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푸드의 대명사 ‘햄버거’가 얼마 전부터 수제버거를 내세우면서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건강한 재료를 엄선하여 매장에서 직접 만드는 수제버거는 이제 ‘패스트’라는 수식어를 내려놓고 ‘슬로우 푸드’로 진화하고 있는데요. 최근에는 맛과 영양뿐만 아니라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까지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햄버거의 거침없는 행보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패스트푸드’로 손꼽히는 햄버거만큼 한국과 잘 어울리는 음식이 또 있을까요. 비약적인 속도로 발전한 경제 강국 한국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바쁜 편이죠. 학생들은 하교 후 학원에 가기 전 틈새 시간 동안 햄버거로 식사를 대신하고, 야근에 치이는 회사원은 사무실 책상에 앉아 포장해 온 햄버거를 먹으면서 일을 하곤 합니다. 빠르게 주문하면, 빠르게 만들어져 나오고, 빠르게 포장해갈 수 있으니 바쁜 나라에서 이보다 더 환영받는 메뉴가 있을까 싶습니다.
햄버거를 주문하면 알록달록한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정형화된 공식에 따라 번, 채소, 패티, 각종 재료를 착착 얹어줍니다. 이미 다 만들어져있는 재료를 순서에 맞게 조립만 하여 바스락 거리는 비닐 포장지에 담겨 나온 이 햄버거가 어릴 때는 얼마나 맛있었던 지요.
항상 바쁜 한국 사회에서 새로운 트렌드가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건강을 우선으로 챙기고 몸에 좋은 음식을 먹는 ‘웰빙’ 바람이 불어온 것입니다. 그리고 이 흐름은 버거 시장에도 큰 변화를 일으킵니다.
햄버거에 들어가는 재료 하나하나를 그 자리에서 직접 만드는 ‘수제 버거’가 등장하는데요.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들어낸 패티 대신에 직접 구운 수제 패티, 수제 번을 사용하여 기존의 맛과 품질에서 그 차이가 확연히 달라집니다. 한 손으로 햄버거를 들고 간편하게 먹었던 예전의 모습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커다란 접시에 산처럼 높은 수제 버거가 올려져 나오고 포크와 나이프를 이용해 한 입씩 잘라 먹는 낯선 풍경이 연출됩니다.
햄버거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호 역시 다양해졌습니다. 손맛을 입힌 햄버거에서 더 나아가 들어가는 식재료 또한 엄선된 고품질만을 추구하는 소비자가 늘어났습니다. 이에 건강한 유기농 재료만을 사용하는 ‘프리미엄 수제 버거’까지 등장합니다.
초창기에는 개인이 운영하는 몇몇 식당에서만 상대적으로 비싼 값을 주고 수제 버거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소비자들은 천편일률적인 음식에서 벗어나 브랜드 고유 독자성을 띈 ‘수제 음식’에 반응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작은 사치, 가치 소비, 프리미엄으로 대변되는 수제 음식에 호기심을 드러낸거죠. 이런 소비 흐름에 수많은 외식 업계 역시 너나 할 것 없이 수제 버거 시장에 뛰어들게 됩니다. ‘퀄리티 중심의 소비 문화’를 추구하는 요즘 젊은층의 니즈를 정확하게 만족시키면서 수제 버거 시장은 빠르게 성장해왔습니다.
더 이상 햄버거는 시간이 부족할 때 먹는 ‘식사 대용 음식’이 아닙니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찾아가는 특색 있는 메뉴이자 각 브랜드 고유의 레시피에 따라 쉐프가 시간을 들여 만드는 하나의 요리로 진화했습니다. ‘패스트 푸드’가 아닌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 ‘슬로우 푸드’로 완벽히 정착한 셈입니다.
이제 햄버거는 맛과 건강뿐만 아니라 개인의 기호를 반영하는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햄버거도 건강할 수 있다는 슬로건을 내세운 ‘쉐이크 쉑(SHAKE SHACK) 버거’는 항생제와 호르몬제를 사용하지 않은 ‘앵거스 비프’등의 최상급 식재료만을 엄선하여 만든 수제 버거입니다. ‘쉐이크 쉑 버거’의 또 다른 특징은 감성적인 매장 인테리어로 경험적 가치까지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각 지점별로 지역별 정체성이 담긴 인테리어를 세심하게 구성하며, 친환경 그린 인테리어를 통해 도심 속의 휴식 공간을 제공한다는 브랜드 철칙을 고수하고 있죠. 손님들은 가게에 들어서는 순간 하나의 새로운 경험을 소비하게 됩니다.
가치 소비를 중시하면서 고급 식재료에 대한 선호가 높아진 이들은 SNS에서 대란인 맛집이라면 한 번쯤 방문해보고 싶은 욕구가 생깁니다. 여기에 감각적인 프리미엄 버거집이라면 더 설명이 필요 없는 거죠. 손님들은 이런 특색 있는 인테리어, 최신 전선에서 유행을 이끄는 수제 버거, 트렌디한 맛집을 찾은 자신을 사진으로 남기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햄버거는 이제 맛, 영양, 정성은 물론이고 스타일까지 꾹꾹 눌러 담아 소비자에게 다가가고 있습니다.
어릴때 먹던 추억의 햄버거에서부터 시작하여 웰빙 트렌드를 반영한 수제 버거, 그 후에는 라이프 스타일까지 반영된 개성 있는 프리미엄 버거까지. 햄버거는 참으로 바쁜 진화 과정을 거쳐 왔는데요, 이런 급변하는 과정조차도 패스트 푸드의 속성인 ‘빠름’이 반영되어 더욱 재미있습니다. 앞으로의 햄버거는 또 어떤 모습으로 진화해서 우리에게 다가올지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 본 칼럼은 SPC매거진에 정기 연재하는 5월호 칼럼으로, 전문은 아래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