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식탁] 마음의 정을 나누는 음식, 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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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금고 월간 매거진의 <인문학 식탁> 코너에
칼럼을 정기 연재하고 있습니다.

음식 속에 문학을 녹여내어 맛 뿐만 아니라
더욱 풍성하고 깊은 의미까지 담고자 합니다.

5월호 음식 주제는 '떡'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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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학 식탁. 5월 >


마음의 정을 나누는 음식 ‘떡’


‘디저트 먹을 배는 따로 있다’는 요즘 유행어 이전에 ‘밥 배 따로 있고, 떡 배 따로 있다’는 속담이 먼저 있었다. 아무리 시대가 흘렀어도 여전히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경우’는 늘 일어난다. 밥심으로 살아가는 한국인에게 ‘밥 위에 떡’이라는 속담이 있는 것을 보면, 그만큼 떡이 특별한 별식으로 여겨진 것을 알 수 있다. 예로부터 전해져오는 떡과 관련된 속담이 190개가 넘는다고 한다. 우리 민족에게 ‘떡’이란 음식은 과연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늘 함께 했던 음식

떡은 우리 민족에게 그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다. 한 사람이 일생동안 거치는 각종 의례와 행사 때마다 주변 사람들과 함께 나눠 먹는 신성한 음식이었다. 관혼상제를 비롯하여 주요 절기와 명절, 고사, 이사 등 특별한 날마다 꼭 떡을 만들어 주변 사람들과 함께 먹었다. 한국인에게 떡이란 맛과 영양을 포함한 기능성뿐만 아니라, 문화적이고 종교적인 의미까지 담고 있다.


우리의 대표 명절인 설날에 먹는 ‘떡국’을 살펴보자. 기다란 가래떡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라는 염원을 담고 있으며, 긴 가래떡을 동전 모양으로 썰어 만든 떡국은 풍요로운 재산을 상징한다. 추석에 먹는 동그란 ‘송편’은 달을 본 따서 만들었다. 반달이 점점 차올라 둥근달이 되듯이 풍요로운 명절이 되기를 기원했다.

아기가 태어난지 100일이 되는 날 받는 백일상에는 눈처럼 하얀 ‘백설기’가 올라온다. 흰쌀(멥쌀)가루로 만든 백설기는 순결하고 신성한 의미를 지닌다. 아이가 이 하얀 백설기처럼 순수하고 병치레 없이 자라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이와 반대로 ‘팥 수수경단’이나 ‘시루떡’은 나쁜 기운을 없애는 용도로 먹는다. 팥은 귀신과 액을 쫓고 복을 불러들이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혼례날에는 봉치떡, 이바지떡, 고임떡으로 넉넉하게 축하를 더하며, 많은 사람들과 좋은 일을 함께 나눴다.


떡을 나누어 먹는 것은 곧 정을 나눈다는 의미이다. 알면 알수록 참으로 정다운 문화이다.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하는 우리 문화에서 떡은 화합의 매개체로 그 역할을 다해왔다. 작은 콩 한 알도 나눠먹으며 끈끈한 정을 중요시 하는 한국인만의 독특한 감성덕분이 아닐까.


희로애락을 품은 작지만 큰 음식

가정의 달 5월을 맞이하여 1926년 방정환 선생님이 쓴 어린이 동화 <설떡 · 술떡>을 소개한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가난한 칠욱은 술을 좋아한다. 하지만 술을 사마실 형편이 안 되니 그의 아내가 술지게미로 만든 떡(재강떡)을 만들어 먹인다. 얼큰하게 취한 칠욱이 친구와 만났는데, 그 친구는 돈이 없어 술 대신에 재강떡으로 취한 칠욱을 잔뜩 비웃는다. 이에 칠욱은 창피를 만회하고자 술을 마셨다는 거짓말을 단단히 준비하고서 다시 친구를 찾아간다. “그래 술을 또 얼마나 마셨나?” 하고 친구가 물으니 “아홉 개나 먹었다네” 하고 재강떡을 세는 단위로 대답하는 바람에 또 창피를 당한다. 다음날 다시 심기일전하고 찾아온 칠욱. “오늘은 무얼 먹고 취했나?” 친구가 모른척 하며 묻는다. “그야 술이지!” 자신만만하게 칠욱이 답한다. “얼마나 마셨는가?” 물으니 “한 동이나 마셨다네” 하며 준비한 답을 읊는다. 마지막으로 친구가 “그래, 찬 술을 마셨나, 더운 술을 마셨나?” 하고 물으니 칠욱이 쩔쩔 매다가 “화로에 석쇠 놓고 구워 먹었지” 라고 답하여 결국 재강떡으로 취했다는 사실이 또 들통나 버린다.


단순하고 어수룩한 칠욱이 겪은 우스운 이야기이다. 하지만 마지막에 석쇠에 놓고 구워먹었다는 답에서는 단순함 속에 우직함과 정직함이 느껴진다. 이처럼 떡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우리 곁에서 울고 웃으며 함께 했다. 말랑하고 포슬포슬해 보이는 떡 안에는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이 겪어온 희로애락의 감정이 다 담겨 있는 셈이다. 어찌 인생이 마냥 행복하고 축하할 일만 있을 수 있을까. 그러나 기왕이면 좋은 일로 이웃과 떡을 나눠먹는 일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 푸드 칼럼니스트 이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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