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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말 Apr 13. 2024

세차 혹은 디테일링

새차와 세차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

 올해 3월은 유난히도 봄비가 많이 내렸다. 일주일에 꼭 한 두 번은 비 소식이 있어, 세차할 타이밍을 잡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비가 오기 전에 세차는 하는 것이 맞는지, 비가 그친 후에 세차를 하는 것이 맞는지사람들마다 생각이 다르다. 누군가는 비를 맞으면 다시 더러워지는데 왜 굳이 비 오기 전에 세차를 하느냐고 할 테지만 또 누군가는 더러운 차가 비를 맞으면 그 흙먼지가 다 어디로 가겠냐고 하는 사람도 있다. 나의 경우는 후자에 속하지만 그럼에도 세차를 하고 비를 맞으면 아까운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아무튼 이런저런 핑계 세차를 미룬 지 한 달이 훨씬 지났다. 나에게 한 달이라는 시간은 말하자면 타인의 시선에서는 그럭저럭 깨끗해 보이지만 나의 시선에서는 꽤나 더러워 보이는 경계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디테일링을 일부 포함해서 세차를 하면 보통 2시간은 걸린다. 디테일링이라는 것은 예를 들자면 아버지 구두에 묻어 있는 흙을 털어내는 것이 세차이고 구두약을 묻혀서 광을 내는 것이 디테일링이다. 거기에 추가하자면 물광이니 불광이니 하는 것을 곁들이는 사람을 환자라고 부른다. 환자의 영역은 제쳐두고라도 이 디테일링이라는 것은 사람의 성향에 따라 취미가 되기도 하고 못할 짓이 되기도 한다. 나의 경우에는 감사하게도 첫 차를 새 차(新車)로 구입했기 때문에 디테일링으로서의 세차(洗車)를 배울 수 있었다.  아마 중고차를 샀다면 주유소 한쪽 구석에 있는 기계세차라는 터널을 지나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은 세차장에서 당연하게 개인용품을 사용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셀프세차장에서는 개인용품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곳이 많았다. 그 영향으로 개인용품을 사용할 수 있는 세차장을 찾아서 유하는 세차인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었다. 그런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세차장을 운영하는 주인들은, 지금은 디테일러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고객으로 둘 수가 있었다. 디테일러의 특징을 설명하자면 각자가 자기만의 세차 프로세스 내지는 사이클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차 도장면에 상처가 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최소한 2회의 고압수를 사용한다. 페클(페인트 클렌저를 사용해서 도장면의 묵은 때나 오래된 왁스를 벗겨내는 작업)이라는 공정이 추가되면 3회의 고압수를 사용하기도 한다. 게다가 세차장 업주들을 가장 기쁘게 만들었던 사실은 디테일러들의 세차주기가 일반 세차장의 고객들에 비해 굉장히 짧다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디테일러들에게 세차가 가지는 의미(일종의 취미생활)를 이해한 소수의 사람들만이 세차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고 디테일러들을 위한 세차장은 개러지라는 형태로 지금도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다.


 물론 디테일링이라는 것도 시간적 그리고 체력적 여유가 될 때의 이야기다. 나 역시 첫 째 아이가 생기면서

세차를 하지 않게 됐다. 아이는 잔고장은 없지만 방지턱을 남을 때마다 요란한 소리를 내는 나의 첫 번째 자동차처럼 잔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자라주었다. 제 할 일을 알아서 잘해주는 덕분에 이제는 평일에도 주말에도 시간이 많이 남는다. 최근에 사고로 차를 바꾸기도 했고 새 차를 보니 예전에 땀으로 티셔츠를 흠뻑 적셔가면서 왁스를 칠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어느새 세차용품을 장바구니에 담고 있었다. 다음 달의 나에게 미안함을 느끼면서.


 세차에는 정답이 없다. 차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세차 프로세스는 달라진다. 차를 이동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차를 닦고 광을 낼 이유가 전혀 없다. 3분 동안 자동세차기를 통과하면 그뿐이다. 흔히들 차에 광을 내고 멋을 내는 사람들을 과시하기 좋아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의외로 세차장에서 만나보는 디테일러들은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할 뿐이다.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자기만족 내지는 자기 수련이다. 이 자기만족이라는 것은 먼지 한 톨 없는 차 안에서 행복감을 느끼거나 차 지붕에 비치는 파란 하늘을 감상하거나 비 오는 날이 반가워지는 것을 말한다. 자기 수련이라고 하면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세차를 하면 일단 생각이 멈춘다. 그리고 쉬지 않고 몸은 움직인다. 머리는 편안해지는 반면, 몸은 혹사되는데 이것은 평일의 생활리듬과 정반대의 것이라 그런지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


 한 달에 한 번은 집사람이 타는 경차를 세차하기도 한다. 얼마 전 아침에는 한적하게 차에 광이라도 낼 생각으로 아침 일찍 세차장을 찾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디테일링 모임이 있었는지 고급 외제차들이 부스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전혀 주눅이 들지 않는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차 프로세스가 달라질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집사람이 운전하는 경차는 범퍼와 휠 여기저기에 긁힌 흔적이 있다. 이런 차는 아무리 닦고 광을 내도 새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평소처럼 물기를 꼼꼼하게 제거하고 아스팔트에서 튄 타르를 닦아주고 도장면과 휠에 코팅제를 뿌려서 광택을 낸다. 진회색 빛을 띠는 타이어에도 구두약을 바르듯이 드레싱제를 꼼꼼하게 발라준다. 깨끗한 차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양 사이드에 벤츠가 있어도 상관없다.


 뭐 한다고 세차에 두세 시간을 낭비하냐고 묻는 사람에게 딱히 이것을 설명할 방법은 없다. 우리는 다 다르니까. '그러게요 하다 보니까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네요' 하고 웃어넘길 뿐이다. 그러고 보면 이 세상에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들은 대체로 비효율적이다. 반대 방향에 사는 여자친구를 굳이 데려다주겠다고 하는 것과 새로 생긴 맛집에 굳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이 그렇다. 한정판 아이템을 사기 위해 새벽 일찍 일어나는 것이나 시장에 널린 물고기를 잡으러 굳이 야심한 시각에 집을 나서는 것이 그렇다. 작은 승용차에 짐을 한가득 싣고서 편안한 집을 뒤로한 채 캠핑을 떠나는 것이나 모두시간에 굳이 이렇게 자판을 두들기고 있는 것이 그렇다. 굳이 하는 것이기에 행복이 있는 거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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