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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식탁]여름 별미 '냉면'에 담긴 문화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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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금고 월간 매거진의 <인문학 식탁> 코너에
칼럼을 정기 연재하고 있습니다.

음식 속에 문학을 녹여내어 맛 뿐만 아니라
더욱 풍성하고 깊은 의미까지 담고자 합니다.

8월호 음식 주제는 '냉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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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식탁>

/ 푸드 칼럼니스트 이주현

여름 별미 '냉면'에 담긴 다양한 문화 관점

국경을 넘나들며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바로 음식이 아닐까. 다양한 나라에서 불고기, 비빔밥, 치킨 등 한국의 음식에 뜨거운 관심과 호평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생소함을 보이는 한국 음식도 당연히 존재하니, 그 중 하나가 ‘냉면’이라고 한다. 우리에겐 여름이면 빼놓을 수 없는 국민 면 요리를 두고 지구 반대편 문화에선 어떤 반응을 보일까.


우리 식문화의 결정체, 냉면

한국인에게 냉면은 여름이 돌아오면 필수로 먹어야 하는 음식이다. 그릇째 입에 대고 시원한 육수를 꿀꺽꿀꺽 넘기면 목구멍 저 아래로 무더위가 싹 씻겨 내려가는 그 느낌.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맛보았을 것이다. 그만큼 냉면은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며 비교적 호불호가 적은 국민 음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차가운 면 요리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외국인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외국인에게 면요리라 하면 따듯하게 먹는 파스타, 뜨거운 라멘 등 온도가 높은 요리들이 익숙할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면을 차갑게 만들고, 거기에 살얼음까지 동동 띄운 육수를 벌컥벌컥 마시는 냉면은 놀라움을 넘어 충격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특히 유럽 식문화에서는 살얼음이 들어간 음식은 아이스크림을 제외하면 거의 전무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차가운 콩국수나 냉면을 즐겨 먹는 한국 식문화가 지구 반대편의 문화에서는 신기한 현상으로 다가온 것이 아닐까. 같은 음식을 두고도 각 나라의 문화에 따라 이렇게 상반된 반응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 그저 신기할 뿐이다.


시대 변천사를 반영한 평양냉면

최근 냉면 중에서도 단연코 화제가 되는 것은 ‘평양냉면’이다. 특히 2030세대에서 이 슴슴하고 밋밋한 맛의 냉면에 뜨거운 관심을 보이고 있다. SNS에서는 평양냉면 ‘맛집 도장깨기’와 ‘완냉샷(냉면을 다 먹은 그릇 사진)’이 쏟아지듯이 업로드 되고 있다. 한 번 맛보는 것으로는 그 심오한 세계를 이해할 수 없어 여러 번 도전하는 사람, 자극적이지 않은 육수가 오히려 중독적인 매력을 지녔다는 사람들로 평양냉면의 세계는 무한대로 확장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자칭 평양냉면 마니아들은 일종의 자부심까지 갖고 있다.


하지만 최근 이런 평양냉면 마니아들에게 일종의 문화적 충격을 준 사건이 있었다. 바로 정상회담을 통해 드러난 진짜 북한의 평양냉면이다. 남한에서 평양냉면이라 함은 툭툭 끊어지는 메밀함량이 높은 면과 맑은 육수가 관건이었다. 하지만 TV 화면을 통해 나타난 북한의 평양냉면은 전혀 다른 비주얼을 갖고 있었다. 전분 함량이 높아 면이 질겼고, 육수는 간장을 넣어 맑지 않고 진했다. 남한에서 하나의 공식처럼 받아들였던 평양냉면의 개념이 와장창 깨지는 순간이었다. 꼭 지구 반대편까지 갈 것이 아니라 이 작은 땅덩어리 안에서도 하나의 음식을 두고 여전히 문화적 차이는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였다.


자세히 살펴본 결과 북한에서 점차 메밀을 구하기 어려워지면서 옥수수나 고구마의 전분 함량을 높였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고기 육수를 고아낼 형편이 되지 않아 육수의 맛도 조금씩 다르게 변형된 것이었다. 또한 평양에서는 소화가 안 될 때 면발에 식소다를 넣기 때문에 유독 면 색깔이 거무튀튀 했던 것이었다. 이를 보면 한 음식의 특징은 그 시대의 상황과 식재료의 수급 여건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화함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여름이면 그저 시원하게 즐기는 냉면 한 그릇 안에는 참으로 유구한 시간이 쌓여있고, 식문화의 변천사와 함께 그 특징이 조금씩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2021년부터 음력 11월 11일을 ‘냉면의 날’로 지정했다. 전국의 손꼽히는 냉면 맛집들이 참여하는 행사로서, 여름을 넘어 겨울까지 냉면 마니아들을 마음을 설레게 만들고 있다. 냉면은 이제 단순히 더위를 식혀주는 여름철 별미를 뛰어 넘어, 한국 식문화 현상의 주역이자 시대 문화를 반영하는 음식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아닐까. 활발하게 요동치는 식문화의 파도 속에서 국내는 물론 해외의 반응 역시 앞으로 어떤 변화를 보여줄지, 한국인으로서 냉면을 향한 애정은 더 깊어질 따름이다. / 푸드 칼럼니스트 이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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