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식탁]완벽한 12월을 채워주는 케이크 한 조각


새마을금고 월간 매거진의 <인문학 식탁> 코너에
칼럼을 정기 연재하고 있습니다.

음식 속에 문학을 녹여내어 맛 뿐만 아니라
더욱 풍성하고 깊은 의미까지 담고자 합니다.

12월호 음식 주제는 '케이크' 입니다.






< 인문학 식탁>

/ 푸드 칼럼니스트 이주현


완벽한 12월을 채워주는 케이크 한 조각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남자가 나온다. 그의 이름은 팀이다. 팀은 일명 시간 여행자이다. 마음에 들 때까지 과거를 반복해 나가며 자신의 인생을 조각해 나간다. 하지만 아무리 백번을 되돌아가도 불가능한 일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를 테면 첫눈에 반해버린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일이다. 팀은 시간 여행 능력을 사용하여 사랑을 얻고 싶지만 만만치가 않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단번에 반해버린 메리의 마음을 얻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대망의 결혼식 날, 하늘도 무심하게 하필 결혼식이 한창 진행되는 가운데 소나기가 쏟아진다. 더없이 완벽했던 야외 결혼식은 비를 피해 뛰어가는 사람들로 아수라장이 된다. 하지만 결혼식의 주인공인 팀과 메리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잠깐 몰아치는 현실의 소나기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 듯 그들은 결혼식 자체를 즐긴다. 여기서 나의 눈길을 잡아끄는 것은 매력적인 남녀 주인공도 아닌, 비에 쫄딱 맞은 웨딩케이크였다. 화사한 색의 아이싱으로 장식된 앙증맞은 컵케이크들이 거대한 원형모형으로 층층이 쌓여져 있다. 전형적인 미국식 웨딩케이크이다. 결혼식의 꽃인 웨딩케이크가 비에 젖어 죽이 되어간다. 잠깐 지나가는 장면이지만, 혼비백산하며 뛰어가는 사람들 속에서도 웨딩케이크는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감사의 마음을 담은 케이크의 역사

우리는 언제부터 웨딩케이크를 먹기 시작했을까. 그 최초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로마 시대의 종교적 행사에 다다른다. 그 당시에 결혼식을 올리면 신랑 신부 두 사람이 케이크를 함께 자르며 한 가족이 되었음을 축하했다. 또한 하객들도 모두 골고루 케이크를 나누어 먹는 것이 전통이었다. 커다란 원형 케이크를 하객의 수만큼 조각내었는데, 그만큼 아들과 딸을 많이 낳아 오래 살기를 기원하였다. 웨딩케이크 안에는 다산과 장수의 소망이 담겨 있는 것이다.


웨딩케이크뿐만 아니라 일반 케이크 역시 축제처럼 특별한 날에 먹는 음식이었다. 동양에서는 떡과 만두가 명절 때 조상님께 바치는 제물이었다면, 서양에서는 케이크가 신에게 바치는 성스러운 음식이었다. 그렇기에 케이크는 단순히 디저트의 개념을 넘어서 감사와 축하 그리고 기도하는 마음이 담겨 있는 음식이다.


이처럼 기쁨과 감사의 의미를 담은 웨딩케이크가 영화 속에서는 그만 폭우에 젖어 엉망이 되고 만다. 아마도 비에 젖은 케이크는 더 이상 팀이 시간을 되돌리며 인생을 수정하지 것을 그만두겠다는 결심을 반영한 것이 아닐까. 현실에서 생기는 크고 작은 문제를 그대로 직면하겠다는 의미이다. 그 어떤 화사한 케이크보다 강렬하게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아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는 장면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에는 유독 상념이 많아진다. 1년 동안 저지른 크고 작은 실수와 후회가 몰려온다. 시간 여행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하지만 팀이 깨달은 것처럼 아무리 과거로 되돌아간다 하더라도 100% 만족할만한 인생을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우리에게 허락된 ‘오늘’이라는 시간을 가장 충실하게 보내는 것. 마치 미래에서 온 시간 여행자처럼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12월을 보내는 가장 멋진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과 함께 한다면 더 없이 완벽한 연말이 되지 않을까.

/ 푸드 칼럼니스트 이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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