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직원공제회 전문가 칼럼 시리즈로
매달 <이주현의 푸드레터>를 연재합니다.
5월 주제는 "할매니얼 푸드"입니다.
즐겁게 읽어주세요 :)
- 푸드 칼럼니스트 이주현 -
“멈출 생각이 없는 거센 레트로 열풍”
패션은 돌고 돈다는 말이 있는데, 먹거리 그 유행이 역시 돌고 도는 것 같다. 최근 SNS에서 ‘할미’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무려 4만 개가 넘는 게시물이 나온다. 그 뒤를 이어 ‘할미룩’은 1만 개의 게시물이, ‘할미입맛’은 5천 개가 넘는 해시태그가 올라와 있다. 패션업계는 물론 다양한 산업 분야 곳곳에서 할머니와 관련된 정겨운 용어들이 자연스럽게 사용된다. 일명 ‘할머니 감성’이 일상 속으로 스며든 지 오래다. 지금 대한민국은 ‘할매니얼’ 매력에 흠뻑 빠져 있다.
할머니’와 ‘밀레니얼’ 세대를 합쳐서 만든 신조어 ‘할매니얼’은 젊은 세대에 스며든 어르신 감성이나 트렌드를 의미한다. 복고 열풍으로 볼 수 있는데, 옛 전통문화를 감각적으로 재해석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전통 식재료로 만든 ‘할매니얼 음식’은 유행을 넘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약과, 떡, 식혜 등 과거에 할머니 집에서 보았을 법한 음식들이 젊은 층에서는 낯설고 새로운 음식으로 호기심을 자아낸다. 유명한 약과 맛집에서 영업시간 전에 대기하는 ‘오픈런’을 SNS에 자랑스럽게 인증하며, 아이돌 콘서트 티케팅보다 더 어려운 ‘약케팅(약과와 티케팅을 합친 신조어)’은 이제 하나의 미션처럼 여긴다. 이러한 거센 레트로 열풍에 외식업계는 전통 먹거리를 재해석한 신제품 출시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야말로 대한민국 전체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것처럼 전통 음식에 열광하고 있다. 젊은 층 사이에서 옛 것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현상은 단순히 취향이 반영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서 그것도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이 문화 트렌드에는 분명 그 이상의 것이 숨어 있다. 과연 이 유쾌하고 반가운 열풍 중심에는 무엇이 존재하는가.
“레트로 열풍의 중심에는 OO이 있다?!”
1. 지친 마음을 위로하는 따듯한 추억
코로나 사태로 인해 오랜 시간 몸과 마음이 지친 사람들은 따듯하게 위로받고 싶다. 그렇기에 자극적인 문화 요소보다는 감성을 적셔주는 편안한 것을 찾곤 한다. 그중 하나가 익숙한 옛 추억이 아닐까. 특히 엄격한 거리 두기로 인하여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진 몇 년 동안 우리는 고립감에 외로워하기도 하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소통을 갈망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추억의 옛 음식을 통하여 기성세대는 같은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과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젊은 층은 기성세대와 문화적 교류를 넘어 보이지 않은 끈끈한 정까지 공유하는 것이 아닐까.
2. 건강에 대한 높아진 관심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사람들이 건강에 더욱 관심을 쏟으면서 전통 먹거리에 대한 수요도 덩달아 증가했다. 요즘 웰빙 세대는 어르신들이 즐겨 먹었던 전통 음식이 맛은 물론이거니와 건강까지 챙길 수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알 수 없는 화학첨가물로 범벅이 된 간식보다는 곡물, 과일 등 원재료로 만든 전통 음식에 더욱 손길이 간다. 게다가 떡, 누룽지 같은 전통 음식은 구수한 맛은 물론 든든한 포만감까지 챙길 수 있어 식사 대용으로 먹는 사람도 많다. 자극적이지 않은 전통의 맛을 찾는 2030세대 덕분에 복고 간식의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3. MZ세대의 새로운 놀이 문화
이 거센 레트로 열풍이 지속 가능한 이유는 그 무엇보다도 옛 전통을 고리타분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들의 놀이 문화에 끼어준 MZ세대의 열린 마음이 가장 큰 요인이 아닐까. 지금 대한민국은 ‘뉴트로(Newtro)' 매력에 푹 빠져 있다. ‘뉴트로’는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로, 기존의 복고 문화를 새롭게 재해석하여 즐기는 트렌드이다. 옛 것을 오히려 ‘힙’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새로운 색깔로 재해석하는 뉴트로 문화가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무장하여 곳곳에서 튀어나오고 있다. 할머니가 좋아할 만한 취향에 젊은 층의 감성을 한 스푼 더한 ‘할매니얼’ 트렌드 역시 MZ세대의 놀이 문화 안에서 앞으로도 활발하고 거센 흐름을 이어갈 것이다.
“MZ세대 입맛을 사로잡은 할매니얼 음식”
얼마 전까지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매운맛 트렌드를 지나 MZ세대의 관심사는 다음 장으로 넘어온 모양이다. 이제는 고소한 옛 전통 음식이 타겟이다. 대표적인 할매니얼 음식으로는 앞에서 언급한 약과를 비롯해 떡, 흑임자, 누룽지, 꽈배기 등을 들 수 있다. 대체로 고소한 맛과 꾸덕한 식감이 특징이다. 재미를 소비하는 요즘 젊은 층에게 이러한 전통 음식은 신선하고 기발한 식재료로 인식된다. 특히 할매니얼 음식은 한국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이색적인 느낌을 주면서 한 번 맛보면 계속 생각나는 묘한 중독성을 자랑한다. 이런 특징들이 기존에 많이 접했던 서양식 식재료와 차별성을 갖기에 충분하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전통 음식에 열광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할매니얼 음식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면 단연 ‘흑임자’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흑임자는 예로부터 건강과 장수를 상징하는 식품으로 여겨졌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은은하고 고소한 맛 덕분에 떡이나 죽에 많은 사용되는 식재료이다. 흑임자는 마치 연탄가루처럼 진한 검은색을 띠는데, 음식 세계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이 독특한 색깔이 고소한 풍미와 만나면서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흑임자 라떼, 흑임자 케이크 등 흔치 않은 색깔의 흑임자 디저트는 여러 음식 중에서도 단연 그 존재감이 돋보이며 오랫동안 할매니얼 음식의 대표주자로 사랑받고 있다.
‘쑥’ 역시 할매니얼 음식에서 빠질 수 없는 식재료다. 쌉싸름한 맛과 진한 향의 쑥은 호불호가 강하게 나뉘는 음식이다. 하지만 쑥 라떼처럼 부드러운 우유와 함께 하거나, 쑥 마카롱처럼 달콤한 맛을 섞으면 그 무엇으로도 대체 불가능한 독특하고 깊은 맛으로 재탄생한다. 과거에 비슷한 식재료로 녹차를 사용한 디저트가 인기였다면, 이제 쑥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분위기다.
이 밖에도 ‘떡’, ‘약과’ 등은 그 자체만으로도 인기가 좋지만, 최근에는 서양식 디저트와 본격적으로 섞은 퓨전 음식으로 재탄생되고 있다. ‘인절미’와 ‘케이크’, ‘약과’와 ‘타르트’ 등 기존에 따로 먹는 것이 더 익숙했던 음식들이 경계선 없이 자유롭게 뒤섞이며 창의적인 메뉴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를 보면 전통음식을 얼마나 감각적으로 재해석하느냐가 뉴트로 열풍의 핵심인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전통음식 그 자체로도 충분히 우수하지만, 새로운 세대에서 향유할 수 있는 문화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동시에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전통 음식에 의외의 트렌디한 요소가 조합될수록 젊은 층은 열광한다. 맛뿐만 아니라 플레이팅이나 포장지에도 복고 느낌은 살리되 현대적인 감각을 섞어야 비로소 MZ세대가 열광하는 할매니얼 음식이 완성된다.
“식문화의 확장으로 이어지는 할매니얼 열풍”
결국 식문화의 레트로 열풍 중심에는 ‘할매니얼 음식’이 존재한다. 이 정다운 음식은 주로 구수한 맛과 쫀득한 식감을 내며, 이색적이고 묘한 중독성을 자랑한다. 또한 대부분 이 땅에서 나고 자란 건강한 재료로 만드는 저자극 음식이므로, 코로나 사태 이후로 더욱 각광받고 있는 웰빙 트렌드와도 잘 부합한다. 추억을 상기시키기에 감성적이지만 여기에 치밀하고 날카로운 문화적인 재해석도 빠질 수 없다. 전통문화와 현대 문화가 동시에 공존하며, 옛 것과 새 것이 한곳에 뒤섞여 있다.
그리고 이 즐거운 문화 현상의 중심에는 MZ세대가 존재한다. 이들은 계속해서 이전 세대와의 활발한 교류를 토대로 새로운 식문화 영역을 확장시켜 갈 것이다. 이 레트로 열풍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빛보다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요즘 세상에서 옛 문화의 가치를 재고시킬 수 있는 점이 아닐까. 서양 문화가 더 익숙한 젊은 층이 가장 즐거운 방법으로 옛 문화를 접하고 지킬 수 있는 것 같아 흐뭇하기만 하다. ‘옛 것이 좋은 것’이라는 말도 있는데 여기에 MZ세대의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더해지니 앞으로 얼마나 더 좋아질지 상상만으로도 벌써 즐거워진다. 앞으로도 복고 열풍이 이끌고 올 더욱 기발하고 유쾌한 문화 현상을 할매니얼 푸드처럼 구수하고 정다운 마음으로 기대해 본다. / 푸드 칼럼니스트 이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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