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함은 덜어내고 재치를 더해야 할 때
음악가 : 이효리
음반명 : BLACK
발매일 : 2017.07.08.
수록곡
1. Seoul (Feat. Killagramz)
2. Black
3. White snake (Feat. Los)
4. Unknown track (Feat. Absint)
5. Love me (Feat. Killagramz)
6. 비야내려
7. Mute
8. 예쁘다
9. 변하지않는건 (Feat. Los)
10. 다이아몬드 (With 이적)
11. Seoul (Inst.)
12. Black (Inst.)
전작 <MONOCHROME>은 여러모로 분수령이라고 할 만한 작품이었다. 가수로서의 경력에 크나큰 오점을 남긴 (비록 고의는 아니었지만) 표절 사기사건 이후 가수 이효리가 다시금 대중 앞에 설 수 있는가를 판가름할 기회였기 때문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차트 1위뿐 아니라 평단의 호평까지 이끌어 낸 것이다. 리얼 세션과 함께 블루스, 펑크(Funk), 컨트리 등의 장르 문법을 적절히 버무려 사운드의 지반을 닦아놓은 덕에 가창력이 아쉬움을 남겼을지언정 장해 요소로 작용하지는 않았다. 그간 대중에게 엔터테이너로 각인되었던 이효리가 한 사람의 아티스트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4년의 세월이 지나, 이효리는 또다시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왔다. 전작의 흥겨움은 뒤로 하고 트립합의 음울함을 빌어 검은 장막을 두른 모습은 엔터테이너로서의 이효리와도, 아티스트로서의 이효리와도 명확히 구분되는 지점에 있다. 둔탁한 베이스가 이끌어가는 "Seoul (Feat. Killagramz)"에서는 아픈 기억이 아로새겨진 서울이라는 공간을 떠올린다. 그런가 하면 동명의 타이틀곡 "Black"에서는 '검은 머리, 검은 눈을 하고 검은 피가 흐르는' 화자를 당당히 내세우며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치장했던 '셀러브리티 이효리'와의 결별을 선언한다.
이토록 명확한 주제 의식에도 불구하고 음반에 집중하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꾸준히 지적됐던 가창력 문제이다. 완충제와도 같았던 리얼 세션이 전자음으로 대체되면서 특유의 비음 섞인 목소리가 더욱 도드라지고 말았다.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White snake (Feat. Los)"에서는 어지러운 신스 사운드와 섞여 곡의 집중도를 흐리고 있으며, 킬라그램과 함께 한 "Seoul"과 "Love me"는 하이톤 래핑과 맞물리면서 전체적인 사운드를 지지해 줄 저음역대가 부족하다는 인상이다. 그나마 "Unknown track (Feat. Absint)"이 적절한 기용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완화시킨 경우다.
여기에 중반부에서부터 이어지는 발라드 넘버의 연속은 보컬을 곡의 중심에 놓음으로써 앨범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데 일조한다. 어린 날 얻게 된 명성, 제주도에서의 삶 등 개인적 경험에서 얻은 깨달음을 전하고자 함은 알겠다. 이를 위해 보컬이라는 매개가 필요했다는 사실도 알겠다. 하지만 깨달음이란 미간에 잔뜩 힘을 준다고 해서 전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재치와 유머 또한 효과적인 메시지의 전달 수단이며, 전작 <MONOCHROME>은 그 증명이었다. 그런데도 굳이 이런 길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BLACK>에는 청자가 납득할 만한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