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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 자체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명란젓 감자 샐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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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점점 편해지는데 마음은 반대로 불편해질 때가 종종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온갖 흥미로운 것들이 내가 살고 있는 세상 속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가봐야 할 곳, 알아야 할 것, 해봐야 할 것들로 넘쳐나서 가만히 있는 마음을 콕콕 찌른다. 제 딴에는 부지런히 세상 속도에 맞춰 달려가려해도 늘 쫓기는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유독 그 허덕임에 지치는 날, 마음이 들쭉날쭉 뾰족해질 때, 따듯하면서 부드럽게 위로가 되는 음식이 있다. 바로 ‘명란젓 감자 샐러드’이다.



진귀하고 새로운 맛의 식재료가 넘쳐 나는 가운데, 감자란 얼마나 소박하고 정다운 식재료인가. 내가 알고 있는 모양, 색감, 맛의 감자가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겉껍질에 묻은 흙은 흐르는 물에 뽀득뽀득 씻어내면 개수대 위로 흙탕물이 되어 흘러내린다. 그러다가 이내 깨끗한 수돗물만 감자를 타고 흐른다. 바로 그 때, 단단한 감자는 무엇이든 될 준비가 되었다고 말한다.





깨끗하게 세척한 감자는 젓가락으로 찌르면 푹 들어갈 때까지 뜨거운 물에서 삶는다. 다 쪄낸 감자는 한 김을 식혀도, 흐늘흐늘 거리는 얇은 껍질을 벗길 때는 여전히 뜨겁다. 감자에 닿는 손가락이 찌릿하고 뜨거운 기운에 경쾌한 피아노곡을 연주하는 것처럼 통통 튄다.



갓 쪄낸 감자는 조금만 힘을 줘도 부드럽게 으깨진다. 약간만 힘을 주어 짓누르면 맥없이 와르르 무너지는 연약한 감자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개나리처럼 선명한 노랑색은 아니지만 그 온화한 감자의 밝은 노란색이 시선을 주기에 부담이 없다. 어쩐지 마음이 푸근하게 놓이는 기분이다.



여기에 짭잘한 명란젓과 소금에 절인 오이를 넣어 잘 섞어주면 ‘명란젓 감자 샐러드’가 뚝딱 완성된다. 이 감자 샐러드는 갓 만들어낸 따끈한 상태로, 상온에서 식혀 조금 미지근한 상태로, 냉장고에 넣어 차갑게 식혀 먹어도 다 맛있다. 온도마다 느껴지는 미세한 맛의 차이가 별미다.





부드러운 명란젓 감자 샐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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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요한 재료

감자2~3개, 명란 2개, 오이1/2개, 소금 반 꼬집,

* 감자 양념(선택) : 버터 1TS, 마요네즈1 TS, 플레인 요거트 2TS, 소금



■ 만드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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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로로 길게 자른 오이는 속을 파내서 반달 모양으로 얇게 썬다.

소금에 5~10분간 절인 후 물기를 꼭 짜낸다.


2. 명란은 껍질을 벗기고 속을 파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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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감자를 삶아 뜨거운 상태일 때 으깨서 한 김 식힌다.


4. 소금 및 감자 양념을 하여 오이와 명란젓을 넣고 섞어 완성한다.






마음이 날카로운 조각이 되어 여기저기 흩어져 있을 땐, 지나치게 맵거나 느끼한 음식 보다는 담백한 음식을 먹는 것이 도움이 된다. 처음에는 자극적인 음식에 길들여진 입맛이 심심한 감자 맛을 잘 느끼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이내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느껴야만 맛볼 수 있는 감자의 속도에 온 몸의 감각이 맞춰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천천히 비워가는 한 그릇 뒤에는 몸도 마음도 조금은 둥글둥글해진다. 눈이 돌아갈 만큼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지만, 역시 감자처럼 그 존재만으로도 의미 있는 것들은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 역시 감자처럼 부드럽지만 온화한 기운으로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도 삶의 중심을 지키겠노라고 다시 한 번 다짐한다. (요리, 사진, 글 = 이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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