높은 고압선 사이의 전선들이 기찻길처럼 나란히 하늘을 가로지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차가 달리는 동안 이 전선들은 점점 가까와지더니 교차하고 다시 벌어지기도 하는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 장면을 통해 평행선처럼 가까와지지 못했던 료타 가족들의 마음이 결국 하나로 만나게 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유다이 집으로 케이타를 다시 찾아온 료타를 피해 달아나는 케이타를 료타가 계속해서 따라가다가 두 갈래 길에서 서로 나란히 걷는 모습을 통해 하늘을 가로지었던 전선처럼 아직은 만나지 못한 두 사람의 거리를 보여줍니다. 한참을 그렇게 걷다가 마침내 한 곳에서 만난 료타와 케이티는 서로의 소중함을 확인하고 말없이 서로를 품에 안아줍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두 가족이 결국 어떤 결론에 이르게 되었는지 끝내 영화에서 보여주지 않습니다. 다만 관객은 아픔을 겪는 동안 성장한 료타의 모습을 통해 이 두 가족이 모두 최선의 결론을 내렸을 것을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가족을 이루는 요소 중 가장 중요한 사랑은 '피'가 아니라 '함께한 시간'이 만든 것 아니겠느냐고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좋은 영화란 답을 주는 영화가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서도 우리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별점: ★★★★☆
한줄평: 세상에 영화가 있음을 감사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