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 / 이주현의 맛있는 계절] 아몬드 플로랑탱

플로랑탱1.jpg 사진 = 이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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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청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하늘 사랑>에 격월로 푸드 칼럼을 연재합니다. <이주현의 맛있는 계절>이라는 타이틀 아래 계쩔과 날씨에 관련된 음식 이야기를 소개하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 푸드 칼럼니스트 이주현


2023. May vol.503
< Weather talk / 맛있는 계절 >

"깜깜한 밤에 황금빛으로 구워내는
<아몬드 플로랑탱> "

- 푸드 칼럼니스트 이주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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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현의 맛있는 계절 ]

깜깜한 밤에 황금빛으로 구워내는

<아몬드 플로랑탱>



어떤 계절은 향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그 계절에만 맡을 수 있는 향은 시간이 지나도 쉬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이 맘 때의 밤공기는 더욱 특별하다. 따듯한 봄기운에 차가운 밤의 온도가 더해지면, 포근함 속에서 적당히 서늘한 공기를 느낄 수 있다. 여기에 진하게 퍼지는 라일락 향기와 사람들의 움직임이 잦아든 적막함이 뒤섞이면 나는 속수무책으로 센티한 기분에 빠지게 된다. 이 계절 하얀 나비처럼 살랑살랑 찾아오는 현상, 봄을 타게 되는 것이다.


피어나는 아지랑이 마냥 산란한 마음을 다독이고자 이 계절에 특별한 향을 섞어본다. 부드러운 크림과 달콤한 꿀이 지글지글 끓으면서 내는 깊고 그윽한 향. 봄의 밤공기와 섞이면 더할 나위 없이 근사한 계절의 축복을 맞이할 수 있는 향이다.


어두운 밤 홀로 부엌에 조용히 들어간다. 추웠던 겨울을 마지막으로 오랜 시간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던 베이킹 재료들을 하나 둘 씩 꺼내본다. 개인적으로 밤에 하는 베이킹은 어렵고 복잡한 레시피 보다는 쉽고 간단한 것을 선호한다. 이미 잠든 식구들을 깨우지 않기 위함도 있지만, 하루의 끝자락에 행하는 요리가 즐거움보다는 고된 노동으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베이킹에 필요한 재료를 하나 둘 씩 꺼내다보니 중요한 것을 놓쳤음을 깨닫는다. 이 깜깜한 밤에 나와 함께 동행해줄 소중한 친구, 라디오를 깜빡했다. 서둘러 선반 위에 놓인 미니 라디오의 주파수를 맞춰본다. 들릴 듯 말 듯 나지막하게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자칫 외로울 수 있는 이 밤을 다정한 고독함으로 채워준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다. 본격적으로 이 계절의 향에 취하는 나만의 시간으로 몰입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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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시간 베이킹을 할 때면 즐겨 만드는 메뉴가 있다. ‘플로랑탱 아망드 (Florentine Amande)’이다. 줄여서 ‘플로랑탱’이라고 부르는 이 디저트는 아몬드가 서로 뒤엉켜 진한 황금빛으로 반짝인다. 근사한 외관만큼 고급스러운 맛도 일품이다. ‘플로랑탱’이란 이름은 이탈리아의 도시 ‘피렌체’를 뜻한다. 피렌체 메디치가의 딸 카트린이 프랑스의 앙리2세와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 프랑스로 가져간 과자가 플로랑탱이다. 이후로 프랑스 전역에 널리 퍼지게 되어 프랑스 전통 과자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는데, 사실 원조를 따지면 이탈리아가 먼저인 셈이다.


전통적인 레시피는 밀가루로 반죽한 생지 위에 아몬드와 꿀을 올려 구워낸 것이다. 하지만 요리란 만드는 사람과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형할 수 있는 법. 나는 밀가루 생지 대신에 바게트를 사용하여 쉬운 버전으로 만들곤 한다. 냉동실에 오랫동안 보관하여 처치 곤란한 바게트가 있다면 이만큼 화려하게 변신시켜줄 레시피도 없다.


가장 먼저 냄비에 꿀과 생크림을 넣고 약불에서 졸여준다. 달콤한 꿀과 부드러운 생크림이 부글부글 끓으면 정말 깊고 달콤한 향이 난다. 단순히 달콤하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 라일락이 내는 향이 상큼하고 어여쁜 달콤함이라면, 가열한 꿀과 크림이 내는 향은 그윽하고 진한 달콤함이다. 쉬이 맡아본 적 없는 향이라 더욱 특별하다. 여기에 아몬드 슬라이스를 붓고 천천히 저어주면, 이 계절과 날씨가 마치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느껴진다. 나비처럼 하늘거리며 날아다니던 마음이, 일렁이는 아지랑이처럼 산란했던 마음이 꿀의 중후하고 달콤한 향속에서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바게트 위에 아몬드를 얹어낸 플로랑탱이 오븐에 들어가기 전 모든 준비를 마쳤다. 지금은 창백하고 초라하지만, 굽고 나면 황금빛의 왕관을 씌운 것처럼 당당하고 품위 있어질 것이다. 오븐 안에서 노릇하게 구워지는 플로랑탱을 기다리며 잠시 생각에 잠겨본다. 영어로 ‘동행자’를 뜻하는 ‘companion' 이라는 단어가 있다. 라틴어로 풀이하면, ‘함께’를 뜻하는 ‘com'과 ‘빵’을 의미하는 ‘panion'이 합쳐져 ’함께 빵을 먹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소중한 동행자와 나눠먹는 음식이 다른 것도 아닌 빵이라니. 그렇다면 오븐 속에서 구워지고 있는 저 작은 디저트 역시 결혼을 위해 멀고도 낯선 길을 떠나며 마음이 어수선했을 트린느 드 메디치의 곁에서 든든하게 동행해주었으리라. 그리고 시공간을 뛰어 넘어 이 계절을 맞은 나의 일상에도 소중한 동행자가 되어주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나의 생각을 듣기라도 한 것일까, 이 간단한 디저트는 정말 놀랍도록 깊고 풍부한 맛으로 보답해준다. 바삭한 바게트와 꾸덕한 아몬드 식감이 동시에 느껴지면서 입 속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린다. 꿀과 생크림이 주는 농후한 달콤함이 까만 밤보다 더 짙은 농도로 행복을 선사한다. 프랑스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빵만 있다면 대개의 슬픔은 견딜 수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빵을 반죽할 때의 자유로움, 빵이 구워지기를 기다리는 동안의 설렘, 보드랍고 따스한 빵을 손에 들고 있을 때의 포근함이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기 때문이 아닐까. 나 역시 슬픔까지는 아니었지만, 봄바람에 일렁이는 이 마음을 따스하고 달콤하게 다독여준 나의 작은 디저트에게 고마움을 표해본다. / 푸드 칼럼니스트 이주현



*recipe : 쉬운 버전의 ‘아몬드 플로랑탱’ (바게트 5~6개 분량)

아몬드 슬라이스 50g, 생크림 50ml, 꿀50g, 바게트, 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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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꿀과 생크림을 냄비에 넣고 잘 섞는다.

2. 약불에서 전체 양이 1/2이 될 때까지 졸인다.

3. 아몬드 슬라이스를 넣고 잘 섞어준다.

4. 버터를 바른 바게트 위에 3을 적정량 얹어준 뒤에 150도로 예열한 오븐에서 15분간 굽는다.




* 칼럼 전문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상청 - 자료실 - 기상간행물 - 2023년 5월호 하늘사랑 pdf 다운로드)

https://www.kma.go.kr/kma/archive/pub.jsp?field1=grp&text1=skylove#gal_cate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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