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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저나무 Sep 02. 2016

이기 팝│Post Pop Depression

이해의 범주 바깥에 있는 소리

Iggy Pop - American Valhalla | #PostPopDepression


음악가 : Iggy Pop(이기 팝)
음반명 : Post Pop Depression
발매일 : 2016.03.18.
수록곡
1. Break Into Your Heart
2. Gardenia
3. American Valhalla
4. In The Lobby
5. Sunday
6. Vulture
7. German Days
8. Chocolate Drops
9. Paraguay




 논리와 이성이 지배하는 세상을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우리는 이해의 범주 바깥에 있는 것들을 마주할 때가 있다. 신, 악마 혹은 주술 등의 것들.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믿음이 이해의 범주 바깥에 있는 것들을 받아들이기 위한 일종의 전략이라고 한다면, 이번만큼은 나도 그 전략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이기 팝(Iggy Pop)의 17번째 음반이 바로 그 ‘범주 바깥에 있는’ 음반이기 때문이다.

 음반을 지배하는 정서는 제목 그대로 우울(Depression)하다. 하지만 우울이 발현되는 방식은 각기 다르다. 반복되는 리프로 주술적 분위기를 조성하거나(‘Break Into Your Heart’), 때로는 넘실대는 그루브를 뽐내기도 한다(‘German Days’). 그런가 하면 ‘Sunday’의 관현악 구성, ‘Paraguay’ 후반부의 공격적인 곡 전개 등 청자의 예측을 깨부수는 발칙한 매력을 가진 곡 또한 존재한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음반의 백미는 ‘American Valhalla’와 ‘Vulture’, 두 곡이다. 전자에서는 절묘한 스타카토로 존재감을 과시하는 건반음, 공간감을 잔뜩 머금은 보컬이 곡에 매력이 아닌 마력(魔力)을 부여하는 듯 하다. ‘Vulture’는 반대로 보컬의 공간감을 배제한 채 목소리 본연의 힘을 강조하고 있다. 묵직한 저음에서부터 절규에 가까운 고음까지 오르내리는 보컬이 박진감 넘치는 어쿠스틱 기타 리프와 만들어내는 시너지가 일품이다.

 음반 전체를 놓고 봤을 때 감탄하게 되는 부분은 음의 효율적인 사용이다. 9개의 수록곡 중에서 어떤 곡에서도 음의 낭비를 찾아볼 수가 없다. 실력 뽐내기 식의 뜬금 없는 속주, 홍보 문구로 쓰기 딱 좋은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음표 하나하나가 음반 내에서 자신의 역할에만 충실하고 있다.

 그렇다고 악기가 묻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단순한 리프로도 이기 팝의 카리스마 그득한 보컬과 힘의 균형을 맞출 수 있었던 것은 리프 자체의 완성도 뿐 아니라 뛰어난 사운드 메이킹에서 비롯된 것일 터. 프로듀서를 맡은 조쉬 옴므의 역량이 두드러지는 부분이다.

 칠순을 바라보는 노장의 창조물은 동 시대의 어떤 음반과 비교하더라도 록의 본질을 가장 날카롭게 건드리고 있다. 질주하는 드럼, 화려한 기타, 샤우팅 보컬 따위로 대표되는 기존 문법(사실 이런 걸 누가 정한 적도 없을텐데)을 가볍게 무시한 음반은 에너지를 가득 머금고 있다. ‘삘’이 아닌 기술이 음악을 만들어 가는 세태를 비웃기라도 하듯, 노장은 소리를 토해낸다.

4.5/5.0


※이 글은 아무개 뮤직(www.amugaemusic.com)에 게재되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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