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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저나무 Oct 27. 2017

그레고리 포터│Nat King Cole & Me

노래꾼, 뿌리를 찾아서.

Gregory Porter│Nat King Cole & Me│Blue Note, 2017.


'부친탐색담'이라는 것이 있다. 아들이 멀리 있는 아버지를 찾아 나서는 여정이 중심이 되는 서사구조로, 고구려 동명성왕과 유리왕, 그리스 신화 속 오디세우스와 아들 텔레마코스 이야기 등 세계 서사문학의 핵심 모티프로 자리해 왔다. 아버지 찾기에 대한 관심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영화 <스타워즈>,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가 보여준 현대적 변용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이토록 오랜 시간 아버지 찾기가 지속된 까닭은 무엇일까? 가족 구성원 부재라는 표면적 이유를 넘어서, 주인공의 존립 근거를 확고히 하기 위함이다. 아버지는 무조건적인 사랑의 증여자인 동시에 '뿌리'로서 그 자리에 존재한다. 그리고 성장하여 아버지를 넘어서는 순간, 비로소 자식은 온전한 '나'로서 설 수 있다.


여기, 푸근한 풍채를 하고 미소를 띤 한 남성이 있다. 손에 쥔 것은 냇 킹 콜(Nat King Cole)의 57년작 <After Midnight>. 제목 그대로 '냇 킹 콜과 함께 있는' 그는 위대한 음악가의 유산으로 음반을 가득 채운다. 단순한 헌정의 뜻이 아니다. 타인의 이름을 빌려 왔음에도 불구하고 본작은 그레고리 포터라는 음악가의 뿌리 깊숙이 다가가고 있다. 부친의 부재 속에서 또 다른 아버지가 되어준 음악 영웅이 있기 때문이다. 뿌리 찾기의 여정이 지금 시작되려 한다.


Gregory Porter - Smile

풍성한 오케스트라 선율이 "Mona Lisa"의 시작을 알리고 그레고리 포터의 두터운 저음이 살포시 고막을 감싼다. 그러나 목소리와 오케스트라는 앞다투어 존재감을 뽐내기보다 호흡을 함께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곡의 흐름을 따라간다. 목소리와 악기, 두 선율이 하나 되는 순간이다. 이어지는 "Smile" 은 이러한 경향을 가져가면서도 은연 중에 재즈의 흔적을 남긴다. 보컬과 오케스트라가 곡 전반을 힘 있게 견인하는 와중에, 드럼의 브러시 음색과 자유로운 피아노 리듬이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존재감을 드러낸다.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Nature Boy"를 지나자 재즈의 색채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사랑(Love)이라는 단어의 철자를 활용한 위트 있는 노랫말이 인상적인 "L-O-V-E"다. 피아노, 건반, 드럼, 색소폰으로 구성된 콰르텟이 호흡을 주고받으며 2분이라는 시간을 밀도 있게 채운다. 이후로도 음반은 재즈 밴드와 오케스트라 사이의 적절한 긴장을 통해 다채로움을 더한다. "Quizas, Quizas, Quizas"는 이국적 향취를 더하고, "Pick Yourself Up"은 앞선 "L-O-V-E"에 이어 다시금 흥겨움을 고취시킨다. 그런가 하면 한 편의 뮤지컬과도 같은 "Miss Otis Regrets"는 어떤가. 오케스트라가 뿜어내는 강력한 에너지와 감미로운 목소리가 극적 대비를 이룬다. 과거 그레고리 포터가 음반과 동명의 뮤지컬을 상연한 경험이 있다는 점을 떠올리면 더욱 흥미로운 부분이다.


2013년 작품 <Liquid Spirit> 수록곡이었던 “When Love Was King"은 유일한 자작곡이란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곡이 전하는 메시지를 중요시했던 냇 킹 콜에게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 밝힌 본 곡은 사랑의 감정을 의인화하여 그 위대함을 찬미한다. 곡이 진행됨에 따라 감정은 점차 고조되는데, 재즈 밴드 구성에 오케스트라가 가세하며 이러한 양상은 더욱 선명해진다. 한편 "I Wonder Who My Daddy Is"는 아버지 찾기란 주제에 있어서 주목해야 할 핵심 트랙이다. 폭발적인 오케스트라 연주나 유려한 재즈 밴드 대신 건반의 안내를 받아 차분히 진행되는 곡이 청자로 하여금 노랫말에 집중하게끔 한다. '내 아버지가 누구일까 생각해요.' 그는 끊임없이 되뇐다.


귀가 즐거운 음반임에는 틀림없지만, 본작이 갖는 의미는 비단 그 뿐만이 아니다.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 걸어가는 아들의 여정은 곧 새 시대에 대한 긍정이다. 조부 세대의 유산이 부모 세대로, 부모 세대의 유산이 자식 세대로 이어지는 연쇄 속에서 우리가 발돋움할 토양은 나날이 단단해질 것이다. 세대와 세대가 반목하는 세태, 음악으로 신구(新舊)가 교감하는 또 다른 방식을 <Nat King Cole & Me>가 보여주었다.


음악가: Gregory Porter(그레고리 포터)

음반명: Nat King Cole & Me

발매일: 2017.10.27.

수록곡

1. Mona Lisa

2. Smile

3. Nature Boy

4. L-O-V-E

5. Quizas, Quizas, Quizas

6. Miss Otis Regrets

7. Pick Yourself Up

8. When Love Was King

9. The Lonely One

10. Ballerina

11. I Wonder Who My Daddy Is

12. The Christmas 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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